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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신앙: 두 문화·두 질서 사이의 싸움

OCJ|2026. 1. 14. 03:58

 

사도 바울은 언제나 두 문화 사이에 서 있던 인물이었다. 그는 단일한 정체성으로 규정될 수 없는 사람이다.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었으며, 동시에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었고, 헬라 문화권에서 성장한 사람이었다. 또한 로마 시민권자였으며, 율법에 능통한 바리새인이었고, 동시에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은 인물이었다. 이처럼 바울의 정체성은 하나의 틀로 고정되지 않는다. 그의 삶과 사역은 언제나 여러 문화와 질서가 교차하는 경계 지점에서 이루어졌다. 이 점에서 바울은 단순히 복음을 전한 선교사가 아니라, 서로 다른 세계관과 가치 체계가 그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충돌하던 존재였다. 그는 한 문화에 안착한 사람이 아니라, 늘 긴장 속에서 선택하며 살아간 신앙인이었다. 바울의 다음 고백은 이를 잘 보여준다.

 

나는 유대인에게는 유대인 같이 되기 위하여 유대인 같이 되었고,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들과 같이 되었으며이방인에게는 이방인 같이 되었다” (고전, 9:2021) 이 말씀은 흔히 상황 적응의 기술이나 문화적 유연성으로 오해되지만, 바울의 의도는 그보다 훨씬 깊다. 이것은 복음을 희석하기 위한 타협이 아니라, 두 문화 사이에서 복음의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감수해야 했던 긴장 속의 선택이었다. 바울은 어느 문화에도 자신을 완전히 귀속시키지 않았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라는 상위 질서에 자신을 매어 두었다. 따라서 바울의 삶은 문화 혼합의 모델이 아니라, 질서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한 경계인의 신앙을 보여준다.

 

는 유대 문화도, 헬라·로마 문화도 도구로 사용할 수 있었으나, 그 어느 것도 자신의 궁극적 정체성으로 삼지 않았다. 이 점에서 바울은 두 문화·두 질서 사이에서 살아가는 이민자 신앙의 원형적 인물이라 할 수 있다. 호주 이민자의 삶은 언제나 두 문화, 두 질서 사이에 서 있는 삶이다. 집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우리는 선택의 긴장 가운데 들어간다. 어떤 언어로 말할 것인가, 어떤 가치로 결정할 것인가, 어느 쪽 기준에 나를 맞출 것일까? 이 싸움은 겉으로 보기에 문화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신앙의 싸움이다. 왜냐하면 문화는 단순한 생활 방식이 아니라,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질서이기 때문이다. 이 땅을 딛고 살아가는 문화는 우리에게 속삭일 것이다. “성과가 먼저다. 속도가 중요하다. 남보다 앞서야 안전하다.” 반대로 하나님 나라의 질서는 말한다.

 

기다려라. 신실함이 길이다. 보이지 않아도 옳은 방향을 선택하라.” 이렇게 이민자의 마음은 이 두 음성 사이에서 날마다 흔들린다. 그래서 이민자의 신앙은 편안하지 않다. 늘 선택해야 하고, 늘 결단해야 하며, 늘 마음속에서 싸움이 일어난다. 그러나 이런 싸움이 내 안에서 날마다 발생 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믿음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리스도인이 날마다 자기 안에서 육체의 소욕을 거스르며 싸운다는 사실은 신앙의 결핍이 아니라 정체성의 표현이다. 이 싸움은 자기 통제를 위한 윤리적 투쟁이 아니라, 성령의 통치 아래 머물기 위한 신뢰의 행위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은 완전한 승리가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며 계속 걸어가는 경주자의 태도 속에서 드러난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5:17).

 

이 고백은 단순한 도덕 갈등이 아니라 두 나라의 통치 원리가 한 인간 안에서 맞부딪히는 영적 충돌이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 안에서 날마다 싸운다라고 부르짖는다. 사도 바울은 날마다 시마다 반복되는 이런 영적 싸움에 지친 체 로마서 7:24에서 , 나는 비참한(참혹한) 사람이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라고 탄식한다. 바울이 내뱉은 라고 하는 탄식은 절망과 실패의 탄식이 아니며 절망의 끝에서 울부짖는 슬픈 탄식도 아니다. 승리의 문턱에서 우러나오는 감동의 선포이다. 바울은 곧바로 이렇게 증언하기 때문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7:25)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8:1,2)

 

이민자 신앙은 단순히 어디에 살고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나는 지금 어디에 속해 있는가를 날마다 다시 확인하는 신앙의 자리이다. 낯선 땅에서 혼자 결정해야 하고, 누구에게도 쉽게 기대지 못한 채 묵묵히 하루를 견뎌내는 여러분의 걸음은 절대 하찮지 않다. 사람의 눈에는 외로운 발걸음처럼 보일지라도, 주님의 눈에는 믿음으로 이어진 순례의 발자국으로 남아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늘 옳은 선택 하기를 요구하시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선택의 순간마다 주님을 바라보며 묻는 삶을 기뻐하신다. “주님, 이 길이 맞습니까?” “주님, 이 결정 속에서도 제가 주님을 놓치지 않게 하소서.” 그렇게 주님을 향해 시선을 들고 걷는 한, 우리는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속도가 느려도, 때로는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방향이 맞는다면 그 길은 전혀 헛되지 않다. 이민자의 신앙은 성공의 크기로 증명되지 않고, 안정의 정도로 평가되지 않는다. 이민자의 신앙은 주님과 함께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가로 증명된다.

 

글쓴이: 박만경목사(시드니 우림 교회 담임, Iona Trinity College 상담학 교수, Ph.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