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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 일은 작았다” 평생 겸손과 공의로 한국을 섬긴 호주 변조은(존 브라운) 선교사 별세

OCJ 2026. 7. 19. 06:08

한국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진정한 벗이자 ‘공의의 선교사’로 불렸던 호주연합교회(UCA) 소속 존 브라운(John P. Brown, 한국명 변조은) 선교사가 지난 7월 17일 오후 3시 30분, 호주 캔버라의 라이프케어가든스 요양원에서 노환으로 평안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향년 92세입니다. 평생을 겸손과 공의의 삶으로 채웠던 고인의 소천 소식은 한국과 호주 교계 모두에 깊은 슬픔과 함께 잔잔한 신앙적 울림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6·25 전쟁의 아픔을 품고 한국 땅으로


1933년 남호주 마운트 갬비아의 경건한 농가에서 태어난 변조은 선교사는 멜버른 대학교 재학 시절 뉴스를 통해 한국전쟁의 참상을 접했습니다. 이름조차 생소했던 먼 이국의 고통받는 이들을 돕기로 결심한 그는 멜버른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1958년 호주장로교 목사로 안수를 받았습니다. 이후 1960년 초, 아내 노마 브라운(Norma Brown, 한국명 노미연) 선교사와 두 살배기 아들과 함께 피난민들이 가득했던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농촌의 자립과 소외된 자들을 위한 헌신


변 선교사는 마산과 거제 등 경남 지역의 가난한 농촌교회를 섬기며 복음 전파와 함께 실질적인 농가 자립을 도왔습니다. 1966년에는 호주에서 우유가 많이 나오고 고기가 많은 품종의 우수한 젖양과 돼지를 직접 배에 싣고 태평양을 건너와 농가에 무상으로 보급했습니다. 이 가축 프로젝트를 돕기 위해 호주 성도들은 ‘존 브라운 돼지 클럽’을 조직해 후원하기도 했습니다. 아내 노마 선교사 역시 홀로 된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수공예 프로젝트를 열어 자수 제품을 호주에 판매하며 자녀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도록 도왔습니다. 또한 고아였던 딸 순자 씨를 사랑으로 입양해 세 자녀를 키우며 삶 자체로 사랑을 증명했습니다.

강단에서 뿌린 ‘공의의 신학’과 민주화 지원


1964년부터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구약학과 히브리어를 가르치던 변 선교사는 신학생들 사이에서 ‘공의의 선지자 아모스’로 불렸습니다. 그는 엄혹한 군사독재 시절 고초를 겪는 제자들을 보며 성경의 정의를 한국 사회에 어떻게 실천할지 깊이 고민했습니다. 제자인 인명진 목사에게 영등포산업선교회 사역을 권유하고 호주 교회를 통해 재정을 지속해서 지원했으며, 김진홍 목사의 신학생 시절 가난한 이웃의 장례를 치르도록 자신의 차량과 장례비를 아낌없이 내어준 일화는 유명합니다. 그는 선교사가 주도권을 쥐고 있으면 한국교회가 자립할 수 없다며 서구 선교부의 선교재산을 한국교회에 조기 이양하는 파트너십 선교관을 확립한 선구자이기도 했습니다.

호주 귀국 후에도 이어진 사랑과 화해의 여정


1972년 호주로 귀국한 후에도 변 선교사의 한국 사랑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1974년 호주 최초의 한인교회인 시드니한인연합교회 설립을 주도했으며, 한국의 민주화 인사들과 이민자들을 보호하고 지원했습니다. 또한 호주연합교회 총회 선교부 총무로 일하며 호주 백인 사회가 원주민들에게 행한 과거사를 회개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1994년 총회가 원주민 학살과 차별 역사에 대해 공식 사과할 때 사과문 초안을 직접 작성한 이가 바로 그였습니다. 이러한 공로로 호주 정부로부터 호주 훈장(Order of Australia)과 건국 백 주년 메달을 받았으며, 한국의 장신대와 계명대에서 명예신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내가 한 일은 작았다” 끝까지 겸손했던 삶


말년에 시력이 약해지는 등 건강이 쇠약해진 와중에도 변 선교사는 늘 겸손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최근 그의 평전을 준비하던 양명득 선교사가 지난 5월 요양원을 방문해 책 집필 소식을 전하자, 변 선교사는 “나에 관한 책은 아마 작은 책일 겁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자신이 한 일은 아주 작고 소박하다는 고인의 깊은 겸손이 묻어나는 고백이었습니다. 비록 평전 완성을 직접 보지 못하고 하늘의 부르심을 받았으나, 그의 고귀한 삶의 자취는 신앙의 후대들에게 큰 영감과 도전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고인의 출판 기념 예배는 오는 8월 7일 부산 일신기독병원에서 진행될 예정입니다.


[EDITOR'S NOTE]
존 브라운(변조은) 선교사의 삶은 우리에게 참된 선교와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깊이 묵상하게 합니다. 그는 낯설고 가난한 한국 땅에 찾아와 복음을 전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며 공의와 사랑을 몸소 실천했습니다. “내가 한 일은 작았다”는 그의 마지막 고백은, 오늘날 대형화와 성과주의에 빠지기 쉬운 현대 교회와 크리스천들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진정한 위대함은 스스로를 낮추고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만을 드러내는 겸손에 있음을 보여준 변 선교사의 삶을 기억하며, 오세아니아와 한국 교회가 그의 ‘공의와 겸손’의 영성을 이어받아 이 땅의 소외된 이웃들을 향해 나아가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