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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신앙의 벼랑 끝에서 만나는 진짜 하나님

OCJ 2026. 7. 24. 06:51

A.J. 스워보다의 『의심 후에』는 신앙의 해체를 겪는 현대 기독교인들을 위한 사려 깊은 안내서다. 저자는 의심을 정죄하는 대신, 이를 가짜 신앙을 허물고 더 깊은 진리로 나아가기 위한 영적 형성의 필수 과정으로 재조명한다.

 


이 책은 무비판적으로 수용된 '구축(Construction)'의 신앙이 고통스러운 '해체(Deconstruction)'의 시기를 거쳐 마침내 더 깊은 '재건(Reconstruction)'으로 나아가는 영적 여정을 밀도 있게 추적한다. 깊은 패배감 속에서 믿음을 의심하는 청년 '필'의 눈물 섞인 고백으로 시작하여, 포스트모던 시대 속에서 길을 잃고 배회하는 신자들을 향해 고대 기독교의 실천적 지혜들을 하나하나 펼쳐 놓는다. 저자는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내 앞의 사람에게 집중하는 일상의 단순한 순종에서부터 침묵과 걷기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실천 지침을 제시한다. 맹신을 요구하는 율법주의적 극단과 허무주의를 칭송하는 세속적 극단 사이에서 길을 잃은 영혼들이, 어떻게 거짓된 우상을 깨뜨리고 참된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한 편의 치밀한 영적 순례기처럼 서술하고 있다.

[신앙의 해체, 시대적 유행인가 영적 위기인가]


오늘날 서구 기독교회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 안에서도 '신앙의 해체(Deconstruction)'는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화두로 자리 잡았다 [1.1.8]. 서구의 개인주의적 문화와 포스트모던적 회의주의가 맞물리면서, 기존의 전통적인 신념이나 교리적 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허무는 현상이 하나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의심의 과정을 철저히 악마화하며 신앙 공동체 밖으로 몰아내려 하고, 반대로 어떤 이들은 전통적 신앙의 해체 자체를 지성적 훈장처럼 여기며 기독교적 허무주의나 세속주의로 빠져들기도 한다. 오리건주 부시넬대 부교수인 스워보다 목사는 극도로 세속화된 도시 환경인 포틀랜드에서 목회하며 이러한 양극단의 함정에 빠진 수많은 영혼들을 목격했다. 

 

이 책은 단순히 교리를 수호하기 위한 건조한 변증서가 아니라, 의심의 벼랑 끝에 서 있는 이들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쓰인 눈물의 목회적 편지와도 같다. 의심을 회피하거나 정죄하는 대신, 그것을 신앙의 필연적인 한 과정으로 인정함으로써 위기를 성숙의 기회로 전환하려는 저자의 시도는 해체의 소용돌이 속에서 길을 잃은 현대 기독교인들에게 중대한 이정표를 제시한다. 신앙의 토대가 무너지는 듯한 이 고통스러운 시기는 단지 믿음의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낡은 신앙의 허물을 벗고 더 넓고 깊은 영적 세계로 진입하기 위한 성장통과 같다. 따라서 교회는 의심하는 자들을 향한 방어적 태도를 버리고, 그들이 제기하는 정직한 질문 속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일하심을 발견할 수 있는 넉넉한 영적 안목과 신학적 상상력을 길러야만 한다.

[우상숭배를 무너뜨리는 '건강한 해체'의 신학]


저자가 제시하는 가장 탁월한 신학적 통찰 중 하나는, 해체를 무조건적인 신앙의 붕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진짜 예수'를 만나기 위해 우리 안의 '가짜 신앙'을 무너뜨리는 영적 형성의 필수 과정으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당대의 종교적 위선과 껍데기뿐인 제사 제도를 무섭게 비판하며 우상을 타파했듯, 현대의 기독교인들에게도 하나님보다 나의 신학, 나의 신념, 혹은 교회의 전통 그 자체를 더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우상숭배'적 요소가 도사리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디트리히 본회퍼가 "나의 신학 연구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아니라 나 자신을 향한 집착이었다"고 뼈아프게 고백했던 것처럼, 우리가 절대적 진리라고 굳게 믿고 보호해 온 것들조차 실상은 나의 종교적 에고를 강화하기 위한 도구였음을 깨닫게 되는 절망적인 순간이 찾아온다. 이러한 뼈아픈 맥락에서 의심은, 맹신과 자기기만이라는 거대한 우상을 산산조각 내는 거룩한 망치 역할을 수행한다. 

 

건강한 해체는 내가 이기적으로 조립해 낸 하나님의 이미지를 무자비하게 부수고, 인간의 지성으로 통제할 수 없는 압도적인 타자로서의 참된 하나님을 대면하게 하는 영적 고통이자 가장 깊은 은혜의 수단이 된다. 우리가 그토록 사랑했던 것이 하나님 그분이었는지, 아니면 하나님이 주시는 심리적 안정감이나 종교적 기득권이었는지를 철저히 묻는 이 해체 작업은, 역설적으로 우리를 모든 장식이 떨어져 나간 십자가의 순전한 복음 앞으로 다시 이끌어준다.

[의심의 사막을 건너는 실천적 지혜: 침묵과 경청]


해체라는 삭막하고 광활한 사막 한가운데서 영혼의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저자는 사변적 신학 논쟁이나 이성적인 논리적 변증을 훌쩍 뛰어넘어 고대 기독교 전통에 깊이 뿌리를 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지침을 제안한다. 그중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한다면,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내 앞의 사람을 온전히 대하라"는 직언은 가벼운 연결성에 매몰된 현대인의 공허한 삶의 방식을 정통으로 찌른다. 내 곁에 있는 타자의 아픔과 호소에 진실하게 귀 기울이지 못하는 사람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세미하고 신비로운 음성 또한 결코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무한한 정보와 자극적인 알고리즘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디지털 시대 속에서, 스워보다는 철저한 기계적 연결망에서 벗어나 침묵과 고요함 속에 머무는 거룩한 고립 훈련의 중요성을 강력하게 역설한다. 홀로 산책을 하며 쏟아지는 질문 속에서 하나님과 대화하고, 공동체 안에서 정죄당할 두려움 없이 자신의 처절한 의심을 털어놓는 행위들은 단순한 심리적 위안의 차원을 완전히 넘어선다. 이것은 극심한 불안과 회의 속에서도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관계의 끈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치열한 영적 발버둥이며, 사막의 지독한 메마름 속에서도 마침내 솟아나는 생수를 길어 올리기 위해 몸으로 바치는 실천적 리투얼(ritual)이 된다.

[다시, 그리스도에게로: 재건을 향한 숭고한 부르심]


'구축(Construction)'의 초기 단계에서 맹목적이고 유아적으로 형성된 신앙은, '해체(Deconstruction)'의 불같은 연단 과정을 거치며 그 연약한 밑바닥과 허상을 남김없이 드러낸다. 그러나 스워보다의 위로 깊은 메시지는 결코 해체의 잿더미 위에서 허무하게 끝을 맺지 않는다. 이 책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과한 후에야 비로소 맞이하는 부활의 아침처럼, 혹독한 해체 이후에 찾아오는 참된 '재건(Reconstruction)'의 신앙에 있다. 길고 어두운 의심의 밤을 홀로 지나온 신앙은 이전처럼 폭력적이거나 배타적이지 않다. 오히려 자신이 오랜 시간 품었던 질문과 고뇌의 처절한 무게만큼이나, 타인의 상처와 방황을 넉넉히 품어 안을 수 있는 진정한 목회적 돌봄의 태도를 체화하게 된다. 

 

흔들려 본 사람만이 굳건한 반석의 절대적인 소중함을 알며, 의심의 지옥을 경험해 본 사람만이 맹신이 아닌 진실하고 인격적인 신뢰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이것은 첫사랑의 단순한 감정적 회복을 넘어 신앙의 거대한 질적 도약을 의미한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의심하며 길을 잃은 수많은 청년과 성도들을 향해 과연 어떠한 따뜻한 품을 내어주고 있는가? 이 책은 얄팍한 정답만을 강요하는 종교적 폭력을 회개하고, 상처 입은 자들과 함께 울며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에서 진정한 믿음의 집을 다시 지어 올리라는 시급하고도 숭고한 시대적 부르심이다.

현대 기독교인들은 신앙의 의심을 영적 타락으로 규정하는 공동체의 억압과 두려움 때문에 내면의 질문들을 회피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본 작품은 자신의 신앙과 치열하게 씨름하는 고통이야말로 역설적으로 '신앙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방증하는 가장 확실한 표지라고 선언한다. 우리의 신학이나 종교적 관행이 때로는 하나님 그분보다 더 사랑하는 '우상'이 될 수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하며, '건강한 해체'는 본회퍼의 고백처럼 우리 안의 기만적 우상을 박살내어 십자가의 텅 빈 공간으로 나아가게 하는 거룩한 은혜의 망치임을 깨닫게 한다. 이 책은 기독교 신앙이란 의심의 벼랑 끝에서도 질문을 멈추지 않는 용기이며, 모든 종교적 위선이 벗겨진 벌거벗은 회의의 끝자리에서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라는 견고한 반석과 독대하게 됨을 깊이 있게 통찰한다.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하더라 (마가복음 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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