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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김병근 칼럼 / " 난 괜찮아요"

시드니에 봄이 찾아오는 자락이면, 텅 빈 공원의 어귀에는 언제나 홀로 선 한 그루의 검 츄리가 백색의 속살을 드러낸 채 서 있다. 계절의 바뀜을 맞이할 때마다 이 나무는 지난겨울 온몸에 켜켜이 쌓아 두었던 껍질을 훌훌 벗어 던지곤 한다. 세상의 모든 갑옷을 내려놓은 듯 알몸으로 가만히 서 있는 그 형상은, 보는 이의 마음 한구석을 아리게 할 만큼 처연한 동정심을 자아낸다.
심술궃은 봄바람이 거칠게 불어 닥치는 날이면 나뭇가지들은 쉴 새 없이 가늘게 떨며 비명을 지르지만, 땅속 깊이 박힌 단단한 몸통만큼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킨다. 하루에도 수천 명의 발걸음이 무심하게 그 앞을 스쳐 지나가지만, 나무는 그저 고요한 침묵으로 세상을 관조할 뿐이다.
문득 그 앙상하고도 꼿꼿한 모습에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깊은 고독을 느낀다. 생각해보면 나무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없다. 가고 싶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도 없고, 매서운 추위나 뜨거운 햇살을 피해 달아날 수도 없다. 오직 한 자리에 뿌리박힌 채, 다가오는 모든 계절과 풍파를 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운명이다.
그것은 아침에 마음이 바뀌고 저녁이면 바람처럼 흔들리는 우리 인간의 모습과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우리는 사소한 일에도 이리저리 부대끼고, 조석지변(朝夕地變)으로 마음의 주소를 바꾸며 살아가지 않는가. 심지어 나무가 매년 자연스럽게 낡은 껍질을 벗어내며 스스로를 치유하는 것과 달리, 우리 인간은 이기적인 욕망과 집착의 껍질을 결코 벗어던지지 못한 채 오히려 더 두껍고 탁한 마음의 병에 물들어 가기만 한다.
끊임없이 흔들리면서도 안으로는 욕망을 찌꺼기처럼 쌓아가는 인간 군상의 가벼움에 비해, 나무가 평생을 바쳐 지켜내는 그 묵직한 한 자리는 오히려 경외감마저 불러일으킨다. 움직이지 못하는 속박이 아니라, 그 속박 속에서 스스로를 정화하며 피어나는 절대적인 항구성이야말로 나무만의 위대한 자유인 셈이다.
견딜 수 없이 쓸쓸한 기분이 밀려오는 날이면,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두 팔을 벌려 그 거친 몸통을 힘껏 껴안는다. 서늘하고 단단한 나무의 결이 손바닥에 전해져 올 때, 귓가로 스치는 바람 소리가 문득 고요해지며 환청 같은 목소리가 가슴속을 파고든다.
"난 괜찮아요."
정말 괜찮은 걸까. 매년 스스로의 껍질을 벗어내며 상처를 치유하고, 거센 바람 속에서도 꺾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그 무언의 외침이 아닐까.
오늘도 어김없이 서늘한 새벽 공기를 가르며 출근길에 오른다. 공원 앞을 지나치다 문득 멈춰 서서 나무를 향해 가벼운 인사를 건넨다.
"오늘 하루도 잘 참고 살아가 줘. 나도 흔들릴지언정 내 자리를 지켜볼게."
나무는 오늘도 대답이 없고, 바람만 그의 어깨를 쓸고 지나간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조석으로 변하는 세상 속에서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는 그 침묵이야말로, 서로가 서로에게 건네는 가장 단단한 위로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하리라" (예레미야 17:7-8)
글쓴이: 김병근 (엠마오 상담대학 학장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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