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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된 비누를 씹어 삼키며 영혼의 순결을 외치다: 민족 지도자 월남 이상재의 삶과 신앙

OCJ 2026. 9. 18. 04:47

일제강점기라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조국의 독립과 청년들의 계몽을 위해 평생을 바친 위대한 거목이 있습니다. 그는 바로 한국기독교가 낳은 자랑스러운 민족 지도자, 월남 이상재 선생입니다.

 

 

1850년 충청남도 한산에서 태어난 그는 본래 전통적인 유교 지식인이었으나, 당대 사회의 부정부패에 환멸을 느끼고 진정한 개화와 민족의 자립을 꿈꾸게 됩니다.

 

서재필, 윤치호 등과 함께 독립협회를 창립하고 만민공동회를 이끌며 민중의 참정권을 외쳤던 그는 고종 황제 앞에서 간신들이 바친 뇌물을 보자기째 난로에 던져 태워버릴 만큼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였습니다. 외세의 침탈과 국권 상실의 위기 속에서 그가 발견한 조국의 유일한 소망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었습니다. 오늘날 오세아니아를 비롯한 전 세계에 흩어져 살아가는 한인 크리스천들에게 그의 삶은 단순한 역사적 위인을 넘어, 험난한 시대를 신앙으로 돌파해 낸 숭고한 믿음의 발자취로 깊은 울림을 줍니다.

이상재 선생이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난 것은 그의 나이 54세, 1902년 개혁당 사건에 연루되어 한성감옥에 투옥되었을 때였습니다. 춥고 열악한 감옥 속에서 그는 선교사들이 전해준 성경, 특히 요한복음을 수십 번 반복해 읽으며 놀라운 회심을 경험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산상수훈 앞에 조국을 짓밟은 일본을 향한 분노로 가득했던 그의 마음은 산산이 부서졌고, 역사의 주관자가 오직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출옥 후 그는 연동교회에 출석하며 본격적인 신앙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서구의 문물인 비누를 신기해하며 겉모습만 꾸미려는 사람들에게 비누 조각을 직접 씹어 먹어 보이며, 겉보다 속을 먼저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일화는 그의 철저한 신앙적 순결주의를 잘 보여줍니다. 그는 옥중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신앙을 얻었고, 그 믿음은 남은 평생 동안 어떤 외압이나 고난 앞에서도 타협하지 않는 굳건한 반석이 되었습니다.

이상재 선생의 신앙은 개인적인 구원에만 머물지 않고 민족의 구원과 사회적 변혁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황성기독교청년회 영문명 YMCA의 지도자로 나서며 기독교 청년 운동을 한국 민족주의 운동의 중심으로 승화시켰습니다. 1919년 삼일운동 당시, 그는 일시에 지도자들을 잃을 것을 염려하여 독립선언서의 민족대표 명단에서는 이름을 뺐으나, 배후에서 비폭력 평화주의 만세 운동을 기획하고 이끄는 실질적인 정신적 지주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결국 삼일운동의 배후 조종자로 지목되어 모진 옥고를 치렀지만 그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습니다. 또한 1927년에는 이념으로 사분오열된 항일 진영을 하나로 묶기 위해 좌우 합작 민족 협동 전선인 신간회의 초대 회장으로 추대되었습니다. 이념과 계층을 초월해 좌우 모두에게 존경받았던 그의 삶은, 1927년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무려 10만 명의 인파가 몰려 사상 최초의 사회장으로 장례를 치른 사실이 명확히 증명해 줍니다.

월남 이상재 선생의 삶은 오늘날 세속주의와 편의주의에 물든 현대 크리스천들에게 뼈아픈 교훈을 던져줍니다.

 

첫째, 진정한 신앙은 나이를 초월하여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뒤바꾸는 능력이 있다는 점입니다. 54세라는 늦은 나이에 기독교인으로 회심했지만, 그의 남은 삶은 그 누구보다 뜨겁고 치열했습니다.

 

둘째, 역사와 사회를 바라보는 성경적 세계관의 중요성입니다. 그는 역사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심을 믿는 신부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불의에 침묵하지 않으면서도 폭력이 아닌 사랑과 평화의 방법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려 했습니다.

 

셋째, 화해와 연대의 리더십입니다. 좌와 우, 양반과 천민의 경계가 뚜렷했던 시대에 그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모두를 품으며 연합을 이끌어냈습니다. 이는 오늘날 분열된 교회와 사회 속에서 피스메이커로 부름받은 성도들이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을 제시합니다.

이상재 선생은 평생 자기 집 한 칸 없이 청빈하게 살면서도, 조국의 잃어버린 빛을 되찾기 위해 온몸을 불태운 영원한 청년이었습니다. 절망의 한복판이었던 한성감옥에서 발견한 요한복음의 진리는 한 지식인을 위대한 민족의 영적 지도자로 거듭나게 했습니다. 시대를 분별하는 지혜와 하나님 나라를 향한 타협 없는 열정, 그리고 민족을 품어낸 그의 넓은 가슴은 우리 시대가 가장 필요로 하는 참된 신앙인의 모습일 것입니다.

 

오세아니아 기독교 저널의 독자들을 포함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의 발자취를 따라, 각자가 서 있는 삶의 자리에서 속사람이 먼저 정결해지는 진정한 신앙의 부흥을 경험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복음 12장 2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