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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혼의 미술관

[영혼의 미술관] 짓무른 피부, 그리고 태양보다 밝은 미소

OCJ|2026. 1. 18. 07:17

— 고통의 한복판에서 피어오르는 그뤼네발트의 부활 신학

 

프랑스 알자스 지방의 콜마르(Colmar)에 있는 운터린덴 박물관에는 미술 역사상 가장 참혹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황홀한 그림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독일 르네상스의 거장 마티아스 그뤼네발트(Matthias Grünewald)가 1512년부터 1516년에 걸쳐 제작한 대작, <이젠하임 제단화(Isenheim Altarpiece)>입니다.

 

이 그림은 본래 미술관이 아닌, 수도원 부속 병원의 예배당을 위해 그려졌습니다. 그곳은 당시 '성 안토니우스의 불(St. Anthony's Fire)'이라 불리던 무서운 피부병과 맥각 중독 환자들이 죽음을 기다리던 곳이었습니다. 살이 썩어 들어가고 사지가 떨어져 나가는 극심한 고통 속에 있던 환자들은, 매일 이 제단화 앞에 누워 자신의 고통을 십자가 위의 예수와 일치시키며 마지막 위로를 얻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그림의 두 가지 장면—십자가의 처절함과 부활의 찬란함—을 오가며, 우리의 고난 속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보려 합니다.


1. 썩어 들어가는 육체: "주님도 나처럼 아프셨군요"

제단화가 닫혀 있을 때 보이는 중앙 패널의 <십자가 처형>은 충격적입니다. 우리가 흔히 보아온 근육질의 매끈한 예수님은 이곳에 없습니다. 대신 온몸이 가시와 채찍에 찢겨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진, 처참한 몰골의 사내만 있을 뿐입니다.

  • 푸른 입술과 뒤틀린 손발: 예수의 입술은 질식의 고통으로 파랗게 질려 있고, 두 손은 십자가 횡목에 박힌 못의 격통 때문에 갈고리처럼 뒤틀려 하늘을 향해 경련하고 있습니다. 발등은 굵은 대못에 겹쳐 박혀 끔찍하게 으깨져 있습니다.
  • 박힌 가시와 짓무른 피부: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예수의 피부입니다. 온몸에 박힌 가시 자국마다 푸르죽죽한 고름이 맺혀 있고, 피부는 병든 환자처럼 거칠게 짓물러 있습니다. 이는 당시 병원에 수용된 환자들의 증상인 피부 괴사를 그대로 묘사한 것입니다.

그뤼네발트는 왜 구세주를 이토록 흉측하게 그렸을까요? 그것은 죽어가는 환자들에게 "신(神)이 너의 고통을 모른 체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보라, 너의 하나님도 너처럼 피부가 썩었고, 너처럼 뼈가 뒤틀렸다. 그는 저 높은 보좌가 아니라, 바로 여기 너의 고통 한가운데 함께 있다." 이 처절한 리얼리즘은 환자들에게 '공감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는 최고의 위로였습니다.

2.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세례 요한의 손가락

십자가 오른쪽에는 성경의 시공간을 초월하여 세례 요한이 등장합니다. 그는 펼쳐진 성경책을 들고, 비정상적으로 길게 그려진 집게손가락으로 십자가의 예수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의 머리 위에는 라틴어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Illum oportet crescere, me autem minui"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 요한복음 3:30)

이 손가락은 오늘 우리에게 방향을 제시합니다. 고통과 절망의 순간,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곳은 썩어가는 나의 육체나 무너진 현실(나, minui)이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 그 모든 저주를 감당하신 예수 그리스도(그, crescere)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세례 요한의 단호한 손짓은 우리 시선을 고통의 '현상'에서 고통의 '의미'로 이동시킵니다.

3. 부활: 태양보다 밝은 미소와 치유된 육체

평소에는 닫혀 있던 제단화가 주일이나 축일이 되어 활짝 열리면, 환자들은 숨을 멈추고 탄성을 질렀습니다. 칙칙한 죽음의 그림이 사라지고, 눈부신 색채의 <부활> 장면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 패널에서 예수님은 거대한 빛의 구체(sphere)에 휩싸여 공중으로 떠오릅니다. 그의 얼굴은 태양처럼 빛나고(실제로 윤곽선을 그리지 않고 빛으로만 표현했습니다), 십자가에서 찢겼던 상처들은 이제 영광스러운 보석처럼 반짝입니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예수님의 '미소'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고통으로 일그러졌던 그 얼굴이, 이제는 환자들을 향해 더없이 온화하고 승리에 찬 미소를 보내고 있습니다. 썩어 문드러졌던 피부는 어린아이처럼 깨끗하게 회복되었습니다.

 

이 극적인 반전(Contrast)을 통해 그뤼네발트는 선포합니다. "지금의 고통이 끝이 아니다." 십자가의 처참함은 부활의 영광으로 가는 통과 의례일 뿐이며, 병든 육체는 장차 입게 될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을 예비하는 과정임을 시각적으로 증명한 것입니다.


맺음말: 고통의 밤을 지나 아침을 기다리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젠하임 제단화>는 고통 없는 삶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앙이란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직시하고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신 예수를 만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혹시 지금 원치 않는 질병, 실패, 관계의 단절로 마음이 십자가 위의 예수처럼 짓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뤼네발트가 그려낸 저 참혹한 예수를 바라보십시오. 주님은 여러분의 아픔을 '관찰'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 아픔을 온몸으로 '체휼(com-passion)'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십자가의 패널 뒤에는 반드시 부활의 패널이 겹쳐져 있습니다. 제단화의 문이 열리는 순간 어둠이 빛으로 바뀌듯, 우리의 고난도 결국 주님의 영광스러운 미소와 마주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오늘 밤, 아픈 몸과 상한 마음을 이끌고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는 모든 분들에게, 세례 요한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그분, '상처 입은 치유자' 예수 그리스도의 위로가 함께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