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S WORD

이사야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시드니 22°C ☀️
Admin

뉴스

더보기 →
오피니언/기고

김병근 칼럼 /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선택

OCJ 2026. 9. 5. 03:36

인간의 영혼을 깊이 응시했던 시대를 지나, 우리는 지금 뇌라는 미지의 우주를 정밀하게 해부하는 신경과학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오랜 여정 속에서 가장 매혹적인 두 개의 등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무의식’과 현대 뇌과학이 밝혀낸 ‘신경가소성’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듯 보이지만, 깊은 곳에서 하나의 거대한 진실을 향해 맞닿아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삶이 만 5세 이전, 어쩌면 우리가 말조차 배우지 못했던 까마득한 유년 시절의 기억과 상처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의식의 수면 아래 가라앉은 무의식은 기계적인 법칙처럼 우리의 발목을 잡고, 평생토록 반복되는 감정의 폭풍과 방어 기제를 만들어냅니다. 사랑받고 싶었으나 거절당했던 기억, 두려움 속에 움츠러들었던 그늘은 뇌의 깊은 변연계에 새겨져 위기의 순간마다 자동 항법 장치처럼 작동합니다.

현대 뇌과학의 언어로 이것은 마치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처음 설치할 때 제조사가 미리 설정해 둔 ‘디폴트 모드(Default Mode System, 기본값)’와도 같습니다. 생후 60개월까지의 유년 시절, 뇌가 아직 성숙하지 못해 이성적인 방어벽이나 논리적 필터를 갖추지 못했을 때 외부의 충격과 두려움은 우리의 하드웨어 깊은 곳에 ‘초기 설정값’으로 단단히 입력됩니다. 이후 우리는 성인이 되어서도 삶의 위기를 마주하면, 자기도 모르게 이 오래된 디폴트 모드를 가동합니다. 거절당할 것 같은 상황에서 무조건 도망치거나 방어하는 반응은, 내 마음의 프로그램이 그 옛날에 세팅된 기본값대로 자동 실행되는 것에 다름아니니다. “과거는 지워지지 않는다. 그것이 곧 너의 운명이다”라는 프로이트적 결정론의 과학적 실체는 바로 이 굳어진 디폴트 시스템인 셈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뇌과학이 열어젖힌 현미경 속 세계는 전혀 다른 찬란한 가능성을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뇌는 고정된 조각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스스로를 조각해 나가는 유연한 생명체입니다. 뉴런과 뉴런 사이의 시냅스는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결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새로운 길을 내기도 하고, 쓰이지 않는 낡은 회로를 끊어내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경가소성이 건네는 구원의 메시지입니다.

컴퓨터에서 디폴트 모드에만 갇혀 살지 않고 언제든 시스템 설정을 바꾸거나 수동 모드로 전환할 수 있듯, 우리에게는 ‘알아차림(Awareness)’이라는 관리자 권한이 있습니다. 삶이 자꾸 오류를 일으킬 때 멈춰 서서 "아, 내 안에서 또 그 오래된 디폴트 프로그램이 자동 실행되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순간, 우리는 과거의 자동 반응을 멈추고 전두엽을 켜서 새로운 결단과 행동이라는 수동 조작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과거가 우리에게 어떤 낡은 설계도를 쥐어주었을지라도, 오늘 ‘지금 여기’에서 내리는 의식적인 결단과 새로운 선택은 낡은 디폴트 값을 완전히 새로운 상위 버전으로 업데이트해 나갑니다.

이 놀라운 마음의 재설계와 회복의 비밀은 이미 수천 년 전 성경의 가르침 속에도 깊이 숨겨져 있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유년 시절의 상처와 얽매인 무의식을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물려받은 ‘죄의 관성과 견고한 진(옛 사람)’으로 바라봅니다. 우리가 원하지 않는데도 자기도 모르게 상처와 두려움의 자동 반응대로 살아가게 만드는 이 낡은 디폴트 값은, 인간의 의지적 노력만으로는 쉽게 해체되지 않는 견고한 성과 같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에 머물지 않고, 은혜를 통한 ‘거듭남과 마음의 새롭게 됨(로마서 12장 2절)’을 선언합니다. 신경가소성이 우리가 새로운 결단을 내릴 때 뇌의 시냅스를 재조직하듯, 성경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린도후서 5장 17절)"라고 말씀하며 영혼과 생각의 회로가 완전히 새롭게 빚어질 수 있음을 증명합니다. 또한, 상담에서 말하는 ‘자각’은 곧 성경이 말하는 ‘깨어 기도함’의 영적 각성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내 안에서 낡은 디폴트 프로그램이 고개를 들 때 멈춰 서서 그것을 직면하고, 성령의 빛 아래에서 새로운 선택을 고백하는 것—그것이 바로 신앙 안에서 이루어지는 가장 깊은 차원의 마음의 재설계입니다.

그렇다면 이 둘은 모순되는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프로이트의 무의식과 낡은 디폴트 시스템은 뇌가 지나온 ‘지나간 역사’이자, 우리가 넘어서야 할 1차적인 신경의 관성일 뿐입니다. 우리는 유년 시절의 상처가 남긴 기본값의 지배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지 몰라도, 그 기억이 우리 삶의 주인이 되도록 내버려 둘지 말지는 전적으로 현재를 사는 우리의 자각과 위로부터 임하는 은혜에 달려 있습니다.

오랜 세월 길을 걸어오며 수많은 마음의 상처와 마주하고, 또 스스로를 단련해 온 이들에게 이 사실은 눈물겹도록 다행스러운 소식입니다. 과거의 무의식이 우리를 낡은 디폴트 모드에 가두려 할 때, 우리는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물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지난날의 자동 반응인가, 아니면 내가 오늘 주님의 은혜 안에서 새롭게 내리는 결단인가.”

우리는 단 한 번도 완성된 채로 방치된 적이 없는, 스스로 프로그래밍 가능한 위대한 뇌와 거듭난 영혼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어두운 무의식의 지하 창고에 갇혀 있던 기억의 조각들도, 현재의 따스한 알아차림과 새로운 선택이라는 햇살이 비칠 때 비로소 치유의 에너지가 됩니다. 과거라는 무거운 뗏목을 기꺼이 품에 안으면서도, 오늘 이 순간 새로운 운영체제를 실행하며 바다를 향해 키를 잡는 것—그것이야말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눈부신 의식과 영혼의 진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도 모두 주안에서 행복한 하루 되세요

글쓴이: 김병근 (엠마오 상담 대학 학장, Ph.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