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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밖으로 밀려난 자들의 곁에 선 사도, 혐오의 시대를 넘어설 전복적 복음을 말하다

OCJ|2026. 6. 17. 05:50

<난민의 사도 바울>(오월의봄) Release: 2026년 5월 29일

 


사도 바울을 성 안의 엘리트가 아닌 성 밖 선창가 난민들의 곁에서 사역했던 '민중 사역자'로 새롭게 재조명한 책이다. 1세기 지중해의 혐오와 차별을 뚫고 가장 낮은 자들에게 평등의 복음을 선포했던 바울의 여정을 통해, 극우적 혐오 정치가 만연한 21세기 현대 교회가 회복해야 할 급진적 환대와 정치적 리얼리즘을 강렬하게 제시한다.

저자는 바울의 선교 무대를 중산층 중심의 안락한 '성 안'에서 빈민과 난민, 해방 노예들이 떠도는 척박한 '선창가'로 옮겨놓으며 서사를 시작한다. 다마스쿠스, 안티오키아, 필리피, 코린트 등 지중해 전역을 떠도는 여정 속에서 바울이 마주한 이들은 소속된 조합(콜레기아)조차 없어 생존의 위협을 받는 타의적 실향민, 즉 '오클로스(ochlos, 무리)'였다. 책은 바울이 이들과 함께 천막 공장에서 고된 노동을 하며 그들의 고통을 체휼하고, 혈통과 율법 등 배타적인 조건을 내세워 낯선 이를 혐오하던 '유대아 원리주의자들'과 치열하게 맞서 싸운 과정을 역사적 상상력과 텍스트 분석으로 직조해낸다. 그리스도 안에서 어떠한 차별도 없다는 바울의 선언이 단순한 영적 구호가 아닌, 당대 가장 비참한 실존들을 죽음으로부터 보호하려 했던 생존의 연대이자 사회적 방파제였음을 밀도 있게 증명해간다.

[성 안의 엘리트에서 선창가의 민중 사역자로: 바울의 역사적 재구성]


기존의 바울 연구가 그를 로마 시민권자이자 고등 교육을 받은 엘리트로서 주로 중산층을 대상으로 사역했다고 전제한 반면, 김진호는 이 책을 통해 바울의 주된 사역 무대가 악취와 질병, 빈곤이 들끓던 '선창가'였음을 날카롭게 논증한다 [1.2.1]. 당시 지중해 세계는 로마 제국의 확장에 따른 빈번한 전쟁과 가혹한 수탈로 무수한 전쟁 포로, 도주 노예, 실향민들이 넘쳐나는 비극적 시대였다. 이들은 어느 콜레기아(고대 로마의 길드나 조합)에도 속하지 못한 채 생존의 벼랑 끝에 내몰린 사회적 잉여이자 무리를 뜻하는 '오클로스(ochlos)'였다. 바울은 이들의 아픔을 단순히 강단 위에서 관념적으로 위로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천막을 깁는 육체노동의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땀과 먼지를 뒤집어쓰며 그들과 삶을 온전히 공유했다. 

 

이러한 역사적 재구성은 바울 신학의 핵심 교리인 '은혜'와 '칭의'가 사변적인 종교 담론이 아니라, 소속될 권리조차 박탈당하고 세상의 모든 울타리 밖으로 쫓겨난 이들에게 무조건적인 환대를 베풀었던 생생한 사회적 구원의 언어였음을 일깨워준다. 바울을 엘리트 지식인에서 '난민의 사도'로 복원한 이 파격적 시선은, 기독교 복음이 언제나 시대의 가장 어두운 밑바닥을 향해 흐를 때 비로소 그 생명력을 발휘한다는 본질적 사명을 눈부시게 폭로한다.

[원리주의와 혐오의 정치에 맞선 복음의 전복성]


저자는 1세기의 지중해 세계와 21세기의 현대 사회를 '혐오와 배제의 정치'라는 섬뜩한 공통분모로 엮어낸다. 당대의 유대아 원리주의자들과 로마의 지배 엘리트들은 체제 유지를 위해 낯선 타자를 끊임없이 악마화하고 난민을 배척하는 논리를 맹렬히 설파했다. 이는 오늘날 1억 3600만 명에 달하는 강제 실향민들을 향해 전 세계적으로 발흥하는 극우 정치가, 이주민과 난민을 사회악으로 규정하며 대중의 원초적 불안을 조장하는 메커니즘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처럼 차별과 혐오가 내면화된 억압적 구조 한가운데서 바울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라는, 당시로서는 혁명에 가까운 율법 너머의 급진적 선언을 내던진다. 이는 단순한 종교적 이상향의 표출이나 공허한 구호가 아니었다. 할례와 정결법이라는 철옹성 같은 배타적 경계를 무너뜨려 가장 천대받고 소외된 자들을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편입시키기 위한 처절한 정치적, 신앙적 리얼리즘의 피나는 실천이었다. 

 

슬프게도 오늘날 일부 교회가 오히려 앞장서서 타자를 정죄하고 분리하는 일에 열을 올리고 있는 참담한 현실 속에서, 혐오의 담장을 허물기 위해 온몸을 던졌던 사도 바울의 투쟁은 진정한 '성경적 보수'와 '복음적 실천'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묵직하고도 통렬하게 되묻는다. 복음은 언제나 경계 안으로 숨는 것이 아니라, 용기 있게 그 경계를 넘어서는 것임을 삶으로 증명한 것이다.

[끝없이 떠도는 '노마드적 영성'과 현대 교회를 향한 예언자적 경고]


이 책이 묘사하는 사도 바울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어느 한 곳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이동하고 떠도는 '유목민(Nomad)'으로서의 정체성이다. 다마스쿠스의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한 이후, 안티오키아, 필리피, 코린트 등 지중해 전역을 횡단하는 동안 바울은 장소의 변화와 새롭게 마주하는 타자들에 응답하며 자신의 사역과 신학을 유연하면서도 창조적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저자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대 교인들의 이른바 '떠돌이성(가나안 성도 현상 및 탈교회 현상 등)'을 교회의 단순한 위기나 타락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견고하게 제도화된 전통에만 얽매여 있던 교회가 새로운 시대적 생각의 지평을 열어야 할 은혜의 기회로 역제안한다. 

 

1세기의 바울이 정형화된 유대교의 낡은 틀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이방의 낯선 문화와 삶의 자리 속에서 복음의 진리를 역동적으로 재해석했듯이, 21세기의 교회 역시 높게 쌓아올린 교리적 성채와 건물 중심의 폐쇄적 신앙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교회는 화려한 건물 안에 안전하게 정주하는 집단이 아니라, 고통받는 이웃과 상처 입은 난민들이 신음하는 저잣거리와 '선창가'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거룩한 순례자의 무리가 되어야 한다. 

 

장소에 갇히지 않고 세계를 향해 자신을 활짝 열어젖혔던 바울의 동적인 삶의 궤적은, 과거의 영광에 정체된 채 세상의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작금의 기독교에 뼈아프지만 생명력 넘치는 대안적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십자가의 도(道): 거부된 자들과 함께 죽고 사는 신비]


사도 바울이 목숨을 걸고 전파했던 십자가의 복음은 힘과 영광을 숭배하는 영광의 신학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처참하게 짓밟히고 버림받은 자들의 밑바닥 신학이었다. 당시 로마 제국에서 십자가형은 국가에 반역한 자나 가장 비천한 최하층 노예에게만 가해지던, 입에 담기조차 꺼려지는 가장 끔찍하고 수치스러운 형벌이었다. 

 

바울은 이 저주와 수치의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나사렛 예수를 만유의 주이자 구세주로 선포함으로써, 당대 로마가 지탱하던 권력의 위계와 억압적 가치 체계를 밑바닥에서부터 완전히 뒤집어엎었다. 김진호의 예리한 통찰에 따르면, 바울이 악취 나는 선창가의 난민과 오클로스를 편견 없이 환대할 수 있었던 근원적 힘은 바로 자신을 완전히 비워 종의 형체를 지니신 예수의 자기비움(케노시스)과 십자가 처형이라는 극단적 배제와 수난의 경험을 자신의 영혼 깊은 곳에 내면화했기 때문이다. 

 

세상으로부터 철저하게 거부당하고 버림받은 십자가 위의 예수 안에서, 역설적으로 세상으로부터 거부당한 동시대 난민들의 짓눌린 얼굴을 또렷하게 발견했던 것이다. '오세아니아 크리스천 저널(OCJ)'의 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는 물량주의와 번영을 약속하는 얄팍한 기복적 신앙에 길들여진 오늘날의 현대 교회에 치명적이고도 절박한 각성을 요구한다. 십자가의 참된 신비는 우리가 세속적 성공을 향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데 있지 않고, 가장 낮고 소외된 곳으로 내려가 그곳에 웅크린 이들과 손잡고 연대할 때 비로소 그 눈부신 진가를 발휘한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오늘날 화려한 성전 건물과 교리적 안전지대에 안주하고 있는 현대 기독교에 매우 뼈아프고도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지금 우리의 교회는 기득권을 수호하는 견고한 요새인가, 아니면 세상 밖으로 밀려난 자들을 품어내는 자비로운 환대의 장막인가?" 저자는 1세기의 사도 바울이 혈통과 성별, 사회적 신분이라는 당대의 거대한 장벽들을 허물어뜨리며, 철저히 배제된 자들의 최전선 피난처를 자처했음을 치밀하게 증명해낸다.

 

현대 크리스천들은 종종 바울을 정교하고 체계적인 교리를 확립한 차가운 신학적 스승으로만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역사의 무대에서 그는 혐오와 분노가 지배하던 지중해의 가장 밑바닥 선창가에서 난민들과 함께 땀 흘리며 복음을 몸으로 살아낸 뜨거운 '행동하는 사도'였다. 최근 개신교가 세상의 상처를 싸매기는커녕 오히려 배타주의와 혐오 확산의 온상처럼 여겨지며 신뢰를 잃어가는 비극적 현실 속에서, 바울의 난민 사역 모델은 한국 교회와 성도들이 잃어버린 급진적 포용성을 되찾게 하는 결정적 영적 나침반이 된다. 이는 단지 구휼이나 동정의 차원을 넘어, 끊임없이 떠돌며 낯선 타자와 용기 있게 마주했던 바울의 야성적인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라는 예언자적 촉구다.

 

나와 다른 타자를 향한 적대감과 편가르기가 일상화된 이 극단의 시대에, 진정한 기독교적 구원의 메시지는 강자의 논리가 아니라 가장 연약하고 짓눌린 타자의 얼굴 속에 숨겨진 그리스도의 형상을 발견할 때 비로소 완성됨을 이 작품은 깊이 있게 웅변하고 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라디아서 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