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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체류자" 아닌 "미등록 이주민"… 이 시대의 나그네를 향한 교회의 다정한 '곁'

OCJ 2026. 8. 15. 06:16

통계 너머의 삶, 우리 곁의 이방인을 마주하다


국내 미등록 이주민이 약 35만 명에 달하는 가운데, 이들을 범죄자나 시혜의 대상이 아닌 존엄한 이웃으로 바라보고 이들의 '곁'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교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 이주민운동은 지난 8월 11일 서울 동대문구 동네극장에서 써클 대화모임 '곁이 된 사람들'을 개최했습니다. 이번 모임은 일방적인 강연 형식을 벗어나 참가자들이 둥글게 둘러앉아 눈을 맞추며, 우리 사회의 가장 소외된 이웃인 미등록 이주민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을 나누고 교회의 역할을 고민하는 자리로 마련되었습니다.

 


낙인 대신 인격으로, '생활인권'의 사각지대


첫 번째 이야기손님으로 나선 성공회 용산·혜화 나눔의집 강다영 사무국장은 미등록 이주민들이 겪는 가혹한 현실과 '생활인권' 보장의 필요성을 절실히 고발했습니다. 강 국장은 건강보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이 일반 의료 수가의 3배에 달하는 '국제수가'를 적용받아 제왕절개 수술 한 번에 3,000만 원의 빚을 지는 현실을 전했습니다. 심지어 분유 살 돈이 없어 갓난아기에게 설탕물을 타 먹이는 비극적인 사례도 있었습니다. 또한 발달장애를 가진 미등록 이주 아동이 길을 잃었을 때, 체류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선뜻 경찰서에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눈물 흘려야 했던 어머니의 일화는 참석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강 국장은 우리가 무심코 쓰는 '불법체류자'라는 단어가 이들에게 형사범이라는 낙인을 찍고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며, 이들을 인격적 존재로 바라보는 '미등록 이주민'이라는 다정한 언어가 일상에서부터 확산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바라카(축복)의 마음으로 일구는 마을 공동체


이어 발표한 바라카작은도서관 김기학 대표는 2018년 예멘 난민 가정을 품으며 시작된 도서관의 사역을 소개했습니다. 김 대표는 갈 곳 없는 난민 가정에게 방과 후 공부방으로 쓰려던 옥탑방을 내어주었고, 한국어를 몰라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방과 후 교실을 열었습니다. 현재 도서관은 이주민 여성들을 위한 한국어 교육, 청소년들을 위한 야학,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서로의 음식을 나누는 식탁 모임을 통해 이주민과 지역사회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김 대표는 특정 종교나 교회의 형식을 강요하기보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환대하는 일상을 실천할 때 진정한 마을 공동체가 형성된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마태복음 25장의 말씀을 인용하며, 고아와 과부, 나그네와 같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예수께 한 것임을 상기시켰습니다.

종교적 구조를 넘어 하나님나라의 환대로


참석자들은 이번 모임을 통해 교회가 이주민 선교를 단순히 '교회 채우기'나 '시혜적 전도'의 도구로 삼았던 과거를 성찰했습니다. 김기학 대표는 한국교회가 이주민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여전히 종교적 구조 안에서만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며, 이제는 기독교적 관점을 넘어 온 우주를 품으시는 '하나님나라'의 관점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높은 곳에서 베푸는 동정이 아니라, 서로의 눈높이를 맞추고 일상을 나누는 관계 속에서 비로소 참된 환대가 시작된다는 고백은 오늘날 교회가 나아가야 할 이주민 선교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EDITOR'S NOTE]
성경은 아브라함부터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낯선 땅을 밟았던 나그네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명기 말씀을 통해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고 끊임없이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는 법과 제도의 잣대로 이들을 '불법'이라 규정하며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곤 합니다. 호주와 뉴질랜드 등 오세아니아 지역 역시 이주민과 난민 수용 문제로 사회적 갈등과 정책적 진통을 겪고 있는 만큼, 이번 한국 교계에서 울려 퍼진 "불법 체류자가 아니라 미등록 이주민입니다"라는 고백은 국경을 넘어 우리 모두의 신앙 본질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이주민은 단순히 우리가 베풀어야 할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그들의 얼굴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마주하는 '환대의 성례전'입니다. 교회가 이들의 다정한 '곁'이 되어 줄 때, 비로소 이 땅에 하나님나라의 참된 평화와 안식이 싹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