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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포성 속의 평화 협상: 총을 내려놓지 않는 자와의 대화가 남기는 질문
[OCJ 논설] 주요 이슈: 2026년 9월 12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G20 정상회의에서 평화 협상을 제안했으나 러시아가 협상 중에도 군사 공격을 지속하겠다며 거부한 지정학적 긴장 이슈

2026년 9월 12일, 전 세계의 이목은 다시 한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향했다.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은 오는 12월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서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 직접 만나 평화 협상에 임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4년 넘게 이어진 끔찍한 소모전과 희생을 끝내기 위해, 침략국의 정상과 마주 앉겠다는 결단은 분명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러시아의 반응은 차갑고도 잔혹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협상 기간 중에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작전과 공격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사실상 총을 든 채로 평화를 논하겠다는 오만한 태도를 보였다.
대화의 테이블에 앉으면서도 상대방을 향한 폭격을 멈추지 않겠다는 선언은, 현대 지정학적 외교가 얼마나 냉혹하고 기만적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평화 협상이란 본디 양측이 서로의 생명과 존엄을 인정하고, 피 흘림을 멈추기 위한 진정성 있는 결단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총구를 겨눈 채 이루어지는 대화는 평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명분과 군사적 우위를 굳히기 위한 또 다른 형태의 전쟁 도구에 불과하다. 이는 강대국의 논리가 약자의 고통을 어떻게 철저히 무시하는지를 보여주는 비극적인 단면이다.
성경이 말씀하는 평화, 즉 '샬롬(Shalom)'은 단순히 전쟁이 일시적으로 멈춘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정의가 바로 서고, 생명이 보호받으며, 억압하는 자가 그 폭력을 온전히 내려놓을 때 비로소 피어나는 거룩한 질서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렘 6:14)라고 탄식하며, 폭력과 불의를 덮어둔 채 외치는 거짓 평화를 매섭게 꾸짖었다. 군사력을 앞세워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압박 속에서 맺어지는 조약은 진정한 샬롬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총성 속에서 평화를 구걸해야 하는 이 시대의 모순 앞에서 깊이 기도해야 한다. 무력을 포기하지 않는 강자의 오만함이 꺾이고, 오랜 전쟁으로 찢겨진 우크라이나 땅과 수많은 갈등 지역에 참된 회복이 임하기를 간구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힘의 논리에 의해 평화가 흥정되는 현실을 직시하며, 하나님께서 '활을 꺾고 창을 끊으시며'(시 46:9) 이 땅에 세우실 온전한 정의와 평화의 나라를 소망해야 한다.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내어주심으로 원수 된 것을 허무신 '평화의 왕'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가, 오늘날 피 흘리는 모든 분쟁의 땅 위에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그가 땅 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시는도다 - 시편 46:9
#평화협상 #우크라이나전쟁 #지정학적긴장 #샬롬 #기독교적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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