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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김병근 칼럼 / 신학과 상담의 만남

학문의 세계를 깊이 들여다보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지혜의 지형도가 어떻게 넓어져 왔는지 실감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신학'이라는 거대한 울타리 안에 목회 상담이라는 실천 신학의 한 과목이 머물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은 어떠합니까. 상담학은 이미 실천 신학의 경계를 넘어 독자적인 상담 대학원과 학과로 우뚝 서며, 우리 시대가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학(學)'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인식의 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학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인식의 틀이라면, 상담학은 사람을 알아가는 인식의 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참된 지혜에 이르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는 일만큼이나, 인간이라는 존재를 깊이 이해하는 일이 결코 소홀해질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러한 진리의 조화를 가장 아름답게 보여주는 비유가 바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3장에서 들려주신 씨 뿌리는 비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비유 속에서 하늘의 진리를 품은 씨앗이 '신학'이라면, 그 씨앗이 뿌려지는 토양은 곧 '상담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상담학이란 다름 아닌 예수님이 말씀하신 마음밭을 고르고 일구어가는 거룩한 과정입니다.
아무리 좋은 씨앗이라도 딱딱하거나 가시덤불이 우거진 땅에 떨어지면 생명력을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좋은 씨앗이 옥토 같은 토양에 깊이 뿌리내릴 때 비로소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게 됩니다. 신학이 그 자체로 머물러 있다면 관념에 불과할 뿐입니다. 신학이 상담학과 손을 잡고 인간이라는 옥토밭과 만날 때, 하나님의 말씀은 비로소 생명의 열매로 피어납니다. 오늘날 신앙안에서 삶의 열매나, 성도의 변화가 없음은 토양의 문제로 볼수 있습니다. 사실 이사야 선지자가 앞으로 오실 메시아 사역을 설명하면서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리고 가장 첫번째 사역으로, "마음 상한자를 고치며,"(사61:1)라고 명확하게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이 사역을 소홀히 한것에 솔직하게 인정하고, 이에 대한 수업료를 많이 부담하고 있습니다.이 두 학문은 어느 한쪽도 포기할 수 없는, 언제나 함께 걸어가야 할 동반자인 것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신학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왔습니다. 비유하자면 생명을 잉태할 좋은 종자를 연구하는 일은 이제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었습니다. 그러나 그 종자를 받아들이는 인간의 토양, 즉 심리적 건강과 영혼의 상처를 다루는 상담학은 여전히 끊임없이 발전해야만 합니다. 특히 인공지능(AI)이 모든 것을 대체할 것 같은 첨단의 시대일수록, 인간의 내면을 어루만지고 회복과 치유를 이끌어내는 상담학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할 것입니다. 과학이 인간의 뇌와 기술을 설명할 수 있을지언정, 상처 입은 영혼의 결을 만지고 눈물을 닦아주는 일은 오롯이 사람과 사람, 그리고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상담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신학과 상담의 만남은 목회 현장은 물론이고,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삶에 깊은 유익과 구원의 실제를 선물합니다. 하늘의 진리가 인간의 가장 깊은 마음속에 스며들어 풍성한 열매를 맺는 그 조화로운 길 위에, 우리 모두의 발걸음이 늘 함께하기를 소망해 봅니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맺히기도 하였으니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마태복음 13:8)
글쓴이: 김병근(엠마오 상담 대학 학장,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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