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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김병근 칼럼 / 시드니 무주택 시니어들이 마주한 혹독한 생존 게임
오페라 하우스의 하얀 돛과 햇살이 부서지는 하버 브리지, 그리고 여유로운 해변의 풍경.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 도시로 꼽히는 시드니의 엽서 같은 겉모습 뒤에는 매일매일 숨 막히는 계산기를 두드려야 하는 서민들의 소리 없는 비명이 자리하고 있다. 치솟는 렌트비와 물가 속에서 시드니의 평범한 일상은 이미 벼랑 끝 생존 게임으로 변모했지만, 이 비정한 구조 속에서 가장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는 이들은 바로 '자가 주택이 없는 시니어 계층(Age Pensioners)'이다.

호주의 노령 연금(Age Pension) 제도는 기본적으로 하나의 거대한 전제를 깔고 설계되었다. 바로 ‘은퇴 시점에는 대출 없는 온전한 자기 집을 소유하고 있다’는 믿음이다. 집이 있는 은퇴자에게 연금은 비교적 안정적이고 여유로운 노후를 보장하는 든든한 동아줄이 된다. 하지만 평생 성실히 세금을 내며 국가에 헌신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내 집 마련의 문턱을 넘지 못한 채 렌트 시장에 남겨진 시니어들에게, 현재 시드니의 연금 생활은 축복이 아닌 가혹한 형벌에 가깝다.
이들이 직면한 현실은 수학적으로 이미 파산 상태다. 2026년 기준, 무주택 시니어 부부가 2주마다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최대 수입은 연금과 렌트 보조금을 모두 영혼까지 끌어모아도 약 2,077달러 남짓이다. 그러나 시드니 외곽의 평범한 유닛조차 2주 렌트비로 최소 1,500달러를 요구한다. 통장에 돈이 들어오자마자 렌트비로 뭉텅이로 빠져나가고 나면, 두 노부부의 손에 쥐어지는 돈은 2주에 단 577달러, 일주일에 약 288달러에 불과하다.
일주일에 288달러. 이 돈으로 두 사람의 식비를 충당하고, 치솟는 전기·가스 요금을 내며, 통신비와 필수적인 의료비까지 모두 해결해야 한다. 이는 안락한 노후 설계가 아니라 매 순간 뼈아픈 포기를 강요받는 과정이다. 한겨울에도 난방비가 두려워 온열기 대신 두꺼운 스웨터와 낡은 담요를 겹겹이 두른 채 버티고, 마트에서는 할인 딱지가 붙은 식료품만을 찾아 헤맨다. 몸이 아파도 비싼 전문의 진료나 약값을 감당하지 못해 병원 가기를 미루고, 교통비가 두려워 지인들과의 만남조차 끊어버리며 사회적 고립 속으로 침잠한다.
젊은 시절 사회의 톱니바퀴로 땀 흘려 일했던 이들이, 인생의 황혼기에 이르러 하루 한 끼를 걱정하며 자선단체의 무료 급식소를 기웃거려야 하는 풍경은 '복지 국가 호주'라는 명성에 깊고 어두운 균열을 내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경제적 격차는 피할 수 없다지만, 이토록 극단적인 노년의 주거 빈곤은 개인의 나태함이 아닌 명백한 '구조적 실패'다. 끝없이 오르는 집값에만 의존해 온 기형적인 경제 성장, 공공 임대주택 공급을 방치한 정부의 안일함, 그리고 세입자의 희생을 담보로 굴러가는 잔혹한 민간 렌트 시장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눈부신 햇살 아래 반짝이는 시드니 하버의 물결은 아름답지만, 그 화려한 스카이라인 뒤편의 어두운 방에서 렌트비 인상 통보서를 쥐고 떨고 있는 노년의 삶을 외면한다면 이 도시의 품격은 허상일 뿐이다. 진정한 선진국은 가장 높이 솟은 빌딩의 높이가 아니라, 가장 취약한 이들을 대하는 사회의 바닥 높이로 증명된다. 시드니는 지금, 도시의 가치가 ‘천정부지의 집값’에 있는지 아니면 그 안에서 늙어가는 ‘사람의 존엄’에 있는지 뼈아픈 질문을 마주하고 있다.
글쓴이: 김병근(엠마오 상담대학 학장,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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