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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혼의 미술관

일상의 호수에 울려 퍼지는 거룩한 기도

OCJ|2026. 5. 23. 04:33

[영혼의 미술관]  하루의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 잔잔한 호수 위로 조그만 나룻배 한 척이 미끄러지듯 나아갑니다. 배 안에는 곁을 지키는 순한 양 떼와 함께 하루의 고단한 노동을 마친 한 가족이 타고 있습니다. 등 뒤로 지는 석양의 황금빛이 수면 위로 눈부시게 부서지며, 찰랑이는 물결을 따라 따스한 온기를 전해옵니다. 이탈리아의 상징주의 화가 조반니 세간티니(Giovanni Segantini)의 명작, <호수를 건너는 아베 마리아>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평화롭고도 경이로운 저녁 풍경입니다.

 


세간티니는 불우하고 몹시 외로웠던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는 세상의 차가움에 갇히지 않고, 알프스의 척박한 대자연 속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농부들의 삶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그에게 거친 자연과 정직하게 땀 흘리는 노동은 곧 신성함 그 자체였습니다. 빛과 자연을 향한 화가의 경외심이 절정에 달했을 때 그려진 이 작품은, 빛의 분할과 부드러운 색채의 번짐 효과를 통해 고단한 노동 끝에 찾아오는 신성한 안식을 눈부시게 표현해냈습니다. 일상적인 삶의 무게가 기도로 승화되는 순간, 우리는 이 그림 앞에서 마치 고요한 수도원에 들어선 듯한 거룩한 영성을 마주하게 됩니다.

노를 내려놓고 영원을 바라보는 시간

저 멀리 아스라한 마을의 성당에서 하루의 끝을 알리는 은은한 삼종기도 종소리가 호수 위로 울려 퍼집니다. 그 소리가 귓가에 닿는 순간, 노를 젓던 아버지는 묵묵히 움직임을 멈추고 고개를 숙입니다. 호수를 건너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바쁜 마음도, 조금이라도 일찍 쉬고 싶은 육체의 피로도 잠시 내려놓습니다. 

이 짧은 멈춤은 매우 깊은 영적 울림을 줍니다. 노를 젓는 행위가 세상을 살아내기 위한 인간의 고단한 의지와 노력이라면, 노를 내려놓고 고개를 숙이는 행위는 내 삶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겸손한 신앙의 고백입니다. 쉼 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한가운데서 종소리에 맞춰 일손을 멈출 때, 유한한 인간은 비로소 영원을 바라보게 됩니다. 세간티니는 아버지가 멈추어 선 이 고요한 찰나를 통해, 성취와 결과에 쫓겨 스스로 노를 젓느라 지쳐버린 우리에게 '영혼의 닻'을 어디에 내려야 하는지 묻고 있습니다.

평범한 일상이 거룩한 성소로 변하는 기적

나룻배의 반대편, 어머니는 갓난아이를 소중히 품에 안은 채 깊은 기도에 잠겨 있습니다. 남루한 옷차림의 평범한 농부 가족이지만, 쏟아지는 석양의 황금빛은 이들을 마치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아기 예수로 이루어진 '성가족'처럼 눈부시고 성스럽게 감싸 안습니다. 

이 아름다운 빛의 묘사는 일상과 성스러움의 경계를 허물어뜨립니다.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가 빛나는 거대한 대성당 안에서만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양 냄새가 배어 있는 조그만 나룻배, 피로가 묻어나는 투박한 손, 흔들리는 물결 위에서도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모을 때 그곳은 곧 일상의 성례전이 펄쳐지는 거룩한 성소로 변모합니다. 세간티니는 고된 노동과 일상의 짐조차도 하나님 안에서 아름다운 예배가 될 수 있음을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증명해 보입니다.

지친 하루의 끝, 당신의 호수에도 평화가 깃들기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호수를 건너는 뱃사고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매일 아침 일터로 향해 바쁘게 노를 젓고, 일과 성취에 쫓기며 하루를 쉴 틈 없이 살아냅니다. 때로는 거센 풍랑을 만나 두려워하고, 때로는 목적지를 잃어버린 채 무작정 팔을 휘젓기도 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호수를 건너는 아베 마리아>는 따뜻한 위로와 조용한 도전을 건넵니다. 당신의 삶에도 잠시 노를 내려놓고 영원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시간이 있는지 묻습니다. 우리의 지친 일터와 소란스러운 가정은 단지 피곤한 노동의 현장이 아닙니다. 그곳에서 잠시 눈을 감고 하늘을 향해 마음의 귀를 기울일 때, 우리의 평범하고 남루한 일상은 황금빛 은혜가 비추는 기도의 자리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당신의 치열했던 삶의 호수 위에도 하나님의 섭리를 알리는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기를 바랍니다. 바쁘게 쥐고 있던 노를 잠시 내려놓고 주님이 주시는 거룩한 안식과 평화를 누리는, 복된 저녁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