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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김병근 칼럼 / 세속적 이기주의와 거룩한 이기주의
테레사 수녀의 숭고한 헌신과 주식 시장에서 이윤을 좇는 트레이더의 치열함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겉보기에는 극단적인 이타심과 이기심의 대척점처럼 보이지만, 인간 행동의 가장 깊은 심연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다소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바로 인간은 결국 '자기 유익'을 좇아 움직이는 철저한 이기주의적 존재라는 사실이다.

심리학과 세속 학문이 바라보는 '호모 에코노미쿠스'
세속적 관점에서 인간의 이기심은 생존의 필수 조건이자 만고불변의 진리다. 진화심리학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라는 개념을 빌려, 인간의 모든 행동이 결국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고 생존 확률을 높이려는 정교한 전략이라고 설명한다. 타인을 돕는 이타적인 행동조차도 집단 내에서 자신의 평판을 높이거나 상호 호혜적 이익을 기대하는 '계산된 본능'이라는 것이다.
경제학은 한발 더 나아가 인간을 '호모 에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로 규정한다. 인간은 언제나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용을 추구하는 합리적 존재다. 심리학의 '심리적 이기주의(Psychological Egoism)' 역시 궤를 같이한다. 우리가 기부를 하거나 봉사를 할 때 느끼는 뿌듯함, 즉 뇌에서 분비되는 도파민과 내면의 평안이라는 '심리적 보상'이 없다면 인간은 결코 자발적으로 지갑을 열지 않는다. 결국 세속적인 잣대에서 볼 때, 선행은 타인의 필요와 나의 도덕적 만족감이 교환되는 고도의 이기적 거래인 셈이다.
신학이 말하는 원죄, 그리고 '거룩한 이기주의'
신학적인 잣대를 들이대면 이 이기주의의 뿌리는 태초의 에덴동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선악과를 따먹은 하와의 근원적 동기는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뱀의 유혹, 즉 창조주의 자리를 넘보는 피조물의 '교만과 자기애'였다. 아우구스티누스와 마르틴 루터는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자기 자신에게로 굽어버린 상태(Incurvatus in se)'라고 칭했다. 하나님과 이웃을 향해야 할 사랑의 시선이 오직 자기 자신만을 향하게 된 것, 이것이 기독교가 말하는 원죄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신앙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십자가의 길, 자기희생, 심지어 순교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만약 순교의 끝에 영원한 천국과 하나님의 상급이 아닌, 끔찍한 지옥만이 기다리고 있다면 과연 기꺼이 목숨을 던질 자가 있을까?
이 지점에서 우리는 '거룩한 이기주의'라는 역설적인 개념과 마주한다. 성경조차도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가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한다"(히브리서 11:6)고 말하며 인간의 보상 심리를 긍정한다. 믿음의 선진들이 고난을 견딘 것은 그 너머에 있는 '압도적인 영광과 영원한 유익'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존 파이퍼 같은 신학자는 이를 '기독교 희락주의'라 부르며, 구원받은 인간이 하나님 안에서 가장 큰 기쁨(유익)을 추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거룩한 본성이라고 역설했다. 결국 종교적 희생 역시, 세속적 쾌락 대신 영원한 가치에 자신의 모든 것을 베팅하는 '거룩한 이기주의'의 발로인 것이다.
무엇을 나의 유익으로 삼을 것인가
결국 인간은 세속적 이기주의의 노예이든, 거룩한 이기주의의 순례자이든, 자신의 궁극적인 만족과 유익을 추구하도록 설계된 존재임이 틀림없다. 모든 동기의 출발점에는 '나'라는 굳건한 성채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사실은 결코 인간을 깎아내리거나 절망케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얄팍한 도덕적 우월감을 내려놓고 우리의 민낯을 겸허히 직시하게 만든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기적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인간은 모두 이기적이다. 진짜 중요한 질문은 "나는 지금 무엇을 나의 가장 큰 유익으로 삼고 있는가?"이다.
찰나의 권력과 물질에서 유익을 찾는 '세속적 이기주의'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이웃을 향한 섬김과 영원한 가치 속에서 나의 가장 큰 기쁨을 발견하는 '거룩한 이기주의'로 나아갈 것인가.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남겨진 마지막이자 가장 위대한 선택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글쓴이: 김병근 (엠마오 상담대학 학장,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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