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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Noise)을 잠재우는 절대 평안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마가복음 4:39) 🕯️ 아침의 묵상 (Morning Meditation) 사랑하는 친구여, 1월의 마지막 날, 토요일 아침입니다. 새해의 첫 달을 치열하게 살아내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월말의 분주함은 마치 배 안으로 들이치는 파도처럼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힐 때가 많습니다. 오늘 본문의 제자들도 거센 풍랑 앞에서 두려워 떨었지만, 예수님은 배 고물에서 평온히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풍랑을 향해 외치신 "잠잠하라"의 헬라어 원어는 '시오파오(Siopao, σιωπάω)'이고, "고요하라"는 '페피모소(Pephimoso, πεφίμωσο)'입니다. 특히 '페피모소'는 '입마개를 씌우다'..
분주함을 넘어 지혜로움으로
우리는 역사상 가장 분주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자리에 들때까지, 스마트폰은 쉴 새 없이 울리고 수많은 일정과 정보가 우리의 시간을 잘게 조각냅니다. 우리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더 빠른 길을 찾고, 더 효율적인 업무 방식을 배우며, ‘갓생(God-Life)’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합니다. 우리는 분명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과연 ‘지혜롭게’ 살고 있는 것일까요? 사도 바울은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단순히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라는 의미를 넘어섭니다. 그것은 마치 귀한 보물을 사들이듯, 하나님이 주신 시간을 그분의 뜻에 맞게 ‘구속(Redeem)’하라는 영적인 ..
기억(Memory)이 소망(Hope)이 되는 지점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사무엘상 7:12) 🕯️ 아침의 묵상 (Morning Meditation) 사랑하는 친구여, 어느덧 1월의 마지막 금요일 아침입니다. 새해의 첫 달을 숨 가쁘게 달려온 당신의 어깨를 토닥여주고 싶은 날입니다. 우리는 종종 앞으로 가야 할 먼 길만 바라보며 불안해하지만, 신앙은 지나온 길을 해석하는 능력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에벤에셀(Ebenezer)'은 히브리어 '에벤(Eben, 돌)'과 '에젤(Ezer, 도움)'이 합쳐진 단어로 '도움의 돌'이라는 뜻입니다. 사무엘은 승리의 순간에 취하지 않고, 멈춰 서서 돌을 세웠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여기까지 인도하셨..
겟세마네의 잠을 깨우라
우리에게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 밀려올 때, 우리는 저마다의 방법으로 그 현실을 외면하려 합니다. 끝없는 OTT 시리즈에 자신을 맡기거나, 의미 없는 소셜미디어 피드를 밤새 새로고침 하기도 합니다. 일에 미친 듯이 몰두하거나, 사람들과의 피상적인 만남으로 소음을 만들어 마음의 공허를 감추려 합니다. 어떻게든 아픔을 직시하지 않으려는 우리의 모습은, 2천 년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제자들의 모습과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라는 생의 가장 큰 고통과 씨름하고 계시던 그 밤, 제자들은 기도하는 대신 잠을 택했습니다.그것은 단순한 육체의 피로가 아니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영혼이 선택한 가장 깊은 ‘도피’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고통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평범함 속에 숨겨진 '더 좋은 것(Better Things)'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히브리서 6:9) 🕯️ 아침의 묵상 (Morning Meditation)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1월의 마지막 목요일 아침입니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오늘이 그저 어제와 같은 하루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시간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더 좋은 것"이 있다고 말입니다. 본문에서 '더 좋은 것'으로 번역된 헬라어 '크레이톤(Kreitton, κρείττων)'은 단순히 '좋은(Good)' 상태를 넘어선, 비교할 수 없이 '탁월한'과 '우월한' 가치를 의미합니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화려함을 쫓지만,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영혼의 깊은..
묵은 땅(Fallow Ground)을 기경하는 수요일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호세아 10:12) 🕯️ 아침의 묵상 (Morning Meditation) 지혜로운 성도 여러분, 한 주의 허리인 수요일 아침입니다. 일상의 무게에 적응되어 마음이 조금씩 무뎌지기 쉬운 때입니다. 농부가 씨앗을 뿌리기 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단단하게 굳은 땅을 갈아엎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묵은 땅을 기경하라'고 표현합니다. 여기서 '기경하다'에 쓰인 히브리어 '니르(Nir, נִיר)'는 단순히 흙을 뒤집는 행위가 아니라, 생명을 품을 수 없는 딱딱한 상태를 깨뜨려 '새로운 가능성의 공간'을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마음도 방치하면 습관과 매너리즘이라는 딱딱한 껍질로 덮여버립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담요
우리는 참으로 비판에 익숙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SNS는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들추어내고 정죄하는 거대한 광장이 되었고, 익명의 그늘에 숨어 던지는 날 선 말들은 누군가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작은 실수에는 현미경을 들이대면서도, 정작 자신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합니다. 서로의 상처를 파헤쳐 드러내는 ‘폭로의 문화’ 속에서, 우리 사회는 점점 더 차갑고 삭막한 곳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의 한복판에서, 사도 베드로는 우리에게 세상의 방식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라고 권면합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사랑은 죄를 덮는다.’ 이 얼마나 놀랍고도 혁명적인 선언입니까? 여기서 죄를 덮는다는 것은, 잘못을 못..
작음(Smallness)의 위대한 혁명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스가랴 4:10) 🕯️ 아침의 묵상 (Morning Meditation) 지혜로운 친구여, 일상의 리듬이 깊어지는 화요일 아침입니다. 월요일의 결심이 작심삼일이 되기 쉬운 날이기도 하지요. 우리는 흔히 거대하고 화려한 성공만을 '축복'이라고 착각하곤 합니다. 그래서 지금 내 손에 들린 작고 초라한 것들을 가볍게 여기기 쉽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작은 일의 날을 멸시하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여기서 '작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탄(Qatan, קָטָן)'은 단순히 물리적인 크기가 작다는 뜻을 넘어 '가장 젊은', '중요해 보이지 않는'이라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놀랍게도 성경의 역사는 언제나 이 '카탄'의 반란이었습니다. 다윗의 작은 물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