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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하나님에 관한 수다"를 넘어 "하나님과의 진짜 사귐"으로: 현대 교회의 영적 피상성을 깨우는 신학적·경험적 성찰

지식의 풍요 속에서 겪는 영적 기갈
오늘날 현대 교회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신학적 정보와 기독교 콘텐츠의 홍수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인터넷 클릭 한번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설교를 듣고, 깊이 있는 신학 서적을 손쉽게 접하며, 소셜 미디어를 통해 교리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넘쳐나는 시대에, 역설적이게도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심령은 갈수록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20세기의 탁월한 선교사이자 목회자였던 패리스 리드헤드(Paris Reidhead)는 현대 교회를 향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관하여 서로 교제하고 있다"는 날카로운 진단을 내린 바 있습니다. 이 선언은 오늘날 우리가 처한 영적 피상성의 정곡을 찌릅니다. 우리는 신앙을 이야기하고 토론하는 데는 익숙하지만, 정작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을 골방에서 대면하여 인격적으로 사귀는 '진짜 교제'는 잃어버린 것이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패리스 리드헤드의 경종: 나를 위한 하나님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으로
패리스 리드헤드의 이 같은 통찰은 선교지에서의 처절한 영적 실패와 깨달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아프리카 선교사로 파송되었던 그는 초기에는 "불쌍한 영혼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돕겠다"는 인본주의적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죄를 사랑하고 완악하게 저항하는 영혼들을 마주하며 깊은 절망에 빠졌을 때, 그는 골방에서 "나는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너를 보냈다"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게 됩니다. 사역의 목적이 인간의 필요나 영웅주의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의 기쁨에 있음을 깨달은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사사기 17장에 나오는 미가의 레위인 제사장 이야기를 통해 현대의 실용주의적 신앙을 매섭게 비판했습니다. 은 열 세겔과 셔츠 한 벌, 그리고 음식을 대가로 우상 숭배의 도구가 되었던 레위인처럼,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하나님을 자신의 안위와 심리적 만족, 사회적 인정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하나님을 목적으로 사랑하지 않고 도구로 이용하는 종교는 진정한 기독교가 아닌 인본주의적 공리주의에 불과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코이노니아와 성전의 비밀
성경이 말씀하는 참된 교제, 즉 '코이노니아(Koinonia)'는 단순한 사교적 모임이나 예배 후의 가벼운 식사 시간을 훨씬 초월합니다. 이는 생명과 삶 전체를 공유하는 파트너십이며,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실제적이고 능동적인 참여를 뜻합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1장 3절에서 우리의 사귐이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고 선언합니다. 즉, 성도 간의 수평적 교제는 하나님과의 수직적 교제가 전제될 때에만 비로소 생명력을 얻습니다. 수직적 사귐이 빠진 종교적 대화는 영적 코이노니아가 아니라 인간적인 친목 도모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교제의 신비는 구속사적 '성전 신학'과 긴밀히 연결됩니다. 신약학자 G.K. 비엘(G.K. Beale)은 에덴동산이 하나님과 인간이 아무런 장벽 없이 완벽하게 동행하던 최초의 성전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죄로 인해 단절되었던 이 성전의 교제는 참된 성전이자 대제사장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통해 회복되었습니다. 이제 성령을 모신 그리스도인 개개인과 교회는 움직이는 '새 성전'이 되었습니다. 성전의 설계도(신학적 지식)만 열심히 공부하면서 정작 성전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새 언약 백성의 특권을 스스로 저버리는 일입니다.
역사 속 거장들이 증언하는 '맛보아 아는 지식'
기독교 역사 속의 영적 거장들은 이 지식과 실재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해 왔습니다.
1. 중세 신학의 토마스 아퀴나스와 보나벤투라는 이성적 추론을 통한 '사변적 신학'과 성령의 지혜를 통해 하나님을 맛보아 아는 '경험적 하나님 아는 지식(Cognitio Dei experimentalis)'을 엄격히 구분했습니다. 하나님은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 전인격적인 사랑과 경배 속에서 체험해야 할 인격적 존재라는 것입니다.
2. 청교도 신학자 존 오웬(John Owen)은 신자의 영적 신분을 뜻하는 '연합(Union)'과 실제적인 관계의 역동성을 뜻하는 '교제(Communion)'를 구분했습니다. 법적인 구원의 확신에만 안주한 채 삼위 하나님(성부의 사랑, 성자의 은혜, 성령의 위로)과의 날마다의 쌍방향적 사귐을 방치하는 것은 영적 고아와 같은 삶이라고 경고했습니다.
3. J.I. 패커(J.I. Packer)는 그의 명저를 통해 "하나님에 관해 방대한 지식을 가진 것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것이 훨씬 가치 있다"고 단언했으며, A.W. 토저(A.W. Tozer)는 현대 교회가 하나님의 위엄을 잃어버리고 프로그램과 오락으로 영적 공백을 메우려 한다고 통렬히 꾸짖었습니다.
4. 마틴 로이드 존스(Martyn Lloyd-Jones)는 종교적 의식과 신학 지식을 자랑하면서도 하나님과의 실제적 교통이 없었던 바리새인들의 비극이 오늘날에도 반복되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또한 프란시스 쉐퍼(Francis Schaeffer)는 신랑 되신 그리스도와의 '매 순간의 교제'를 강조했고, C.S. 루이스(C.S. Lewis)는 신학을 대서양을 그린 '지도'에, 교제를 '직접 바다에 뛰어드는 경험'에 비유하며 지도만 들여다보는 신앙에서 벗어날 것을 촉구했습니다.
지식의 안락한 뜰을 지나 지성소로
이 모든 영적 거장들의 경고는 오늘날 우리에게 뼈아픈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과연 남에게 가르치고 자랑하기 위해 성경을 기능적으로 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더 훌륭한 설교, 더 세련된 성경 공부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는 수많은 시간을 쏟으면서, 정작 그 말씀 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무릎 꿇고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는 기도의 골방은 텅 비어 있지 않습니까?
목회자는 교인들을 대신해 하나님을 만나고 지식을 떠먹여 주는 대리자가 아닙니다. 교인들 스스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여 휘장을 지나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가 머무는 지성소로 들어가도록 이끄는 영적 안내자가 되어야 합니다. 지식의 양적 팽창이 자기를 부인하는 십자가의 삶과 내면의 참된 기쁨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의 조명 아래 하나님을 직접 '맛보아 아는' 개인적이고 친밀한 기도의 자리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에 관하여 서로 대화하는" 종교적 사교 클럽의 수준을 넘어서야 합니다. 우리가 배운 모든 신학적 진리와 말씀은 궁극적으로 우리를 골방의 무릎으로 이끌고, 자아를 깨뜨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짊어지게 하는 실천적 동력이 되어야 합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하신 주님의 애타는 초청에 반응하여, 죽은 활자가 아닌 살아 숨 쉬는 생명의 코이노니아를 누리는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기를 소망합니다.
[EDITOR'S NOTE]
태평양의 푸른 파도와 아름다운 대자연을 품고 있는 오세아니아 대륙의 교회들은 활기찬 다문화 공동체와 다양한 사역 프로그램들로 분주합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땅에서도 우리는 종종 '종교적 바쁨'과 '신학적 말잔치' 속에 갇혀, 정작 우리 영혼의 구원자이신 하나님과의 고요하고 깊은 사귐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곤 합니다.
C.S. 루이스의 비유처럼, 우리는 해변에 서서 대양의 짠 내음과 거친 파도를 바라보며 감탄하는 지도를 그리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그 안전하고 안락한 모래사장을 벗어나, 하나님의 은혜라는 거대한 바다에 온몸을 던져 뛰어들 때입니다. 바쁜 일상의 소음을 잠재우고 골방의 문을 닫을 때, 비로소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부어주시는 '경험적 하나님 아는 지식'의 달콤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오세아니아의 모든 성도와 교회들이 말만 무성한 종교의 뜰을 지나, 피 뿌린 십자가를 통과하여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깊은 지성소 안에서 참된 안식과 회복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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