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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상처 입은 치유자로 부르시는 위로
[오늘의 말씀] 고린도후서 1장 3절 - 4절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고린도후서는 사도 바울이 쓴 서신 중 가장 개인적이고 감정이 풍부하게 담긴 편지입니다. 바울은 아시아에서 겪은 극심한 고난, 즉 살 소망까지 끊어질 정도의 환난을 겪은 직후 이 편지를 기록했습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 내부의 분쟁과 거짓 교사들의 공격으로 인해 바울은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심리적, 영적으로 깊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원망이 아닌 위로의 하나님을 찬양하며 편지를 시작합니다. 여기서 사용된 위로라는 헬라어 파라클레시스는 단순히 슬픔을 달래주는 감정적 동정을 넘어, 곁에 서서 돕고 용기를 불어넣어 다시 일어서게 하는 강력한 실천적 힘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극심한 고난이 오히려 하나님의 위로를 깊이 체험하는 통로가 되었으며, 나아가 그 위로가 개인의 치유로 끝나지 않고 다른 이들을 살리는 사명이 됨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의 깊은 골짜기를 지날 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하는 원망 섞인 질문입니다. 때로는 그 고통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하나님의 침묵이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고난을 바라보는 전혀 새로운 시각을 제시합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고난을 피하게 해주시는 분이 아니라, 고난 한가운데로 찾아오셔서 우리와 함께 눈물 흘리시며 곁에서 부축해주시는 위로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위로는 우리 자신의 아픔을 싸매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깊은 상처를 입어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상처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겪은 눈물의 시간들은 훗날 같은 아픔을 겪는 누군가에게 다가가 그를 살려내는 거룩한 처방전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상처 입은 치유자로 부르시는 이유입니다.
지금 당장 이해할 수 없는 환난 속에 있다면, 이 고통의 끝에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하나님의 따뜻한 품을 기대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받은 그 위로가 훗날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는 찬란한 사명으로 피어날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십시오.
[오늘의 찬송: 찬송 408장 - 나 어느 곳에 있든지]
나 어느 곳에 있든지 늘 맘이 편하다 주 예수 주신 평안함 늘 충만하도다 나의 맘속이 늘 평안해 나의 맘속이 늘 평안해 악한 죄 파도가 많으나 맘이 늘 평안해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이해할 수 없는 고난과 아픔 속에서 홀로 눈물 흘릴 때 조용히 다가와 안아주시는 그 크신 위로에 감사합니다. 나의 상처에만 머물러 있던 시선을 들어 나와 같은 아픔을 겪는 이웃들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내가 먼저 경험한 주님의 따뜻한 위로가 절망 속에 있는 누군가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생명의 통로로 쓰임 받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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