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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근 칼럼 / 호주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

OCJ 2026. 10. 16. 04:05

최근에 호주 연방국회에서는 65세 이상 노년층의 민간 건강 보험 보조금를 삭감하려던 노동당의 법안이 녹색당 등의 반대로 의회에서 부결되었습니다. 이 뉴스를 대하면서 저자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습니다. 소수당인 녹색당의 힘으로 어떻게 이런 법안을 막아 낼수 있었을까? 참으로 만주주의가 잘 되어 가는 나라이구나. 따라서 호주  정치적 제도에 대하여 한번 이해하면서 한국에서의 집권당의 독주를 펼치는 모습과 자못 비교가 될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 호주 상하원 제도의 정교한 균형과 타협의 예술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을 만들고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과정은 결코 단순할 수 없고, 또 단순해서도 안 됩니다. 권력이 한곳으로 집중되거나 다수의 횡포로 소수의 목소리가 묵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반드시 서로를 견제하는 튼튼한 구조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호주 연방 의회(Australian Parliament)가 채택하고 있는 정교한 양원제 시스템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호주의 국회의사당 내부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색깔의 차이입니다. 하나는 초록색 카펫이 깔린 방이고, 다른 하나는 붉은색 카펫이 깔린 방입니다. 이 두 개의 방은 각각 하원(House of Representatives)과 상원(Senate)을 상징하며, 이들의 역할과 선출 방식은 호주 민주주의가 어떻게 균형을 잡고 있는지를 완벽하게 보여줍니다.

초록의 방, 하원: 다수의 원칙과 정부의 탄생
영국 웨스트민스터 시스템의 전통을 따른 하원은 인구수에 비례하여 선출된 151명의 의원으로 구성됩니다. 인구가 많은 지역일수록 더 많은 대표를 배출하는 '다수결의 원칙'이 철저히 적용되는 곳입니다. 하원에서 과반수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이 비로소 정부를 구성하고 총리를 배출하게 됩니다. 국가의 예산을 다루고 새로운 법안을 앞장서서 발의하는 역동적인 국정 운영의 엔진과도 같은 곳이 바로 이 초록의 방입니다.

붉은 방, 상원: 소수의 보호와 권력의 제어
그러나 인구 비례로만 정치를 한다면, 인구가 적은 지역이나 소수의 목소리는 영원히 외면받을 위험이 있습니다. 이 거대한 맹점을 보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바로 붉은 방, 상원입니다. 미국식 연방주의를 차용한 호주 상원은 인구수와 상관없이 모든 6개 주(State)에서 똑같이 12명씩의 의원을 선출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상원의 기능입니다. 상원은 '검토의 집(House of Review)'으로 불립니다. 집권당이 하원에서 아무리 다수결로 법안을 밀어붙여 통과시켰다 하더라도, 붉은 방의 문턱을 넘지 못하면 그 법안은 휴지조각이 됩니다. 특히 상원 선거는 비례대표제적 성격이 강해 집권당이 단독으로 과반을 차지하기가 구조적으로 매우 어렵습니다. 결국 집권당은 녹색당이나 무소속 같은 소수 정당 의원들을 끝까지 설득하고 협상해야만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습니다.

독단이 불가능한 타협의 건축물
어떤 법안이든 예외 없이 이 두 방(하원과 상원)을 모두 통과해야만 공식적인 법률이 됩니다. 이 과정은 몹시 느리고 때로는 답답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정교한 교착 상태야말로 호주 민주주의가 의도한 가장 완벽한 '안전장치'입니다.

선거에서 이겼다고 해서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고 마음대로 국가의 방향을 트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합니다. 극단적인 정책은 상원의 필터링 과정에서 걸러지고, 다양한 계층의 요구가 반영된 수정안으로 둥글게 다듬어집니다.

절대적인 기준이 흔들리고 양극화가 극심해지는 오늘날, 호주의 의회 제도는 민주주의가 나아가야 할 훌륭한 나침반을 보여줍니다. 권력의 독주를 막고 타협을 강제하는 이 튼튼한 시스템이 존재하는 한, 호주의 민주주의는 쉽게 벼랑 끝으로 내몰리지 않을 것입니다. 초록과 붉은색이 만들어내는 이 치열한 화음이야말로, 건강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제도를 설계해야 하는지를 증명하는 살아있는 교과서입니다.

글쓴이: 김병근(엠마오 상담대학 학장, Ph.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