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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침묵과 간구를 하나로 모으는 시간"… 한국교회 ‘대표 기도’의 역사적 기원과 예배의 본질

OCJ|2026. 6. 21. 05:44

호주와 뉴질랜드, 피지 등 오세아니아 전역의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에서 주일 아침마다 드려지는 예배에는 늘 익숙한 풍경이 있습니다.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회중을 대표하는 장로와 집사 등 평신도 지도자가 강대상 앞으로 나아가 마이크를 잡습니다. 그리고 나라와 민족, 선교지, 그리고 성도들의 구체적인 삶의 애환을 담아 약 10분 가까이 간절한 기도를 이어갑니다. 회중은 눈을 감고 간절히 "주여" 혹은 "아멘"으로 화답하며 기도에 동참합니다. 

이처럼 한국 개신교인들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은혜로운 '대표 기도'의 시간이지만, 정작 영국의 성공회나 독일의 루터교, 혹은 로마 가톨릭 전례에 익숙한 외국인 신자들에게는 낯선 풍경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회중석에서 일어난 한 개인이 즉흥적이면서도 길게 기도를 이끌어가는 형식이 그들에게는 생소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매주 우리가 드리는 이 대표 기도는 어디에서 유래했으며, 그 본래의 신학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익숙함 속에 감춰진 질문: 대표 기도는 어디서 왔을까


역사적으로 볼 때, 오늘날 우리가 한국교회에서 '대표 기도'라고 부르는 예배 순서의 본래 이름은 라틴어로 '콜렉타(Collecta)'입니다. 5~6세기경 로마 교회에서 예배 의식이 정착될 당시에는 단순히 '기도(oratio)'라고 불렸으나, 8세기 무렵 갈리아 전례가 로마로 유입되면서 '콜렉타'라는 공식 명칭을 얻게 되었습니다. 

라틴어 콜렉타는 '모으다'라는 동사에서 유래한 말로, 여기에는 두 가지 깊은 예배학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1. 예배에 모인 회중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사롭고 다양한 간구를 하나의 큰 흐름으로 모은다는 뜻입니다. 
2. 입당송, 자비송(Kyrie), 대영광송으로 이어지는 예배 시작 예식의 모든 흐름을 하나의 매듭으로 묶어 마무리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 따라 현재 한국 천주교와 성공회는 이 기도를 '본(本)기도'라 부르고, 루터교회는 '오늘의 기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침묵의 간구를 묶어 올리는 정교한 예배의 호흡


전례교회에서 콜렉타가 작동하는 방식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정교합니다. 집례자가 "기도합시다"라고 권고하면, 온 회중은 잠시 침묵에 잠깁니다. 이 짧은 침묵의 시간이 바로 콜렉타의 핵심입니다. 성도들은 이 시간에 한 주간 세상 속에서 겪었던 삶의 무게, 가족에 대한 염려, 일터에서의 고민 등 각자의 내밀한 기도 제목들을 하나님 앞에 올려드립니다. 

이러한 개인의 사사로운 기도가 침묵 속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후, 집례자는 그날의 교회력과 성서정과, 그리고 설교 주제에 맞추어 미리 정성스럽게 작성된 짧은 콜렉타 본문을 낭독합니다. 회중은 이에 "아멘"으로 응답합니다. 즉, 인도자의 한 줄짜리 짧은 기도가 회중 각자의 침묵 기도를 한 자루로 묶어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콜렉타의 진정한 무게는 화려하고 긴 미사여구가 아니라, 회중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짧음과 정제됨'에 있습니다.

즉흥성을 넘어선 책임과 다듬어짐의 미덕


역사 속에서 콜렉타는 결코 즉흥적인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4세기 이후 교회는 회중 전체를 책임지는 기도의 무게감을 인식하고, 공동체를 대표하는 성직자의 지도 아래 정성스럽게 다듬어진 기도문 형식으로 이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한국 루터교회에서 이를 '오늘의 기도'라고 부르는 이유 역시, '오늘'이라는 단어 안에 그날의 교회력과 성경 본문, 그리고 오늘 이곳에 모인 회중의 삶이 고스란히 압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유롭고 즉흥적인 기도 역시 성령의 역사하심 속에서 귀한 미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회중에 대한 책임이 결여된 자유는 자칫 회중이 동참할 수 없는 '개인만의 독백'이나 '청중을 향한 설교조의 훈계'로 흐르기 쉽습니다.

참된 대표 기도의 회복을 위한 성찰


오늘날 한국교회가 대표 기도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 두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첫째, 이 순서가 진정으로 회중을 대표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기도를 인도하는 이의 목소리 속에 성도들의 치열한 한 주간의 삶이 녹아 있는지, 회중이 침묵 속에서 함께 호흡하고 있으며, 마음 깊이 "아멘"으로 동의할 수 있는 기도가 드려지고 있는지 성찰해야 합니다. 

둘째, 이 순서가 영적 책임감 안에서 정성스럽게 준비되고 다듬어지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다음 주일 예배에서 누군가 강대상에 올라 마이크를 잡을 때, 우리는 그 기도가 한 개인의 신앙적 웅변에 그치고 있는지, 아니면 성도들의 침묵 어린 간구들을 하나로 모아 보좌 앞으로 올려드리는 참된 '콜렉타'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아야 할 것입니다.

[EDITOR'S NOTE]
호주와 뉴질랜드를 비롯한 오세아니아의 교회들은 다양한 언어와 문화, 그리고 교파적 전통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신앙의 모자이크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교회의 독특한 유산인 '대표 기도'를 고대 교회의 '콜렉타(Collecta)' 전통에 비추어 돌아보는 것은 매우 뜻깊은 일입니다. 

우리는 때로 예배의 공간을 화려하고 많은 말로 채워야만 은혜롭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참된 기도의 능력은 말의 유창함이나 길이보다, 상하고 갈급한 심령들의 침묵을 품어 안는 품에 있습니다. 이번 주일 예배에는 대표 기도자가 마이크를 잡기 전, 온 회중이 주님 앞에서 드리는 '거룩한 침묵의 1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성도들의 삶의 고백이 담긴 침묵의 간구들을 정성스레 모아 하나님께 올려드릴 때, 우리의 예배는 더욱 깊은 일치와 회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오세아니아의 모든 한인교회와 다문화 교회들이 이 깊은 기도의 호흡을 통해 참된 예배의 기쁨을 누리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