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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1장 8절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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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보 한 장에 깃든 2000년의 숨결: 우리가 잃어버린 '예배의 질문들'

OCJ|2026. 3. 22. 06:00

익숙함 속에 가려진 신앙의 유산

매주 주일 아침, 우리는 성전에 들어서며 습관적으로 종이 한 장을 받아 듭니다. 바로 '주보'입니다. 그 안에는 예배의 순서가 빼곡히 적혀 있고, 우리는 그 순서에 따라 노래하고 기도하며 말씀을 듣습니다. 하지만 이 정형화된 순서 한 줄 한 줄 속에 초대교회의 순교적 신앙과 종교개혁의 치열한 신학적 결단, 그리고 우리 민족의 아픈 근대사가 층층이 쌓여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는 드뭅니다.

 

130년 한국교회, '부분'을 '전체'로 오해하다

한국 개신교는 130여 년이라는 짧은 역사 속에서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이 짧은 역사가 기독교 예배의 '전부'가 아님을 인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물려받은 예배 형식은 대부분 19세기 말 미국 부흥 운동의 산물입니다.

 

당시 선교사들이 전해준 예배는 18세기 대각성 운동의 영향으로 '설교'가 극단적으로 강조되고 '전례'는 축소된 형태였습니다. 즉, 우리는 2000년 보편교회의 풍성한 예배 전통 중 '19세기 미국식'이라는 특수한 필터를 거친 파편을 원형으로 삼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가 '전통'이라 믿는 것들이 사실은 특정 시대의 문화적 산물일 수 있다는 자각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지워지지 않은 역사적 상흔: 묵도와 식민지의 그늘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우리가 '경건'의 상징으로 여기는 순서들 속에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배어 있다는 점입니다. 예배 시작 전 일제히 고개를 숙이는 '묵도'의 특정한 의례 형식이 신사참배를 강요받던 시기와의 연관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은 우리를 숙연하게 합니다. 성찬식의 하얀 장갑 역시 일본 의전 문화의 영향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파헤치는 목적은 단순히 '폐지'를 주장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무엇이 복음에서 왔고 무엇이 시대적 아픔에서 기인했는지 '분별'하기 위함입니다. 모르고 지키는 것은 맹목이며, 모르고 버리는 것은 무책임입니다. 예배는 공동체의 역사와 신학이 응축된 결정체이기 때문입니다.

'아디아포라'와 건덕의 원리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성경에 명시되지 않은 예배의 요소들을 '아디아포라(adiaphora, 본질적이지 않은 것)'라 칭했습니다. 이는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루터는 이 자유의 기준을 '교회의 건덕(aedificatio)'에 두었습니다. 즉, 이 순서가 공동체의 신앙을 세우는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가에 따라 유지하거나 변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배의 형식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으나, 내용을 담는 그릇으로서 엄중합니다.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는 주장은 자칫 영지주의적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는' 성육신을 통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빵과 포도주, 물, 그리고 우리가 몸으로 표현하는 예전의 모든 형식은 가시적인 은혜의 통로가 됩니다.

1870년 전의 편지와 오늘의 주보

기원후 155년, 순교자 유스티누스가 로마 황제에게 보낸 편지에는 당시 그리스도인들의 예배 순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 봉독, 설교, 기도, 봉헌, 성찬. 놀랍게도 오늘날 우리가 들고 있는 주보의 골격과 거의 일치합니다. 비록 시대마다 옷은 갈아입었을지언정, 예배의 뼈대는 2000년을 관통하며 우리에게 이어져 내려온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주보를 단순히 순서지로만 보지 마십시오. 그것은 선배 신앙인들이 하나님을 대면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며 다듬어온 '영적 지도'입니다. 입당송부터 축도에 이르기까지, 각 순서가 왜 그 자리에 있는지 묵상하며 예배에 참여할 때, 우리의 예배는 관성을 넘어 살아있는 신앙의 고백이 될 것입니다.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고린도전서 14:26, NKRV)"

 

최주훈 / 중앙루터교회, <뉴스앤조이> 이사장의 통찰을 빌려 작성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