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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김병근 칼럼 / 158년 9개월의 형벌
인간의 기대수명이 기껏해야 여든을 조금 넘는 시대에, 법정이 피고인에게 '징역 158년 9개월'을 선고했다는 소식은 얼핏 기괴한 넌센스처럼 들린다. 불로불사의 영생을 누릴 수도 없는 인간에게 1세기 반을 감옥에서 썩으라니, 실현 불가능한 숫자를 적어 내려간 재판부의 계산법은 언뜻 냉소적 실소마저 자아낸다. 그러나 이 비현실적인 산술 뒤에는 인간 사회가 고안해 낸 가장 차갑고 정교한 사법적 안전장치가 숨어 있다.

2024년 4월, 멕시코 서부 바하 캘리포니아주의 한 외딴 해변으로 서핑 여행을 떠났던 호주인 형제와 미국인 친구는 차량 강도들의 흉탄에 목숨을 잃고 깊은 우물 속에 버려졌다. 2년여의 재판 끝에 2026년 10월 16일(현지 시각 금요일), 멕시코 현지 법원은 이 참혹한 사건의 주범 3명에게 각각 징역 158년 9개월이라는 무거운 형을 선고했다. 사형 제도가 실질적으로 폐지된 국가에서 이 거대한 숫자는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가?
첫째는 '숫자로 쐐기를 박은 절대적 격리'다. 일반적인 무기징역이나 종신형은 일정 기간—대개 20년에서 25년—을 복역하면 모범수 감형이나 특별사면을 통해 가석방의 문이 열리곤 한다. 정권이 바뀌거나 사법 환경이 변하면 살인범이 중년의 나이에 다시 거리를 활보할 틈새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150년이 넘는 형량은 가석방의 최소 복역 요건마저 수십 년 뒤로 밀어내 버린다. "형량의 절반을 채워야 가석방을 신청할 수 있다"는 원칙 앞에서 피고인은 일흔 살, 여든 살이 되어도 신청서 한 장 쓸 자격을 얻지 못한다. 즉, 158년이라는 숫자는 '영생의 형벌'이 아니라 '살아서 교도소 문을 결코 넘을 수 없다'는 절대적 종신 구금을 수학적으로 완성한 장치다.
둘째는 '피해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무게를 셈하는 정의의 계산'이다. 여러 건의 범죄를 저질렀을 때 가장 무거운 죄 하나를 골라 약간의 형량을 더하는 흡수주의 방식과 달리, 멕시코와 미국 등에서 택하는 병과주의(연속형)는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낱낱이 장부에 기록한다. 첫 번째 청년의 목숨값으로 40년, 두 번째 청년의 목숨값으로 40년, 세 번째 친구의 몫으로 또 40년, 그리고 차량 탈취와 유기죄로 38년 9개월을 쉼 없이 더해 나간다. 이는 사법부가 피해자들을 뭉뚱그려 처리하지 않고, 그들 각자의 끊어진 생명에 온전한 무게를 부여하겠다는 선언이다. 혹여 훗날 재심이나 법리 논쟁을 통해 한 건의 유죄가 흔들리더라도, 나머지 100여 년의 형량이 피고인의 발목을 굳건히 잡고 있도록 설계한 법적 방어벽이기도 하다.
결국 158년이라는 비현실적 숫자는 인간의 유한한 생명에 대한 조롱이 아니다. 법이 내릴 수 있는 가장 무거운 응징이자, 유가족의 피눈물에 바치는 냉엄한 위로다.
우리는 종종 법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비판하지만, 때로는 이처럼 현실의 한계를 뛰어넘는 비현실적인 숫자를 동원해서라도 사회의 정의와 피해자의 존엄을 지켜내야 할 순간이 있다. 158년의 형벌은 묻는다. 한 인간이 타인의 소중한 삶을 빼앗았을 때, 사회는 그 죄과를 과연 몇 년의 시간으로 환산해 주어야 마땅한가. 법정에 울려 퍼진 158년이라는 긴 울림은, 다시는 사회로 돌아오지 못할 죄인들에게 내리는 가장 단호한 영구 추방의 선언이다.
글쓴이: 김병근(엠마오 상담대학 학장,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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