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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어두운 틈새에 샬롬을 심다, 발칸반도의 슈바이처 심재두 선교사

OCJ 2026. 7. 3. 03:37

현대 기독교 선교와 구호 사역의 역사를 되짚어볼 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면에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척박한 땅을 기경해 온 숨은 영웅들이 존재합니다. 오세아니아 크리스천 저널이 이번 기획에서 주목한 인물은 바로 발칸반도의 최빈국 알바니아에서 20년 넘게 의료 선교와 난민 구호에 헌신하며 수많은 생명을 살려낸 심재두 선교사입니다. 

 


1984년 한국의 경희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심재두 선교사는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철야기도를 하며 의료 선교사라는 비전을 처음 가슴에 품었습니다. 이후 대학 시절 한국누가회 운동에 참여하며 낯선 한국 땅에 찾아와 헌신하는 외국인 의료 선교사들의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얼굴도 국적도 다른 이방인들이 조건 없는 사랑을 베푸는 것을 목격한 그는, 자신 역시 언젠가 가장 소외되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의사의 특권을 내려놓겠다는 결단을 내리게 됩니다. 

안정적인 의사로서의 성공이 보장된 길을 뒤로한 채, 그는 1993년 굳게 닫혀 있던 공산주의 체제가 막 해체된 동유럽의 알바니아로 향했습니다. 당시 알바니아는 반세기 동안의 공산주의 치하에서 경제와 의료 시스템이 철저히 붕괴된 상태였으며, 영적으로도 깊은 암흑기에 놓여 있던 불모지였습니다.

심재두 선교사의 알바니아 사역은 철저한 낮아짐과 헌신의 연속이었습니다. 파송 초기, 그는 해부병리학 전문의인 아내 유소년 선교사와 함께 티라나 국립대학병원 호흡기내과와 결핵병원에서 자원봉사 의사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알바니아의 의료 환경은 1960년대 수준과 비견될 정도로 열악했습니다. 의료진은 있었으나 최신 의학 지식이나 실습 경험이 전무했고, 약품과 장비마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이에 그는 대학의 협력을 이끌어내어 수천 권의 의학 서적을 모아 의학 도서관을 설립하며 현지 의사들의 교육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그의 신앙적 행적이 가장 짙은 빛을 발한 순간은 1999년 코소보 전쟁 때였습니다. 끔찍한 인종 청소와 전쟁의 참화 속에서 약 60만 명의 코소보 난민이 알바니아 국경을 넘어 피난을 왔을 때, 심 선교사는 주저 없이 쿠커스 국경 지대와 수도 티라나의 난민촌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는 비정부기구들과 협력하여 무려 6천 명이 넘는 난민들을 직접 진료하며 전쟁의 공포에 질린 이들의 상처를 싸매주었습니다.

이후 2001년, 복음과 치유가 통합된 사역을 펼치기 위해 샬롬 클리닉을 개원한 그는 집시를 비롯한 최빈곤층을 대상으로 무료 진료를 이어갔습니다. 육신의 질병뿐만 아니라 영적인 갈급함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이슬람의 견제가 심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기쁨의 집 교회, 소망교회, 샬롬교회 등을 잇달아 개척하며 영혼의 구원까지 책임지는 전인적 선교사의 삶을 살아냈습니다. 특히 그는 파송 당시부터 27년 동안 매일 선교 일기를 기록하며,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세밀한 숨결을 빠짐없이 기록으로 남기는 영적 성실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심재두 선교사의 발자취는 단지 알바니아라는 한 국가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현지에서 보여준 눈부신 헌신으로 2009년 한미자랑스런의사상, 2010년 제10회 언더우드 선교상을 연이어 수상하며 교계와 사회에 큰 도전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영향력은 선교 현장의 경험을 다음 세대와 나누기 위한 지적, 구조적 헌신에서 두드러집니다.

선교지에서 겪었던 시행착오가 후배들에게 반복되지 않기를 바랐던 그는, 50여 명의 현직 의료 선교사들과 협력하여 방대한 분량의 현대 의료 선교학을 편찬했습니다. 이 책은 현장 선교사들의 생생한 간증과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는 위기관리 매뉴얼을 담아내어, 오늘날 전 세계로 나아가는 선교사들에게 사막의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으로 귀임한 이후에는 7000 의료선교네트워크를 결성하여 전 세계 각지에서 고군분투하는 한인 선교사들의 건강과 위기 관리를 돕는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초유의 위기 속에서 오지에 고립된 선교사들을 위한 원격 의료 자문과 영적 돌봄을 제공하며, 선교사들을 살리는 선교사로서 실질적이고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심재두 선교사의 삶은 다문화적 배경과 세속주의의 도전에 직면한 오세아니아와 현대 크리스천들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첫째, 특권을 내려놓는 성육신적 사랑입니다. 자본주의와 성공주의가 팽배한 오늘날, 그는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는 자격을 기꺼이 포기하고 가장 낮은 곳을 향했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은 내가 가진 것을 움켜쥐는 것이 아니라, 상처받고 헐벗은 이웃을 위해 조건 없이 흘려보낼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둘째, 삶을 기록하고 나누는 영적 성실성입니다. 27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쓴 그의 선교 일기와 방대한 선교학 저술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실패의 경험마저도 공동체의 자산으로 승화시키려는 굳건한 책임감을 보여줍니다. 우리 역시 각자의 일터와 가정에서 겪는 신앙의 여정을 기록하고 나눔으로써 다음 세대의 믿음을 견인하는 영적 이정표가 되어야 합니다.

알바니아의 무너진 의료 시스템을 세우고, 전쟁으로 고향을 잃은 코소보 난민들의 피눈물을 닦아주었던 심재두 선교사. 그는 육신을 치료하는 탁월한 의사인 동시에, 절망의 땅에 평화를 심는 샬롬의 사도였습니다. 위기와 갈등이 끊이지 않는 현시대 속에서, 이웃의 찢긴 고통에 온몸으로 응답한 그의 생애는 우리 모두가 어떠한 모습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 명확히 보여줍니다. 각자가 서 있는 삶의 자리에서 소외된 자들을 품는 작은 샬롬 클리닉을 세워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태복음 25장 4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