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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밑에서 부르는 영혼의 찬가: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의 궤적과 오세아니아 디아스포라를 위한 목회적 성찰

OCJ|2026. 6. 17. 04:52

이민자의 고단한 삶과 영적인 야전병원

호주를 비롯한 오세아니아 지역에 뿌리를 내린 한인 이민 1세대와 그 후손들의 삶은 고단한 노동과 치열한 생존의 연속입니다. 낯선 이국땅에서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많은 한인 교포들이 청소, 세차, 타일, 배관 등 강도 높은 육체노동 현장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성도들이 이민 사회의 거친 파도와 싸우며 눈물로 제단을 쌓고 있습니다. 호주 시드니의 리드컴(Lidcombe) 지역을 비롯해 오세아니아 전역에 흩어져 있는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들은 이처럼 상처 입고 지친 영혼들이 십자가의 은혜를 의지하여 다시 일어서는 영적 야전병원과도 같은 역할을 감당해 왔습니다.

이러한 고난의 현실 한가운데서 성도들의 입술을 통해 흘러나오는 찬송은 단순한 종교적 선율을 넘어섭니다. 그것은 삶의 무게에 짓눌려 쓰러진 영혼을 은혜의 보좌로 이끄는 강력한 견인선이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빛을 향해 내딛는 믿음의 결단입니다. 한국 교회 성도들에게 가장 널리 불리며 영적 위로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원제: Singing I Go)"는 바로 이러한 삶의 무거운 짐을 갈보리 십자가 밑에 풀어놓는 영광스러운 신앙의 역설을 담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토록 승리와 평안의 메시지로 가득 찬 찬송시가 잉태된 자리는 평온한 서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육체를 찢는 처절한 고통과 병상에 갇힌 무력감, 가해자를 향한 끓어오르는 증오, 그리고 사회적 최하층에 속했던 한 흑인 청소부 여성과의 만남이 교차하는 치열한 영적 투쟁의 현장이었습니다.

엘리자 히윗의 고난과 영혼의 어두운 밤

찬송시 "주 안에 있는 나에게"를 작사한 엘리자 에드먼즈 히윗(Eliza Edmunds Hewitt, 1851~1920) 여사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명석한 교육자였습니다.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후 공립학교 교사로 부임하여 평생을 독신으로 헌신했고, 주일학교 교장으로 섬기며 소외된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1887년 겨울, 그녀의 평온하고 헌신적이었던 일상에 예기치 못한 비극이 찾아왔습니다. 학교에서 반항적인 학생을 훈육하던 중, 분노한 학생이 던진 무거운 지붕 슬레이트(돌판)에 등을 맞아 척추가 심하게 골절되는 사고를 당한 것입니다. 이 사고로 그녀는 상반신 전체를 석고 붕대(body cast)로 감싼 채 침대에 결박되었고, 대소변조차 타인의 손에 의지해야 하는 처참한 반신불수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 고립의 시기 동안 히윗 여사의 내면은 처절한 영적 암흑기를 통과했습니다. 머리로는 원수를 사랑하고 범사에 감사해야 한다는 성경의 진리를 알고 있었지만, 현실의 극심한 고통과 배신감 앞에서는 무력했습니다. 그녀의 마음은 서서히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가해 학생을 향한 통제할 수 없는 분노로 가득 차올랐으며, 매일같이 깊은 우울증에 시달리며 영적으로 쓰러져 가고 있었습니다.

낮은 자를 통해 임한 회개와 용서의 기적

히윗 여사를 자기 연민의 늪에서 건져내어 찬송의 세계로 이끈 결정적인 계기는 저명한 신학자의 설교가 아닌, 당시 사회에서 가장 천대받던 한 이름 모를 흑인 청소부 여성과의 만남이었습니다. 

1888년의 어느 봄날, 육체적 통증과 분노로 예민해져 있던 히윗 여사의 병실에 흑인 청소부 아주머니가 들어왔습니다. 당시 미국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위치했던 그녀는 남들이 꺼리는 병실 청소를 하면서도 얼굴에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콧노래로 주님을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비참한 현실과 청소부의 이해할 수 없는 기쁨이 대조를 이루자, 히윗 여사는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였습니다.

"이봐요! 청소부 주제에 뭐가 그리 좋다고 생글거리는 거예요? 도대체 청소하는 것이 뭐가 그렇게 기뻐서 찬양을 부르는 겁니까?"

그 날 선 질문에 청소부 아주머니는 빗자루를 멈추고 맑은 눈빛으로 대답했습니다.

"좋지 않다니요? 나에게 닥친 모든 형편과 어려움이 찬송으로 바뀔 수 있는 힘을 주님이 주셨으니 즐거울 수밖에요!"

이 짧은 간증은 히윗 여사의 영혼을 깨우는 강력한 은혜의 망치였습니다. 환경이 좋아서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참혹한 환경조차도 십자가의 은혜 안에서 찬송의 재료로 변환시키는 신적 능력이 있기에 기뻐한다는 참된 고백이었습니다. 히윗 여사는 "그렇구나... 나는 나에게 닥친 고난에 대해 하나님을 원망하기만 했구나!" 라며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회개는 즉각적인 삶의 변혁을 가져왔습니다. 그녀를 고통스럽게 했던 가해 학생을 향한 진정한 용서가 피어났고, 증오가 사라지자 의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신체적 치유가 뒤따랐습니다. 석고 붕대를 풀고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난 날, 그녀는 공원을 산책하며 찬송가 428장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를 지었고, 이어 1898년 자신의 고백을 담아 "주 안에 있는 나에게(Singing I Go)"를 발표했습니다.

'Singing I Go'의 신학적 깊이와 선율의 마술사

이 찬송의 시적 영감은 시편 55편 22절과 시편 119편 54절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으며, 원문 가사를 통해 고난의 신비와 대속의 은혜를 노래합니다.

1. 1절 (The trusting heart to Jesus clings...): 'Cling'은 절대적인 의존을 뜻합니다. 육체가 마비된 상태에서 영혼이 예수께 '착 달라붙어' 있음을 묘사하며, 우리의 무거운 짐(loads)이 십자가 위에서 '들어 올려졌음(lifted)'을 고백합니다.
2. 2절 (The passing days bring many cares...): 날마다 밀려오는 염려와 두려움이 기도로 전환(turned to prayers)될 때 한숨이 노래가 되는 영적 메커니즘을 보여줍니다.
3. 3절 (He tells me of my Father's love...): 미래를 잃어버린 상황에서도 졸지 않으시는 아버지의 눈동자(never slumb'ring eye)를 신뢰하며, 하늘의 왕이 모든 필요를 공급하실 것을 확신합니다.
4. 4절 (When to the throne of grace I flee...): 나를 해친 폭력적인 손이 아니라 나를 지탱하시는 전능자의 강한 팔(mighty arms)이 내 짐마저 짊어지심을 찬양합니다.
5. 후렴 (Singing I go along life's road...): 꼼짝할 수 없던 병자가 "인생의 여정을 노래하며 걸어가리라"고 선포하는 기독교적 역설의 절정입니다.

이 장엄한 고백이 전 세계 교회의 찬양으로 불릴 수 있었던 것은 당대 최고의 작곡가 윌리엄 제임스 커크패트릭(William James Kirkpatrick, 1838~1921)의 공헌이었습니다. 그는 목수와 가구 제작자로 일하면서도 교회 음악에 전념한 이중 직업(bi-vocational)의 고단한 삶을 살았던 인물입니다. 그가 작곡한 내림가장조(A flat major)에 6/8박자의 경쾌한 멜로디는 십자가 밑에서 짐을 벗어버리고 천성을 향해 걸어가는 그리스도인의 구속적 환희를 완벽하게 구현했습니다. 그는 1921년, 서재에서 찬송가를 작곡하던 중 평온하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엘리자 히윗의 또 다른 신앙 유산들

사고의 후유증으로 평생을 반(半)장애인으로 살아야 했지만, 히윗 여사는 펜을 들어 수백 편의 찬송시를 남기며 전 세계 영혼들을 깨웠습니다. 그녀가 남긴 대표적인 찬송시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주 안에 있는 나에게' (Singing I Go / 370장): 척추 부상 중 흑인 청소부와의 대화로 회개하고 용서한 뒤 지은 신앙 고백적 찬양입니다.
2.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There Is Sunshine in My Soul Today / 428장): 석고 붕대를 풀고 공원을 산책한 후, 육신의 회복과 영적 기쁨을 햇빛에 비유하여 지은 곡입니다.
3. '우리 다 천국에 올라가면' (When We All Get to Heaven / 미수록): 천국의 소망을 그리며 완성한 찬송입니다.
4. '내 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 (More About Jesus Would I Know / 315장 일부): 고통 속에서 그리스도의 본성을 더 깊이 알기를 열망하며 작시했습니다.
5. '내 면류관에 별이 있을까' (Will There Be Any Stars in My Crown? / 미수록): 평생 주일학교 교육에 헌신한 사역과 영혼 구원의 상급에 대한 소망을 담았습니다.

디아스포라 교회를 향한 세 가지 목회적 성찰

이 오래된 찬송의 역사는 오늘날 오세아니아 이민 사회의 고단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의 실존적 문제에 세 가지 명확한 해답을 제시합니다.

1. 고난을 해석하는 십자가의 렌즈: 기독교 신앙의 위대함은 고난 자체를 면제해 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최악의 고난이라도 십자가의 은혜를 통과하면 찬송의 재료로 바뀔 수 있다는 역설에 있습니다. 두려움이 기도로 전환될 때, 마음을 짓누르던 무거운 짐이 십자가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는(slip away)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2. 경계를 허무는 복음과 직업의 거룩함: 엘리트 교사였던 히윗에게 영적 각성을 일으킨 이가 가장 멸시받던 흑인 청소부였다는 사실은 심오한 성찰을 줍니다. 오세아니아의 청소, 건축, 농장 현장 등 가장 낮은 곳에서 땀 흘리는 교포들의 노동은 거룩합니다. 삶의 밑바닥 현장에서 하나님을 향한 찬송을 잃지 않는 투박한 성도의 삶은 그 자체로 위대한 복음의 증거입니다.


3. 용서를 통한 참된 치유와 자유: 히윗 여사가 십자가 밑에서 짐을 풀었다는 것의 완성은 가해자를 향한 용서였습니다. 용서는 증오라는 감옥에 갇혀 질식해 가는 내 영혼을 살려내는 하나님의 생명줄입니다. 분노가 용서와 긍휼로 전환될 때, 영혼의 자유와 함께 육신의 치유라는 초자연적인 역사가 일어납니다.

[EDITOR'S NOTE]
오늘날 호주와 뉴질랜드 등 오세아니아 이땅에서 나그네로 살아가는 디아스포라 성도들의 삶은 때로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원한 왕이신 주님께서는 졸지 않는 눈동자로 우리의 궁핍함을 채우시며 전능한 팔로 우리를 안위하고 계십니다. 

과거의 상처와 억울함, 이민 생활의 무거운 짐을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 밑에 온전히 내려놓기를 소망합니다. 부서진 몸으로 영혼의 찬가를 불렀던 엘리자 히윗처럼, 고된 빗자루질 속에서도 하늘의 평안을 노래했던 청소부 아주머니처럼, 우리 역시 눈물을 닦고 이렇게 선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