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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평범한 일상 속으로 스며든 고요한 은혜
[영혼의 미술관] 미술관의 한구석,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그림 한 점이 있습니다. 화려한 금빛 후광도, 천사들의 비상(飛上)도 없는 이 그림 앞에서는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고요해집니다. 미국 출신의 화가 가리 멜처스(Gari Melchers)가 그린 <설교(The Sermon)> 입니다.

자신이 속해 있던 당대 예술계의 화려한 문법과 번잡한 도시를 뒤로한 채, 멜처스는 네덜란드의 작은 어촌 마을로 스며들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거대하고 장엄한 성당이 아닌, 가장 낮은 자들이 모인 단출한 시골 예배당의 뒷자리에 조용히 앉았습니다. 그림 속 풍경은 그가 바라본 따뜻한 시선 그 자체입니다. 꾸밈없는 나무 의자에 앉은 사람들의 투박한 옷차림 위로, 창문을 통해 들어온 은은한 자연광이 조용히 내려앉습니다.
화면 중앙에는 맑은 푸른색 옷을 입고 깊은 상념에 잠긴 여인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시선을 더욱 오래 머물게 하는 것은 그 곁의 사람들입니다. 고된 노동에 지쳐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고개를 떨군 노인, 설교에 집중하기보다는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무척이나 사실적으로 다가옵니다. 멜처스는 종교화가 요구하던 '완벽한 경건'이라는 틀을 깨고, 삶의 냄새가 짙게 배어 있는 평범한 농민들의 예배를 있는 그대로 캔버스에 담아냈습니다. 성스러움과 세속성이 교차하는 이 공간은, 그림을 보는 우리에게 묘한 해방감과 뭉클한 감동을 선사합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은, 있는 그대로의 예배
우리는 흔히 예배의 자리로 나아갈 때, 몸과 마음을 단정히 하고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모습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졸거나 딴생각을 하는 것은 신앙이 부족한 탓이라며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설교> 속 예배자들의 모습은 완벽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림 속 꾸벅꾸벅 조는 노인의 모습은 불경함이 아니라, 일주일 내내 거친 바다와 땅에서 생존을 위해 싸워온 치열한 삶의 흔적입니다. 상념에 잠긴 여인과 멍한 눈빛의 사람들도 저마다 마음속에 해결되지 않은 삶의 무게와 근심을 안고 그 자리에 앉아 있을 것입니다. 놀랍게도 화가는 이들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창문으로 스며드는 따뜻한 빛은 설교를 듣는 이나, 상념에 빠진 이나, 잠든 이 모두를 차별 없이 부드럽게 감싸 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 말하는 참된 은혜의 속성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완벽하게 세팅된 종교적 모습만을 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피곤에 절은 몸, 어지러운 마음, 다듬어지지 않은 연약함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와도 괜찮다고 말씀하십니다. 연약함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내어놓을 때, 비로소 우리의 빈 공간 사이로 하나님의 은혜가 스며들기 때문입니다.
투박한 일상 위로 내려앉은 은은한 빛
멜처스의 그림이 우리에게 주는 또 다른 통찰은 '일상 속의 거룩함'입니다. 그림 속 시골 예배당에는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이나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없습니다. 그저 삐걱거리는 나무 의자와 낡은 벽,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의 체취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 공간은 그 어느 대성당보다 깊은 경건함을 자아냅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우리가 일상을 탈피하여 도달하는 어떤 신비로운 차원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극히 평범하고 때로는 누추하기까지 한 우리의 일상 한가운데로 직접 찾아오십니다. 예수님께서 화려한 궁전이 아닌 가장 냄새나고 초라한 말구유로 오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림 속 빛이 사람들의 굽은 어깨와 거친 손등을 따스하게 비추듯, 하나님의 은혜는 현대인들의 치열하고도 고단한 밥벌이의 현장,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 깊이 스며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 바쁘고 지친 삶을 살아갑니다. 주일 예배의 자리에 나와서도 마음은 내일의 업무와 삶의 염려로 분주할 때가 많습니다. 예배당 의자에 앉아 피곤함에 눈꺼풀이 무거워질 때, 혹은 기도 중에 딴생각이 밀려와 괴로울 때, 가리 멜처스의 <설교>를 떠올려 보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당신의 피곤함을 아십니다. 당신의 복잡한 상념을 이해하십니다. 애써 그럴듯한 모습으로 포장하려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지친 몸과 연약한 마음 그대로, 그저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만으로도 주님은 당신을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십니다. 이번 한 주, 완벽을 향한 강박을 내려놓고 우리의 연약함과 평범한 일상 속으로 고요히 스며드는 그분의 따뜻한 은혜를 깊이 누리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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