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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다 바쳤다는 짐, 이제 내려놓으세요"… 호주 한인 사회 덮친 '노인 우울증'의 그늘
1980~90년대 '코리안 드림'을 품고 호주에 정착했던 한인 1세대들이 70~80대 고령층에 진입하면서, 호주 한인 사회의 인구 구조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2021년 호주 인구조사(Census)에 따르면 호주 내 한국계 인구는 10만 명을 넘어섰으며, 리드컴, 이스트우드, 스트라스필드(Strathfield) 등 한인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1인 가구 및 독거 노인 비율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세계 5위 수준의 우수한 연금 제도(Age Pension)와 복지 시스템을 갖춘 호주 사회지만, 한인 노년층의 삶은 마냥 여유롭지 않다. 언어 장벽과 문화적 고립 속에서 조용히 번지고 있는 '노인 우울증' 때문이다.
현지 백인 은퇴자들이 크루즈 여행과 캠핑카 일주를 즐기며 노후를 만끽하는 반면, 한인 노인들의 일상은 단조롭고 고립된 경우가 많다. 이민 1세대로서 언어와 문화적 장벽을 맨몸으로 부딪치며 헌신했지만, 정작 영어를 모국어로 쓰며 호주 주류 사회에 편입된 자녀들과는 정서적 괴리감이 커진 탓이다. 한국식 효도와 가부장적 권위를 기대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은퇴 후 사회적 역할마저 상실한 이들은 심각한 무력감과 소외감에 빠지기 쉽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노인 우울증의 근본적인 해법으로 '내려놓음'을 강조한다. 서울대병원 보라매병원 이준영 교수(정신건강의학과)는 노년기를 "평생 움켜쥐었던 것들을 하나둘 놓아주는 시기"라고 진단한다. 특히 이민자들의 경우 "타국에서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다"는 보상 심리가 강해 자녀에 대한 섭섭함이 우울증으로 직결되는 경향이 짙다. 전문가들은 과거의 성취나 자녀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 전통적인 부모의 역할 등 손에 쥔 것들을 과감히 내려놓아야 비로소 몸과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한국인 특유의 정서가 반영된 노인 우울증은 종종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가면성 우울증'이나 우울증으로 인한 인지기능 저하인 '가성치매' 형태로 나타난다. 가슴이 답답한 화병, 만성 통증, 소화 불량 등 신체적 증상으로 발현되지만, 정신과 진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탓에 조기 진단과 치료를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호주 연방정부는 노인 건강 카드(Commonwealth Seniors Health Card) 등 다양한 의료비 감면 혜택을 제공하고 있음에도, 영어 소통의 두려움 때문에 한인 노인들의 주류 의료 및 심리 상담 접근성은 현저히 낮은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마음가짐 변화와 함께 한인 커뮤니티 차원의 구조적 지원이 필수적이다. 호주 내 '생명의 전화'나 한인 복지회 등 커뮤니티 기반의 모국어 심리 상담 및 데이케어 서비스가 더욱 활성화되어야 한다. 아울러 노년을 '상실의 시기'가 아닌 '자신을 온전히 돌보는 새로운 챕터'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 자식의 성공을 나의 성공과 동일시하던 과거의 짐을 벗어던질 때, 남은 생을 존엄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동력이 생긴다.
육체적 노화는 막을 수 없지만, 심리적 건강은 선택과 훈련의 영역이다. 낯선 호주 땅에 뿌리내리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온 이 땅의 한인 1세대들. 이제는 스스로에게 씌웠던 무거운 책임감을 기꺼이 내려놓고, 자신만의 평온한 노후를 온전히 마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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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노트]
타국에서 척박한 현실을 개척해 온 이민 1세대의 헌신은 호주 한인 사회 발전의 귀중한 자양분이 되었다. 그러나 그 치열했던 헌신이 노년의 삶을 옭아매는 족쇄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고국 한국의 초고령화 문제 못지않게, 해외 이민 사회의 '디아스포라 고령화' 역시 우리가 직면한 중대한 사회적 의제다. 은퇴한 한인 노년층이 제도적 혜택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지 않고, 무엇보다 스스로 짊어진 심리적 멍에를 벗어던질 수 있도록 커뮤니티 차원의 깊은 공감과 연대가 절실한 시점이다.
#노인우울증 #호주한인 #고령화사회 #노후준비 #이민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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