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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의 기다림, 잊혀진 호주 원주민 참전용사 발렌타인 헤어의 희생과 발자취

OCJ|2026. 4. 26. 04:56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호주를 위해 헌신했으나, 차별적인 정책과 강제 이주로 인해 역사 속에서 지워질 뻔했던 한 호주 원주민 참전용사의 이야기가 100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 호주 원주민과 토레스 해협 제도민들은 완전한 시민권을 보장받지 못했습니다. 당시 국방법(Defence Act)과 백호주의(White Australia Policy) 정책에 따라 백인 혈통이 아닌 이들의 군 복무는 엄격히 제한되었습니다. 그러나 호주 전쟁기념관(Australian War Memorial)의 원주민 연락 장교 마이클 벨(Michael Bell)에 따르면, 약 1,200명의 원주민이 조국을 위해 자원입대를 시도했으며, 그중 870명이 입대 허가를 받아 참전했습니다.

발렌타인 헤어(Valentine Hare) 역시 그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퀸즐랜드 출신 원주민 청년 약 140명 중 한 명으로 참전한 그는 '바람바의 소년들(Boys from Barambah)'이라고 불린 그룹의 일원이었습니다. 그는 나이를 속이고 1917년 제2경기병연대(2nd Light Horse Regiment)에 입대해,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사막을 누비며 연합군의 상징적인 부대에서 활약했습니다. 그러나 전투 중 다리에 심각한 총상을 입고 의가사 제대하여 호주로 귀환하게 됩니다.

전장에서는 전우들과 평등한 대우를 받았지만, 고국으로 돌아온 헤어를 기다린 것은 극심한 인종차별과 분리 정책이었습니다. 참전 기간 동안 그의 가족들은 퀸즐랜드주 남동부의 쉐르부르(Cherbourg, 구 바람바) 구역으로 강제 이주되어 정부의 엄격한 통제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집트에서 돌아온 헤어가 가족을 만나기 위해 그곳을 찾았을 때, 정부 당국은 그가 보호구역의 공식 '거주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단 2주간의 체류만 허락한 채 그를 쫓아냈습니다. 벨 장교는 "전장에서 평등을 경험한 원주민 참전용사들은 권리에 눈을 떴기 때문에, 당시 보호구역 관리자들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간주되었습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후 정부의 강제 이주 정책과 더불어 그의 군 복무 기록상 이름이 'Hares' 또는 'Ayr' 등으로 오기되면서, 가족들은 약 100년 가까이 그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의 조카인 고(故) 나나 아이리스 글렌바(Nana Iris Glenbar) 할머니는 흩어진 단서들을 모아 삼촌의 발자취를 찾기 위해 무려 40년의 세월을 바쳤습니다.

기적 같은 전환점은 2015년에 찾아왔습니다. 로건 시의회(Logan City Council)가 진행한 제1차 세계대전 원주민 참전용사 기록 프로젝트를 통해 역사가들이 헤어의 의료 기록을 추적하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글렌바 할머니는 기록에 남겨진 삼촌의 필체가 자신의 어머니(헤어의 여동생) 필체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마침내 가족들은 케언스(Cairns)의 포레스트 뷰 묘지(Forest View Memorial Park)에서 그의 묘역을 찾아냈습니다. 오랫동안 비석조차 없었던 그의 무덤에는 이제 호주 보훈부(Department of Veterans Affairs)가 제공한 공식 명판이 세워졌습니다. 글렌바 할머니는 생전 인터뷰에서 "이제 안작 데이(Anzac Day)는 우리 가족에게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비로소 우리도 그 역사의 일부가 되었습니다"라고 소회를 밝혔습니다. 차별 속에서도 나라를 위해 싸웠던 발렌타인 헤어의 삶은, 오랜 시간이 지나 역사의 정당한 자리를 되찾으며 오늘날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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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노트]
역사는 종종 권력의 중심에 선 이들의 기록으로 남지만, 진정한 역사는 변방에 감춰진 희생자들의 잃어버린 이름을 찾아내는 과정을 통해 완성됩니다. 백호주의와 철저한 인종차별 속에서도 묵묵히 국가를 위해 목숨을 걸고, 귀환 후에는 역설적이게도 고향에서조차 쫓겨나야 했던 원주민 참전용사들의 비극은 우리에게 무거운 성찰의 과제를 안겨줍니다. 40년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삼촌의 이름을 되찾은 가족의 헌신은, 모든 인간의 존엄성은 결국 끝까지 기억하고 기록하는 사랑을 통해 온전히 회복된다는 기독교적 생명 존중의 가치를 깊이 일깨워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