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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거룩한 가면을 벗고, 심판대 앞에 선 광대들에게
투명한 시대의 가장 불투명한 성소
바야흐로 '투명성'이 권력이 된 시대입니다. 인공지능이 거짓을 가려내고, 디지털 발자국이 과거의 행적을 낱낱이 추적하는 21세기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가장 투명해야 할 교회의 강단은 그 어느 때보다 두꺼운 안개에 싸여 있는 듯합니다.
최근 들려오는 목회자들의 비윤리적 행태와 비양심적 사건들은 이제 세상을 놀라게조차 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세상은 우리를 향해 냉소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들이 말하는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시는가? 아니면 그저 당신들의 비즈니스를 위한 마케팅 용어인가?" 이 날카로운 질문 앞에 우리는 '성직자'라는 화려한 예복 뒤로 숨을 곳이 없습니다. 오늘날 목회자의 위기는 설교의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경외심의 실종'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실천적 무신론자가 되어버린 설교자들
우리는 강단 위에서 '코람 데오(Coram Deo)', 즉 하나님 앞에서 살 것을 외칩니다. 그러나 정작 강단을 내려오는 순간, 우리는 '실천적 무신론자(Practical Atheist)'로 돌변하곤 합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하지만, 삶의 선택지에서는 철저히 자신의 유익과 명예, 그리고 권력을 계산합니다.
성경적 통찰로 볼 때, 이것은 단순한 도덕적 타락이 아닙니다. 그것은 영적 기만이며,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신성모독입니다. 바리새인들을 향해 "회칠한 무덤"이라 독설을 퍼부으셨던 주님의 진노는 오늘날 현대판 바리새인이 된 우리를 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역의 성공'이라는 우상에게 제사 지내느라, 정작 우리 영혼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과의 독대(獨對)를 잊었습니다. 성도들에게는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라"고 호통치면서, 자신은 '목회자'라는 직함이 주는 기득권을 조금도 내려놓지 못합니다. 강단 위에서의 페르소나(Persona)와 골방에서의 진실이 유리될 때, 목회자는 복음의 전달자가 아니라 복음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목회자의 설교는 아무리 유창해도 죽은 언어일 뿐이며, 그것은 영혼을 살리는 양식이 아니라 독이 든 성찬이 됩니다.
다시, 떨림으로 서는 그 자리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전문 종교인'의 매너리즘을 찢어버려야 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비난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의 불꽃 같은 눈동자 앞에 발가벗겨진 채 서야 합니다.
회개는 단순히 잘못을 뉘우치는 감정적 상태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다'는 엄중한 사실을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다시 인정하는 지독한 자기 부정입니다. 강단에서 외친 말씀이 나 자신의 심장을 먼저 도려내지 않는다면, 그 말씀은 결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가 먼저 통회하며 자복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는 당신을 믿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두려워하기보다 사람들의 시선과 내 주머니의 안위를 더 두려워했습니다"라는 처절한 고백이 터져 나와야 합니다. 목회자가 다시 '죄인 중의 괴수'라는 자기 인식을 회복할 때, 비로소 강단은 거룩한 생명력을 회복할 것입니다. 세상이 교회를 비웃는 이 시대에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정교한 신학적 논리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벌벌 떨며 살아가는 '진실한 한 인간'의 뒷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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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51: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고린도전서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마태복음 23: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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