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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순간을 맡기는 신뢰의 신학"… 찬송가 543장 '어려운 일 당할 때'가 건네는 역사적 위로와 치유의 힘

OCJ|2026. 6. 22. 06:30

인생의 거센 폭풍우 속에서 한 걸음조차 내딛기 힘들 때, 전 세계 기독교인들의 입술을 통해 흘러나오는 찬송이 있습니다. 바로 한국 교회 성도들에게도 친숙한 《21세기 새찬송가》 543장 '어려운 일 당할 때'(원제: Simply Trusting Every Day)입니다. 19세기 후반 미국 복음성가 운동의 정수에서 탄생한 이 찬송은 단순한 종교 음악을 넘어, 인간 영혼의 가장 깊은 불안을 어루만지는 심리적 치유 기제이자 한국 근현대사의 질곡을 함께 견뎌낸 영적 동반자였습니다. 이 찬송가에 숨겨진 깊은 역사적 배경과 치유의 비하인드 스토리, 그리고 한국 교회의 수용사를 심층적으로 조망해 보고자 합니다.

전쟁터와 거친 물결 위에서 길어 올린 평신도의 고백

 


이 곡의 가사를 쓴 에드가 페이지 스티츠(Edgar Page Stites, 1836~1921)는 상아탑에 갇힌 신학자가 아닌,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경험한 평신도 사역자였습니다.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온 청교도의 후손인 그는 남북전쟁 당시 연방군의 식량 보급 실무를 담당하며 전쟁의 참상과 죽음의 공포를 직접 목도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델라웨어 강의 험난한 물길을 안내하는 도선사로 일했습니다. 거센 물살 속에서 오직 나침반과 항로만을 의지해 배를 몰아야 했던 그의 직업적 경험은 가사 1절에 등장하는 "폭풍우 치는 길을 지날 때도 의지하며"라는 실존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의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스티츠는 평생 자신의 찬송시로 단 한 푼의 재정적 이득도 취하지 않는 무소유의 철학을 지켰으며, 복잡한 교리가 아닌 일상에서의 순종과 신뢰를 보편적인 언어로 찬송에 담아냈습니다.

신문 스크랩에서 시작되어 죽음의 공포를 걷어낸 선율

이 위대한 찬송시가 오늘날의 멜로디를 입게 된 과정은 매우 극적입니다. 스티츠가 신문에 기고했던 이 시를 우연히 읽고 매료된 부흥사 드와이트 무디(Dwight L. Moody)는 그의 음악적 동역자이자 '복음성가의 아버지'인 아이라 데이비드 생키(Ira D. Sankey)에게 작곡을 의뢰했습니다. 생키는 1876년 시카고 집회 중 오르간 앞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즉흥적인 멜로디를 써 내려갔고, 이 곡은 단 한 음표의 수정도 없이 완성되었습니다.

이 찬송의 진정한 힘은 임종을 앞둔 한 여성이 겪은 일화에서 더욱 빛을 발합니다. 극심한 고통과 죽음 이후의 미지에 대한 공포로 절망하던 여성에게 한 목회자가 이 찬송의 후렴구인 "순간들이 날아갈 때도 의지하며, 날들이 지나갈 때도 의지하며"라는 구절을 천천히 읽어주었습니다. 

이를 들은 여성은 "내가 '지금 이 순간(this moment)'만큼은 주님을 의지할 수 있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거대한 미래의 불안을 '지금 이 찰나의 순간'으로 쪼개어 하나님께 맡김으로써 그녀는 마침내 깊은 평안 속에 눈을 감을 수 있었습니다. 이는 현대 심리학에서도 주목하는 불안 통제 및 인지적 전환의 탁월한 영적 솔루션인 '순간의 신학'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음악적 구조에 숨겨진 위로와 평안의 메커니즘

음악학적으로 이 찬송은 회중의 정서적 안정감을 극대화하도록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곡의 도입부인 1마디에서 4마디는 좁은 음역대 내에서 조심스럽게 하행하는 선율을 보여주는데, 이는 고난 앞에 위축되고 불안해하는 인간의 내면 상태를 청각적으로 묘사합니다. 

그러나 후렴구인 "세월 지나갈수록"에 이르면 선율이 3도와 4도로 크게 도약하며, 두려움을 떨쳐내고 신앙적 확신으로 나아가는 영적 결단을 극적으로 표현합니다. 마지막으로 종지부에서는 6/8박자 특유의 리듬이 마치 흔들의자나 요람이 흔들리는 듯한 요동 효과(Rocking Motion)를 만들어내며, 상처받은 영혼을 따스하게 안아주는 자장가와 같은 심리적 안정감을 선사합니다.

수난과 분단의 역사 속 한국 교회의 영적 피난처

이 찬송이 한국 땅에 상륙한 것은 1908년 《찬숑가》 제197장에 수록되면서부터입니다. 을사늑약 이후 국권을 상실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어려운 일 당할 때 나의 믿음 적으나"라는 고백은 조선의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무너지지 않는 영적 회복탄력성을 제공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말기인 1939년, 한국 장로교회가 편찬한 《신편 찬송가》에서는 이 곡의 멜로디에 배위량(William M. Baird) 선교사가 한글로 쓴 '떠날 것이올시다'라는 새로운 가사가 붙어 수록되기도 했습니다. 신사참배 강요와 탄압 속에서 현실의 고통을 극복하고 천국 소망을 갈구하는 내세 지향적 찬송으로 널리 불렸으나, 해방 이후 남한 찬송가에서는 삭제되고 본래 스티츠의 가사인 '어려운 일 당할 때'가 복원되었습니다. 

반면 북한의 조선그리스도교련맹은 "세상 영화가 헛되니 떠나겠다"는 허무주의적 가사가 주체사상과 현세의 사회주의 낙원 건설이라는 체제 이데올로기와 충돌한다는 이유로 이 곡을 강제로 삭제하고 검열하는 역사적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EDITOR'S NOTE]
오늘날 우리는 또 다른 형태의 폭풍우 속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경제적 불안정, 관계의 갈등, 그리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끊임없이 우리의 믿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이 찬송가가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큰 위로는 '내일의 고통까지 오늘 미리 짊어질 필요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욥의 고난 속에서도, 사울을 피해 도망치던 다윗의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은 늘 '지금 이 순간'의 피난처가 되어 주셨습니다. 거대한 폭풍우를 단번에 멈추려 애쓰기보다, 숨을 쉬는 바로 지금 이 찰나의 순간을 주님 손에 온전히 위탁하는 것, 그것이 바로 찬송가 543장이 가르쳐주는 가장 단순하고도 강력한 신앙의 지혜입니다. "무슨 일을 당해도 예수 의지합니다"라는 고백이 오늘을 살아가는 오세아니아와 전 세계 모든 성도들의 삶에 실제적인 평안으로 역사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