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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배용찬 장로의 창조에세이 / 중동의 물 전쟁

중동의 맹주 튀르키예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인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상류에 22개 댐과 19개 발전소를 건설하면서 하류 국가는 심각한 물 부족에 시달리게 되었다. 시리아와 이라크는 이미 불평등 조약을 맺어가며 물을 구걸하는 처지가 되었고, 풍요롭던 메소포타미아는 습지가 사라지고 강물이 말라가며 옛 문명의 흔적조차 지워지고 있다.
게다가 최근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걸프 연안 국가들은 비상이 걸렸다. 물을 확보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건설한 해수담수화 시설(물 공장)이 전쟁의 표적이 될까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국가 간 ‘물 전쟁’은 폭발 직전에 이르렀다. 한때 세계를 지배하던 석유 확보 전쟁이 이제는 생존을 위한 물 확보 전쟁으로 비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은 생명의 원천이자 태초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부터 존재했던 기본 물질이다. 지구상에서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모든 피조물은 이 물을 기반으로 존재한다. 역사적으로 물은 치수를 통해 권력을 낳고, 교역로를 열어 문명을 꽃피우는 요람이었다. 또한 정결 의식의 매개체이자 경계를 나누는 기준이었으며, 풍요와 생명력의 원천으로 이해되어 왔다.
따라서 인류에게 물이란 결핍을 극복하고 질서를 세우며 영혼을 정결하게 하는 ‘투쟁과 수용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세계 주요 문명의 발상지가 모두 물과 깊이 연관되어 있고, 물이 정화나 죄 사함 같은 신앙적 매개이자 풍요와 영감의 원천이 되었기에 인류가 물을 확보해 온 과정은 인류 문명사 자체와 궤를 같이한다.
성경에서 물은 주로 '우물'로 표현되며, 이는 하나님과의 만남이자 언약이 이루어지는 장소로 그려진다. 사라를 피해 광야로 쫓겨난 하갈이 하나님의 사자를 만난 곳도 샘물(브엘라해로이) 곁이었고(창 16:14),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 언약을 맺은 곳도 우물(브엘세바)이었다(창 21:31). 이삭 역시 우물 곁에서 아내 리브가를 맞이하는 축복을 누렸다(창 24:11).
특히 이삭은 우물을 파는 일과 깊은 연관이 있는 인물이다. 그는 많은 우물을 팠지만, 이웃 블레셋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가 있을 때마다 다투지 않고 매번 양보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장소가 넓다'는 뜻의 '르호봇' 우물을 허락하셨다(창 26:22). 이처럼 성경에서 우물은 척박한 광야 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의 공급과 축복의 상징이다. 나아가 배우자를 만나는 축복의 장소이자 공동체가 시작되는 출발점이었으며, 사람 사이의 화해와 하나님 관계의 회복처럼 갈급함 속에 찾아오는 '하나님의 은혜'를 담아내는 장소였다.
그러나 오늘날 중동 지역에서 물은 '블루 골드(Blue Gold)'라 불릴 만큼 치열한 전략 무기가 되었다. 중동은 세계 인구의 6%가 살고 있지만, 가용 수자원은 전 세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여기에 급격한 인구 증가와 국경을 넘어 흐르는 하천의 빈약함, 그리고 상·하류 국가 간의 상충하는 이해관계가 맞물려 갈등이 필연적으로 증폭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도입된 대안이 해수담수화 시설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 걸프 연안 국가들은 식수의 90% 이상을 이 시설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전쟁의 위협 속에서 해수담수화 시설이 주요 군사 공격 표적으로 떠오르면서, '물 안보'가 곧 '국가 안보' 로 직결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과거에는 석유를 차지하기 위해 총을 들었다면, 이제는 물권(Water Right)을 지키기 위한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그 어느때보다 높아졌다. 구약 시대 나그네를 대접하고 가문을 이어가던 환대와 은혜의 장소였던 우물이 이제는 국가의 명운을 걸고 싸우는 비극적인 전쟁터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루빨리 하나님이 세우신 평화와 생명의 질서가 중동 땅에 회복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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