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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신앙은 포시커(prospector)의 신앙이다

OCJ|2026. 1. 6. 06:09

 

경제의 불안정이 일상이 되면서 오르지 않는 것이 거의 없어 보인다. 집세를 비롯한 생활 전반의 비용이 쉼 없이 치솟는 가운데, 이제는 금값마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고 있다. 불안한 시대 온도가 숫자와 시세 속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듯하다. 이런 시대적 흐름 속에서 흥미로운 소식 하나가 들려온다. 호주 멜버른 인근, 과거 금광이 있었던 한 지역에서 다시금 포시커(prospector), 곧 금을 찾아 땅을 파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지역을 중심으로 금을 캐는 체험과 관광을 결합한 프로그램들이 등장했고, 그 인기는 예상보다 뜨겁다. 사람들은 관광을 겸해 삽을 들고 땅을 파며, 혹시 모를 한 줌의 금을 기대한다. 그곳은 지금 말 그대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포시커들이 금을 찾아 길을 나설 때, 그들의 손에 둔 것은 거창한 장비가 아니다. 삽 하나, 그리고 탐지기 하나. 그러나 그 탐지기조차 금 앞에서만 울리는 확실한 도구가 아니다. 쇳조각에도, 녹슨 캔에도, 의미 없는 금속 앞에서도 같이 울려 댄다. 그 소리는 확신이 아니라, 가능성의 흔들림에 가깝다. 그들에게는 보물섬을 가리키는 지도도 없다. 이곳을 파면 반드시 금이 나온다는 어떤 약속도 주어지지 않았다. 땅은 침묵하고, 결과는 언제나 흐릿하다. 그런데도 포시커들은 삽을 든다. 그리고 금을 찾기 위한 여정을 즐긴다. 확실한 보장이 있어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약속이 없기에 멈출 이유도 없고, 결과가 정해져 있지 않기에 걸음을 내디딜 자유가 있다. 그들은 승리를 약속받은 사람들이 아니라, 불확실성 앞에 설 용기를 선택한 사람들이다.

 

포시커의 강점은 가진 것이 많음에 있지 않다. 아무것도 약속받지 않은 자리에서 그런데도 땅 앞에 서는 태도, 바로 그 지점에 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자리에서, 단 하나금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붙들고 조용히 첫 삽을 내린다. 이런 포시커들의 행위 속에서 우리는 이 땅에 영원한 거처를 두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향해 걸어가는 나그네요 행인인 순례자의 태도를 배울 수 있다. 포시커들은 보장된 결과를 따라 움직이지 않고, 아직 보이지 않는 가능성을 신뢰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마찬가지로 신자의 삶 또한 정착이 아니라 여정이며, 소유가 아니라 소망을 향한 걸음이다. 그러나 그 불확실성 속에서도 신자는 멈추지 않고 걸어간다. 보장된 결과가 아니라, 신뢰에 근거한 걸음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금은 종종 믿음을 상징한다. 그래서 성경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정금과 같은 신앙이라 부른다. 그러나 정금은 처음부터 정금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 상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불속에 들어가고, 상상을 초월하는 연금(鍊金)의 시간을 통과하며, 녹고 다시 식는 과정을 반복한 끝에 비로소 불순물이 제거된 순수한 금으로 남는다. 참된 신앙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하루아침에, 아무런 연단 없이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은 없다. 연단 없는 믿음은 아직 제련되지 않은 금석(金石)에 가깝다. 정금 같은 신앙은 고난을 피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통과하며 형성된다. 그러므로 연단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정금 같은 신앙에 이르기 위한 필연적이고 불가결한 과정이다. 욥은 그 진리를 이렇게 고백한다.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기 23:10) 믿음은 시험 앞에서 무너질 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포시커의 삶은 결과의 성공보다 과정의 성실함으로 평가된다. 금을 발견했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땅을 팠느냐는 질문이다. 마찬가지로 정금 같은 믿음이란 언제나 응답을 얻는 신앙이 아니라, 응답이 보이지 않아도 신실함을 유지하는 신앙일 것이다. 불확실성 한가운데서도 하나님을 향한 신뢰의 삽질을 멈추지 않는 삶, 그것이 바로 이민자의 신앙이자 오늘 우리에게 요청되는 믿음의 자세다. 이민자의 현실은 언제나 계획보다 더디게 진행된다. 정착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수없이 실패를 경험한다. 기대했던 자리에서 물러서야 할 때도 있고, 빈손으로 돌아오는 날들도 있다. 그런데도 이민자의 삶에는 쉽게 꺼지지 않는 하나의 부르심이 남아 있다. 삶이 흔들릴수록, 오히려 그 소명은 더 분명하게 우리를 붙든다.

 

히브리서 11장에 등장하는 믿음의 사람들도 같은 시선을 가지고 살았다. 그들은 약속을 이 땅에서 완전히 이루지 못했으나, “더 나은 본향”, 곧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걸어갔다. 보이는 현실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약속을 따라 살았고, 현재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했다. 그들의 믿음은 성공의 기록이 아니라, 방향의 고백이었다. 이제 2026년 한 해를 맞이하며 우리 또한 같은 믿음의 시선을 회복하기를 소망한다. 결과를 보장받아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약속을 붙들고 다시 달려가는 것이다. 불확실성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실패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으며, 하나님 나라를 향한 방향을 잃지 않는 믿음으로 2026년을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자. 보이지 않아도 신뢰하며, 더뎌도 순종하며, 끝까지 함께 달려가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글쓴이: 박만경목사(시드니 우림 교회 담임, Iona Trinity College 상담학 교수, Ph.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