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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근 칼럼 / 감정의 창고

OCJ 2026. 10. 4. 03:11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예기치 않은 위기나 갈등을 마주할 때, 어떤 이는 쉽게 무너지고 어떤 이는 꿋꿋하게 버텨냅니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 마음속에 마련된 ‘감정의 창고’에 얼마나 많은 긍정적 잔고가 채워져 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세계적인 관계 전문가 존 가트맨(John Gottman) 박사는 인간의 감정이 건강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5대 1의 법칙'을 제시했습니다. 일상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나 부정적인 감정 1을 상쇄하기 위해서는 칭찬, 인정, 격려와 같은 긍정적인 감정이 무려 5배나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평온한 일상을 보낼 때 긍정적인 정서를 미리 감정의 창고에 넉넉히 쌓아두어야만, 위기의 순간에 관계와 마음이 파산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중요한 진리를 알려줍니다.

 


이 원리는 나 자신을 넘어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동일하게 작용합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칭찬과 인정,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는 단순한 인사를 넘어, 상대방의 텅 빈 감정 창고에 귀한 자본을 저축해 주는 생명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타인을 칭찬하고 세워주는 일에 서투릅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약점을 찾아내고 쉽게 비난하며 깎아내리려는 타락의 본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내버려 두면 잡초가 무성해지는 정원처럼, 우리의 마음은 의식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긍정적인 감정을 나누는 일은 처음부터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분명한 '의도'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어색하고 힘이 들더라도, 의도적으로 상대의 장점을 찾고 격려의 말을 건네는 훈련을 시작해야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감정의 창고’가 단순한 비유에 그치지 않고, 우리 뇌와 몸에서 일어나는 실제적인 생리적 현상이라는 사실입니다. 뇌과학과 신경생리학 연구들에 따르면, 우리가 누군가에게 진심 어린 칭찬과 격려를 건넬 때 뇌에서는 스트레스를 억제하는 ‘옥시토신’ 같은 긍정 호르몬이 분비되어 생리적 회복력을 높여줍니다. 또한 “신경세포들은 함께 점화할 때 함께 연결된다”는 신경가소성의 원리처럼, 의도적으로 긍정적인 감정을 나눌 때 우리의 뇌 신경 회로 자체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물리적 구조를 바꾸게 됩니다. 즉,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은 비유적인 의미를 넘어, 우리 뇌와 몸에 스트레스 방어선을 구축하는 매우 과학적이고 실재적인 '저축'인 셈입니다.

이러한 과학적 사실은 수천 년 전 기록된 성경의 지혜와도 정확히 일치합니다.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잠언 16:24)라는 말씀처럼, 우리가 의도적으로 건네는 칭찬과 격려는 상대방의 마음(감정)을 위로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뼈(육체)까지 살리는 회복의 능력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러한 원리는 우리의 영적인 생활에도 완벽하게 적용됩니다. 영혼의 호흡이라 불리는 기도는 곧 ‘영적인 창고’에 자본을 쌓는 일과 같습니다. 당장 눈앞에 결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평소에 꾸준히 기도의 분량을 쌓아두면, 그 기도는 결코 허공으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영적인 창고에 차곡차곡 쌓였던 기도는 내 삶에 감당하기 힘든 고난과 영적 가뭄이 찾아왔을 때, 비로소 능력이 되어 나를 살리는 생수로 다시 꺼내어 쓸 수 있게 됩니다.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두 개의 창고가 있습니다. 하나는 따뜻한 말로 채워지는 감정의 창고이고, 다른 하나는 무릎으로 채워지는 영적인 창고입니다. 오늘 하루, 만나는 누군가에게 의도적인 칭찬과 격려를 건네어 그의 감정 창고를 채워주는 것은 어떨까요? 그리고 조용히 두 손을 모아 내 영혼의 창고에 기도를 저축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미리 채워둔 이 보물들이 언젠가 나와 우리가 무너지지 않도록 든든하게 지켜줄 것입니다.

글쓴이: 김병근 (엠마오 상담대학 학장, Ph.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