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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십자가의 사랑으로 민족을 품다, 오산학교 설립자 남강 이승훈 장로 이야기
어두운 시대일수록 진정한 빛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일제 강점기라는 민족의 가장 깊은 절망 속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던져 희망의 씨앗을 심은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오산학교를 설립하고 기독교 신앙으로 민족의 지도자들을 길러낸 남강 이승훈 장로입니다. 그는 고아 출신의 가난한 사환에서 자수성가한 거상으로, 그리고 모든 재산을 조국과 교육에 바친 민족운동가로 탈바꿈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삶이 지니는 가장 위대한 가치는 세속적인 성공이나 단순한 애국심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자신의 삶 전체로 살아낸 진정한 신앙의 발자취에 있습니다. 개인주의와 물질주의가 만연한 오늘날, 조국과 교회를 위해 기꺼이 한 알의 밀알이 되었던 이승훈 장로의 궤적은 오세아니아와 전 세계에 흩어져 살아가는 한인 크리스천들에게 깊은 울림과 도전을 줍니다.
이승훈 장로의 삶은 고난을 신앙으로 승화시킨 여정이었습니다. 1864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나이에 부모를 모두 잃고 고아가 되었습니다. 11세 무렵 유기 상점의 사환으로 들어가 특유의 정직함과 성실함으로 큰 성공을 거두며 조선 굴지의 무역상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겪으며 사업이 무너지고 조국의 주권마저 흔들리는 것을 목격한 그는, 1907년 평양에서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강연을 듣고 큰 충격을 받습니다. 그 자리에서 상투를 자르고 술과 담배를 끊은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정주에 강명의숙과 오산학교를 설립하며 교육 계몽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그의 삶이 온전한 십자가의 길로 접어든 결정적인 계기는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후였습니다. 나라를 잃은 극심한 절망감에 빠져 평양 거리를 헤매던 그는 우연히 발길이 닿은 산정현교회에서 한석진 목사의 설교를 듣게 됩니다.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소망에 관한 말씀을 듣고 그는 그 자리에서 회개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이때부터 오산학교는 단순한 애국 교육 기관을 넘어 철저한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한 인재 양성의 요람으로 거듭납니다.
이후 그의 신앙적 행적은 십자가를 짊어지는 삶 그 자체였습니다. 1911년 제주도로 유배되고 연이어 105인 사건으로 4년 넘게 극심한 옥고를 치를 때, 그는 감옥 안에서 죄수들의 변기를 직접 치우고 걸레질을 하며 예수님의 섬김을 실천했습니다. 고통과 절망의 공간이었던 감옥은 그에게 깊은 기도의 골방이 되었습니다. 출옥 후 평양 장로회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을 공부하기도 했던 그는, 1919년 3.1 운동 당시 기독교계 대표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앞장섰습니다. 체포를 앞두고 그는 안방에서 편히 죽을 줄 알았더니 이제야 죽을 자리를 얻었다고 고백하며,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부활 신앙의 참된 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남강 이승훈 장로가 사회와 교회에 미친 실제적인 영향력은 실로 지대합니다. 그가 세운 오산학교는 평민 정신과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조만식 선생과 동역하며 주기철 목사, 함석헌 등 수많은 민족의 지도자와 신앙의 거장들을 배출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오산학교 출신의 많은 이들이 훗날 한국 교회를 이끄는 목회자와 장로, 그리고 사회 각계각층의 지도자로 성장하여 나라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또한, 그의 마지막 유언은 당대와 후대에 엄청난 충격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1930년 67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 그는 자신의 시신을 묻지 말고 생리 표본으로 만들어 학생들의 의학 연구를 위해 내어주라는 파격적인 유언을 남겼습니다. 비록 조선인들의 민족의식이 고취될 것을 두려워한 일제의 방해로 유골이 오산학교 뒷산에 강제로 묻히게 되었지만, 자신의 뼈와 살마저도 다음 세대를 위해 내어주고자 했던 그의 숭고한 자기 희생은 한국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이웃 사랑의 실천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에게 주는 영적 교훈
첫째, 진정한 회개는 삶의 방향을 온전히 바꿉니다. 이승훈 장로는 예수를 믿은 후 자신의 물질적 부를 개인의 안위가 아닌 하나님 나라와 이웃을 위해 아낌없이 흘려보냈습니다. 오늘날 성공과 번영을 신앙의 목적으로 삼기 쉬운 현대 성도들에게, 그의 삶은 참된 신앙이 곧 내어줌에 있음을 가르칩니다.
둘째, 십자가의 섬김은 가장 낮아지는 데서 완성됩니다. 당대 최고의 거상이자 존경받는 민족 지도자였던 그가 차디찬 감방에서 남들이 꺼리는 변기를 닦으며 기뻐했던 모습은, 종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그대로 닮아있습니다. 리더십의 본질은 군림이 아니라 희생과 섬김임을 우리는 그의 삶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셋째, 신앙은 시대적 아픔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그는 기독교 신앙을 교회 울타리 안에만 가두지 않았습니다. 조국의 잃어버린 주권을 되찾고 절망에 빠진 백성을 깨우는 일에 기독교 신앙이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 되어야 함을 몸소 증명했습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부름받은 성도들이 자신이 속한 사회와 국가 속에서 어떤 선한 영향력을 발휘해야 하는지 묵직한 교훈을 던져줍니다.
남강 이승훈 장로는 척박하고 어두운 조선 땅에 심겨진 한 알의 밀알이었습니다. 그가 남긴 것은 단순히 오산학교라는 건물이 아니라, 민족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불굴의 신앙 정신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통과하여 마침내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기독교의 핵심 진리가 그의 일생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각자가 서 있는 삶의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이기심을 넘어 이웃과 세상을 살리는 밀알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복음 12장 2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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