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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심연의 어둠을 뚫고 피어난 가장 위대한 용서의 서사
주는 나의 피난처 (The Hiding Place)

코리 텐 붐의 자전적 에세이인 『주는 나의 피난처』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들을 숨겨주다 강제 수용소로 끌려간 한 네덜란드 평민 가족의 숭고한 희생을 그린다. 극심한 고난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결코 꺼지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과 십자가 용서의 능력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기독교 고전의 걸작이다.
Release: 1971년 11월
네덜란드 하를렘의 평화로운 시계 수리점 '베제(Béjé)'. 이곳에서 100년 넘게 시계를 고치며 소박하게 살아가던 텐 붐 일가의 일상은 1940년 나치 독일의 침공으로 산산조각 난다. 코리와 그녀의 가족은 투철한 신앙적 양심을 바탕으로 집에 비밀 공간(Hiding Place)을 만들어 핍박받는 유대인들을 숨겨주는 은밀한 레지스탕스 활동을 시작한다.
하지만 이들의 숭고한 선행은 결국 밀고자로 인해 발각되고, 코리와 언니 베시, 그리고 여든이 넘은 연로한 아버지 카스퍼는 악명 높은 강제 수용소로 끌려가게 된다. 아버지는 투옥 직후 차가운 감방에서 숨을 거두고, 언니 베시 역시 참혹하고 비인간적인 라벤스브뤼크 수용소의 강제 노동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가해자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용서와 사랑을 역설한다.
놀라운 행정 착오로 기적적으로 홀로 살아남아 석방된 코리는 전쟁이 끝난 후 전 세계를 순회하며 사역한다. 이 작품은 물리적인 '피난처'가 파괴되는 참혹한 비극 속에서도 결코 함락되지 않는 영원한 영적 피난처이신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하는 치열하고도 감동적인 신학적 회고록이다.
[일상의 성소, 베제(Béjé) – 환대와 레지스탕스의 영성]
이 책의 전반부는 네덜란드 하를렘에 위치한 텐 붐 일가의 시계 수리점 '베제(Béjé)'를 묘사하는 데 상당한 공을 들인다 [1.1]. 100년 넘게 시계를 수리해 온 이 공간은 단순히 시계 태엽을 감고 시간을 맞추는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무너져가는 세상의 시간을 하나님의 시간(카이로스)으로 교정하는 영적 성소로 기능한다.
텐 붐 가족은 매일 밤 식탁에 둘러앉아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이웃을 향한 환대(Hospitality)를 일상처럼 실천했다. 나치의 폭압 아래 유대인들이 쫓길 때, 이들이 주저 없이 자신들의 집을 '피난처(Hiding Place)'로 내어준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영웅적 결단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축적된 신앙적 일상의 자연스러운 발현이었다.
현대 크리스천들은 흔히 거대한 사역이나 극적인 헌신을 꿈꾸지만, 코리의 이야기는 진정한 레지스탕스적 영성이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에서의 말씀 묵상과 작은 이웃 사랑에서부터 잉태된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베제는 위기와 핍박의 시대 속에서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가정이 어떠한 형태의 '도피성'이 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환대가 어떻게 세상을 구원하는 거룩한 무기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완벽한 신학적 모델이다.
[라벤스브뤼크의 벼룩 – 고난 속에서 발견하는 하나님의 섭리]
코리와 베시가 갇힌 라벤스브뤼크 수용소 28호 동은 인간의 존엄성이 철저히 말살된 생지옥 그 자체였다. 배고픔과 질병, 끔찍한 강제 노역보다 자매를 끈질기게 괴롭힌 것은 막사 전체에 들끓는 벼룩 떼였다. 코리는 벼룩으로 인해 고통받으며 하나님을 향해 원망을 쏟아낼 뻔하지만, 언니 베시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의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근거로 이 끔찍한 벼룩조차도 감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훗날 밝혀진 놀라운 진실은, 그 벼룩 떼 때문에 나치 간수들이 28호 동 막사 안으로 들어오기를 극도로 꺼렸고, 그 덕분에 자매는 감시의 눈길을 피해 수용자들에게 자유롭게 성경을 읽어주며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벼룩의 기적'은 인간의 제한된 이성으로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를 상징하는 문학적 극치이자 신학적 정점이다.
우리는 인생의 극심한 고난과 마주할 때 그 이유를 당장 이해할 수 없어 좌절하곤 한다. 그러나 텐 붐 자매의 수용소 생활은, 그리스도인이 마주하는 가장 참혹하고 불합리한 상황조차도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 사역을 위한 정교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묵직하게 시사한다. 절망의 수용소는 벼룩이라는 뜻밖의 은혜를 통해 말씀이 선포되는 가장 거룩한 강단으로 변화되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십자가 – 용서의 실존적 완성]
이 작품의 백미이자 현대 독자들에게 가장 강렬한 영적 전율을 선사하는 대목은, 전쟁이 끝난 후 코리가 직면하게 된 '용서의 실존적 시험'이다. 전후 뮌헨의 한 교회에서 용서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 후, 코리는 라벤스브뤼크 수용소에서 가장 잔인했던 전직 나치 친위대(SS) 간수와 맞닥뜨린다.
그가 손을 내밀며 "예수님께서 제 죄를 용서하셨다는 당신의 메시지에 감사드립니다. 당신도 저를 용서해 주시겠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코리의 내면에서는 억눌렸던 분노와 사랑하는 언니를 잃은 뼈아픈 상처가 격렬하게 요동쳤다. 자신의 의지로는 도저히 가해자를 용서할 수 없었던 코리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저는 저 사람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제게 당신의 용서를 주시옵소서"라고 간절히 부르짖는다. 순종의 마음으로 억지로 손을 내민 그 짧은 순간, 코리는 자신의 어깨와 팔을 타고 흐르는 성령의 강력한 치유와 사랑의 전류를 온몸으로 경험한다.
이는 용서가 인간의 도덕적 수양이나 감정적 결단만으로는 결코 완성될 수 없으며, 철저히 십자가로부터 흘러나오는 초자연적인 은혜의 개입을 통해서만 가능함을 증명한다. 보복과 정죄가 정의의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현대 사회에서, 코리의 이 철저한 자기 부인과 초월적 용서는 십자가의 복음이 가진 진정한 파괴력, 즉 원수까지도 살려내는 숭고한 생명력을 증언하는 위대한 신학적 실증이다.
『주는 나의 피난처』는 단순한 영웅담이나 제2차 세계대전의 홀로코스트 생존기를 아득히 넘어선다. 이 작품이 현대 크리스천들에게 던지는 가장 묵직한 영적 통찰은 "어떠한 깊은 구덩이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이 더 깊다(There is no pit so deep that God's love is not deeper still)"는 십자가의 역설적 진리이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고난과 역경을 피하게 해달라고, 혹은 안락하고 형통한 삶을 보장해 달라고 기도한다.
하지만 코리 텐 붐의 서사는 고난의 한복판, 죽음의 냄새가 진동하고 벼룩이 들끓는 강제 수용소의 침상조차도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은혜가 임하는 거룩한 성소(Sanctuary)가 될 수 있음을 피로써 증명한다. 더 나아가 이 책은 우리에게 '값싼 은혜'가 아닌 '값비싼 제자도'를 요구한다. 전후에 코리가 자신을 학대했던 가해자들을 찾아가 십자가의 이름으로 용서를 실천하는 과정은, 인간의 얄팍한 감정과 의지를 온전히 십자가에 못 박을 때 비로소 성령의 초자연적인 아가페가 우리를 통해 흘러간다는 사실을 웅변한다.
혐오와 분열,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팽배한 시대 속에서 안락한 종교 생활에 안주하고 있는 현대 교회에 코리의 외침은 날카로운 예언자적 경종을 울린다. 진정한 피난처는 물리적인 안전지대가 아니라 영원불변하신 하나님의 품이며, 그 피난처에 거하는 자만이 비로소 세상을 향해 자신을 내어주는 거룩한 도피성이 될 수 있다는 통찰은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린 복음의 야성을 다시금 일깨운다.
주는 나의 은신처요 방패시라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시편 119: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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