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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의 신학적 정체성과 세대주의의 극복: 이민교회의 건강한 종말론과 교회론 정립을 위한 심층 보고서

OCJ|2026. 1. 6. 07:54

 

작성자: OCJ 이민교회 신학 연구 위원회

날짜: 2026년 1월 6일

주제: 정동섭 목사의 세대주의 비판을 기점으로 본 현대 이민교회의 신학적 과제, 이단 문제, 그리고 세대 간 통합을 위한 목회적 제언


서론: 텍스트와 컨텍스트 사이의 이민교회, 위기의 본질을 묻다

오늘날 북미주를 비롯한 전 세계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는 중대한 신학적, 목회적 기로에 서 있다. 이는 단순히 교세의 감소나 이민 2세들의 '조용한 탈출(Silent Exodus)' 현상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을 넘어선, 교회의 존재론적 토대인 '신학'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정동섭 목사의  "세대주의와 개혁주의 신학은 어떻게 다른가?"는 표면적으로는 두 신학 체계의 교리적 비교 분석처럼 보이지만, 그 심층에는 한국 교회와 이민 교회를 지난 130여 년간 지배해 온 거대한 신학적 패러다임의 충돌과 그로 인한 목회적 진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본 보고서는 탁월한 조직신학자이자 이민 목회 현장을 깊이 이해하는 목회자의 관점에서, 정동섭 목사가 제기한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의 문제점을 성서신학, 역사신학, 그리고 실천신학적 관점에서 심층적으로 해부한다.

 

우리는 초기 내한 선교사들로부터 물려받은 근본주의적 신앙 유산이 식민 지배와 전쟁, 그리고 이민이라는 특수한 '고난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변형, 강화, 혹은 왜곡되었는지를 추적할 것이다. 나아가 이 오래된 신학적 논쟁이 오늘날 1세(KM)와 2세(EM) 간의 갈등, 인터콥(InterCP)과 같은 선교 단체를 둘러싼 논란, 그리고 끊임없이 발생하는 이단 시비와 어떤 인과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규명하고자 한다.  

 

우리의 목적은 단순히 특정 신학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왜 수많은 이민 1세대가 세대주의적 종말론에 열광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목회적 공감을 바탕으로, 이제는 변화된 시대와 다음 세대를 품을 수 있는 더 온전하고 성경적인 '언약의 지평'을 제시하는 데 있다. 이는 과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해석하고 미래를 위한 새로운 신학적 틀(Paradigm)을 짜는 작업이다.


신학적 지형도: 오이코노미아(Oikonomia)와 디아테케(Diatheke)의 해석학적 충돌

정동섭 목사는 세대주의 신학이 한국 교회의 이단(구원파, 신천지 등) 생성에 어떤 토양을 제공했는지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이 비판의 정당성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먼저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와 '언약신학(Covenant Theology)'이라 불리는 두 거대 담론의 해석학적 전제와 그 차이를 엄밀하게 파악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교리 논쟁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경륜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의 싸움이다.   

해석학적 전제: 문자주의 대 구속사적 해석

이 두 신학의 가장 결정적인 분기점은 성경을 읽는 해석학적 렌즈(Hermeneutical Lens)에 있다.

세대주의의 문자적 해석 (Literal Hermeneutics)

세대주의는 성경의 예언, 특히 구약의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이 문자 그대로, 물리적으로 성취되어야 한다고 본다. 19세기 존 넬슨 다비(J.N. Darby)에 의해 체계화되고 스코필드 관주 성경(Scofield Reference Bible)을 통해 대중화된 이 신학은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고 교회는 교회다"라는 이분법을 철칙으로 삼는다.   

  • 두 백성, 두 목적: 찰스 라이리(Charles Ryrie)와 같은 고전적 세대주의자들은 하나님이 역사 속에 두 개의 서로 다른 프로그램(Program)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나는 '이스라엘'을 위한 지상적(Earthly) 목적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를 위한 천상적(Heavenly) 목적이다.   
  • 해석의 결과: 이 관점에서 구약의 '땅(Land)'과 '다윗 왕국(Davidic Kingdom)'에 대한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성취되지 않았으며, 교회가 휴거된 이후 도래할 미래의 천년왕국(Millennial Kingdom)에서 회복된 민족적 이스라엘을 통해 성취되어야 한다.   

이민교회 강단에서 흔히 듣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기도"나 "제3성전 건축"에 대한 강조는 단순한 선교적 열정을 넘어, 이러한 세대주의적 해석학이 깊이 깔려 있는 현상이다. 이는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을 종말의 신호탄(Super Sign)으로 해석하게 만들며, 중동의 지정학적 분쟁을 성경 예언의 성취로 직결시키는 경향을 낳는다.   

개혁주의의 언약적 해석 (Covenantal Hermeneutics)

반면, 정동섭 목사가 옹호하는 개혁주의 신학은 성경 전체를 '언약(Covenant, Diatheke)'이라는 거대한 통일성 안에서 바라본다. 하나님은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다윗과 맺은 여러 언약들을 통해 점진적으로 구속 역사를 진행해 오셨으며, 이 모든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정점(Culmination)에 도달한다.   

  • 하나의 백성: 개혁주의는 구약의 이스라엘을 신약 교회의 예표(Type)로 본다. 그리스도가 '참된 이스라엘(True Israel)'이며, 그와 연합한 교회가 '영적인 이스라엘'로서 아브라함의 유업을 잇는다(갈 3:29, 6:16).   
  • 성취의 방식: 구약의 물리적 예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 보편적으로 성취되었다. 예를 들어, '약속의 땅'은 더 이상 팔레스타인의 특정 영토가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안식으로 확장된다.   

오이코노미아(Oikonomia)의 오용과 회복

흥미롭게도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라는 용어는 헬라어 오이코노미아(Oikonomi)에서 유래했다(엡 1:10, 3:2). 이는 '집안 관리' 혹은 '경륜'을 의미한다.   

  • 세대주의의 관점: 그들은 이 단어를 역사적 시간을 쪼개는 '시대(Dispensation)'로 이해한다. 하나님이 각 시대마다 인간을 다루는 방식(경영 방식)을 달리하셨다는 것이다(예: 율법 시대 vs. 은혜 시대).   
  • 교부들과 정통 신학의 관점: 그러나 교부 신학에서 오이코노미아는 하나님의 본체(Theologia)와 구별되는, 창조와 구속 사역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님의 활동을 의미했다. 동방 정교회와 가톨릭, 그리고 개혁주의 전통에서 오이코노미아는 시간을 단절적으로 나누는 칼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이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시키시는 '구속의 드라마'를 의미한다.   

이민교회 목회 현장에서 이 차이는 치명적이다. 세대주의적 오이코노미아 이해는 역사를 토막 내어, "지금은 은혜 시대이니 율법은 필요 없다"는 식의 반(反)율법주의(Antinomianism)로 흐를 위험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2.3 신학 체계 비교 요약

다음은 본 연구를 위해 분석된 자료들을 바탕으로 두 신학 체계를 비교한 것이다.

비교 항목 세대주의 (Dispensationalism) 개혁주의/언약신학 (Covenant Theology)
핵심 개념 세대(Dispensation): 시대를 구분하여 다르게 통치 언약(Covenant): 은혜 언약 안에서 통일성 유지
해석학 문자적 해석: 예언의 물리적 성취 강조 구속사적 해석: 예언의 그리스도 중심적 성취
이스라엘과 교회 분리: 서로 다른 두 백성, 두 운명 연속성: 교회는 '영적 이스라엘', 하나의 백성
율법관 불연속성: 산상수훈은 천년왕국용, 교회는 은혜 법 연속성: 율법은 성화의 규범(제3용도)으로 유효
종말론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환난 전 휴거, 7년 대환난 무천년설/역사적 전천년설: 이미와 아직(Already/Not Yet)
하나님 나라 미래적: 천년왕국 때 비로소 실현 현재적/미래적: 그리스도 초림으로 이미 시작됨
대표 신학자/성경 J.N. 다비, 스코필드 성경, 찰스 라이리 칼빈, 맹천(Machen), 안토니 후크마, 마이클 호튼
이민교회 영향 초기 선교사, 부흥회, 평신도 성경공부 2세 목회자(EM), 신학교 교육, 장로교 전통

한국교회와 세대주의의 역사적 궤적: 수용, 변형, 그리고 트라우마

왜 한국교회, 특히 이민교회는 유독 세대주의에 친화적인가? 정동섭 목사의 비판이 오늘날 유효한 이유는, 이 신학이 단순히 책상 위의 이론이 아니라 한국 교회의 DNA 깊숙이 박힌 역사적 유산이기 때문이다.

선교사들의 유산과 식민지 상황의 조응

초기 내한 선교사들, 특히 19세기 말 미국의 북장로교 선교사들은 당시 미국 내에서 자유주의 신학의 도전에 맞서던 보수적 근본주의 성향이 강했다. 이들은 무디(D.L. Moody)의 부흥 운동과 스코필드(C.I. Scofield)의 세대주의적 성경 해석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 종말론의 위로: 일제 강점기라는 혹독한 시련 속에서, "이 세상은 곧 망하고 주님이 오셔서 우리를 구출하실 것"이라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은 조선 성도들에게 강력한 위로와 저항의 동력이 되었다. 당시 한국 기독교인들은 요한계시록을 문자적으로 읽으며 일제를 적그리스도적 세력으로, 신사참배를 우상 숭배로 규정하고 저항했다. 이때의 세대주의는 현실 도피라기보다, 고난을 견디게 하는 '순교적 신앙'의 토대였다.   

6.25 전쟁과 '시한부 종말론'의 씨앗

그러나 해방과 6.25 전쟁을 거치면서 이 종말론은 질적인 변화를 겪는다. 전쟁의 참화 속에서 극심한 가난과 절망을 경험한 한국 교회는, 현실 세계를 철저히 부정하고 내세의 복(천당)과 현세의 물질적 축복(기복신앙)을 동시에 추구하는 기형적인 형태로 발전했다.

  • 부흥회의 영향: 1960-70년대 부흥사들은 요한계시록의 상징들을 당시의 냉전 상황(소련, 중공 등)과 결부시키며 공포심을 자극했고, 이는 긴박한 종말론을 일상화시켰다. 이민 1세대들은 바로 이 시기에 신앙생활을 형성하고 이민 가방에 그 신학을 담아왔다.   

1992년 다미선교회 사태: 이민사회의 잊혀지지 않는 트라우마

정동섭 목사는 세대주의가 낳은 병폐의 정점으로 시한부 종말론을 지목한다. 1992년 10월 28일 휴거를 주장했던 다미선교회(이장림 목사) 사건은 한국뿐만 아니라 LA, 뉴욕 등 이민 사회를 강타했다.   

  • 현상: 당시 수많은 한인 이민자들이 생업을 포기하고, 학교를 자퇴하고, 재산을 헌납한 채 흰 옷을 입고 휴거를 기다렸다.
  • 결과: 휴거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 후유증은 처참했다. 가정은 파탄 났고, 교회에 대한 사회적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무엇보다 "종말론은 위험하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이민교회 내에서 건전한 종말론 교육마저 위축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 신학적 원인: 다미선교회의 오류는 돌발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성경의 예언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시대를 기계적으로 구분하며, 현재의 삶보다 미래의 탈출(Rapture)을 구원과 동일시한 극단적 세대주의 해석학의 논리적 귀결이었다.   

이단 논쟁과 윤리의 실종: 율법폐기론(Antinomianism)의 그늘

정동섭 목사의 비판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지점은 세대주의와 '구원파(Salvation Sect)'의 연결고리다. 이는 이민교회 내 만연한 '윤리 부재' 현상과 깊은 연관이 있다.

구원파와 세대주의적 구원론

구원파(권신찬, 유병언, 박옥수, 이요한 계열)는 자신들의 교리를 "깨달음"이라고 주장하지만, 그 뿌리는 다비(Darby)의 세대주의적 구원론을 한국적으로 변형한 것이다.   

  • 죄 사함과 회개: 그들은 "한번 구원받으면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가 사해졌으므로 더 이상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친다. 반복적인 회개를 하는 기성 교인을 '구원받지 못한 자'로 매도한다.
  • 세대주의적 배경: 이러한 주장은 세대주의가 '율법 시대'와 '은혜 시대'를 칼로 자르듯 분리한 데서 기인한다. "지금은 은혜 시대이니 율법은 폐기되었다"는 논리가 극단화되면서, 성화(Sanctification)를 위한 율법의 기능(도덕적 지침)까지 부정하는 율법폐기론으로 나아간 것이다.   

존 맥아더의 '주권 구원(Lordship Salvation)' 논쟁

이 문제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복음주의권에서도 1980년대 후반, 대표적인 세대주의자인 존 맥아더(John MacArthur) 목사가 전통적 세대주의 진영(달라스 신학교 등)을 향해 "예수를 구세주(Savior)로만 영접하고 주님(Lord)으로는 모시지 않아도 구원받는다"는 가르침(무료 은혜, Free Grace)을 비판하며 주권 구원 논쟁을 촉발시켰다.   

  • 맥아더는 비록 자신이 세대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구원받은 자에게는 반드시 순종의 열매가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며, 세대주의 내의 반율법주의적 경향을 맹렬히 공격했다.   
  • 이민교회의 현실: 안타깝게도 많은 이민교회 성도들은 "믿기만 하면 천국 간다"는 단순화된 복음에 익숙해져 있다. 비즈니스 현장에서는 탈세와 불법을 저지르면서도 주일에는 구원의 확신을 노래하는 이중성은, 신학적으로는 '칭의'와 '성화'를 분리시킨 잘못된 세대주의적 구원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정동섭 목사는 바로 이 지점, 즉 "삶이 없는 신앙"을 정당화하는 신학적 오류를 타격하고 있는 것이다.   

선교와 종말론의 최전선: 백투예루살렘(BTJ)과 인터콥 논쟁

이민교회에서 세대주의 신학이 가장 폭발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분야는 '선교'다. 특히 '인터콥(InterCP)'과 '백투예루살렘(Back to Jerusalem)' 운동은 세대주의적 역사관이 선교 전략으로 구체화된 사례다.

세대주의적 선교관의 매력과 함정

'백투예루살렘' 운동은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서쪽으로 돌아(서진),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면 주님이 재림하신다는 선형적, 지리적 종말론에 기초한다.   

  • 매력: "우리가 남은 과업(미전도 종족 선교)을 완수하면, 예수님이 오신다"는 메시지는 단순하고 강력하다. 이는 이민교회의 청년들과 평신도들에게 엄청난 선교적 동기를 부여했다. 자신이 종말의 시계바늘을 움직일 수 있는 주체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 신학적 문제: 그러나 이는 마태복음 24:14("이 천국 복음이...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을 기계적으로 해석한 결과다.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복음의 전파가 종말의 징조이지, 인간이 종말을 촉발(Trigger)하는 조건이 아니라고 본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가져오시는' 것이다.   

인터콥 논쟁과 지역 교회의 갈등

인터콥은 이러한 세대주의적 비전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현장 선교(땅밟기 등)를 수행해 왔다. 이는 이민교회 내에서 심각한 갈등을 유발했다.

  • 교회론의 부재: 다비(Darby)의 분리주의적 교회관처럼, 일부 선교단체는 기성 교회를 "선교하지 않는 죽은 조직"으로 폄하하고, 선교단체야말로 말세의 사명을 감당하는 '남은 자'라고 가르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이민교회의 분열을 조장하고, 목회 리더십을 훼손하는 결과를 낳았다.   
  • 세대주의적 배타성: "지금은 마지막 시대(End Times)이므로 비상한 방법이 필요하다"는 논리는 선교 현지에서의 무리한 활동과 보안 문제, 그리고 타문화에 대한 무례함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했다.   

정동섭 목사의 세대주의 비판은 이러한 선교 운동이 건전한 교회론과 종말론의 통제를 받지 않을 때,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경고하는 목회적 호소다.


조용한 분열(Silent Divergence): 1세(KM)와 2세(EM)의 신학적 단절

이민교회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KM과 EM 사이의 깊어지는 골이다. 이는 단순한 언어나 문화(김치 vs. 버터)의 차이가 아니라, 근본적인 신학적 패러다임의 충돌이다.

신학적 DNA의 불일치

  • KM (Korean Ministry): 여전히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이스라엘의 회복, 축복 중심의 메시지가 강세다. 설교는 연역적이고 권위적이며, 텍스트의 문자적 적용(Literal Application)을 강조한다. "이스라엘을 축복해야 네가 복을 받는다"는 식의 설교가 여전히 유효하다.   
  • EM (English Ministry): 반면 2세 목회자들은 대부분 웨스트민스터, 고든콘웰, 풀러, 트리니티 등 미국 주류 신학교에서 교육받았다. 이들은 언약신학(Covenant Theology), 하나님 나라 신학(Kingdom Theology), 혹은 점진적 구속사(Progressive Redemption)에 익숙하다.   

충돌의 현장

EM 목회자가 강단에서 "교회는 영적 이스라엘이며(갈 6:16), 하나님 나라는 '이미' 임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설교할 때, 1세 장로들은 불편함을 느낀다.

  • "왜 목사님은 요한계시록 설교를 안 하십니까?"
  • "왜 이스라엘 국기를 강단에 두지 않습니까?"
  • "왜 666 베리칩에 대해 경고하지 않습니까?"

반대로, 2세들은 1세대의 시한부적 종말론이나 기복적 신앙을 비지성적이고 비윤리적인 것으로 치부한다. 한 2세 목회자의 고백처럼, "우리 부모님 교회는 하나님 나라(Kingdom)보다 교회 성장(Business)에 더 관심이 있는 것 같다"는 인식은 2세들의 조용한 탈출을 가속화한다. 그들은 사회 정의(Social Justice)와 공적 신앙(Public Faith)에 관심이 많지만, 세대주의적 신학은 "세상은 어차피 망할 것이니 구조선에 사람을 태우는 것(영혼 구원)만이 유일한 사명"이라며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게 만든다.   


통합과 회복을 위한 목회적 제언: 세대를 넘어 언약의 완성으로

우리는 이제 비판을 넘어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탁월한 신학자이자 목회자로서, 나는 이민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다음과 같이 제언한다.

점진적 언약주의(Progressive Covenantalism)의 수용

이분법적인 '세대주의 vs 언약신학'의 대립을 넘어, 최근 복음주의권에서 대두되는 점진적 언약주의 혹은 점진적 세대주의(Progressive Dispensationalism)는 이민교회에 훌륭한 신학적 가교가 될 수 있다.   

  • 연속성과 불연속성의 조화: 이 입장은 하나님의 계획이 구약과 신약에 걸쳐 점진적으로 발전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인정한다. 이스라엘에 대한 약속이 교회 안에서 폐기된 것이 아니라, '확장되어(Expanded)' 성취되었다고 가르친다.   
  • 적용: 이를 통해 1세대의 성경 사랑과 종말론적 소망을 존중하면서도, 2세대의 하나님 나라 신학을 포용할 수 있다. 이스라엘을 위한 기도를 '민족적 회복'만이 아닌 '유대인과 이방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새 사람(One New Man)이 되는 것'(엡 2:15)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

'우리(Woori)' 신학의 정립과 디아스포라 정체성

이민교회는 서구의 개인주의적 신학도, 과거의 권위주의적 신학도 아닌, 디아스포라의 아픔과 연대를 품는 신학이 필요하다.

  • 한(Han)의 승화: 한국적 정서인 '우리(Woori)'와 '한(Han)'을 성경의 탄식(Lament) 전통과 연결해야 한다. 종말론은 현실 도피가 아니라, 이 땅의 부조리와 고난(이민자의 설움)을 하나님께 토로하며, 주님이 가져오실 정의로운 나라를 소망하는 힘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 공동체적 해석: 성경을 읽을 때 '나의 구원'을 넘어 '우리의 언약'으로 읽어야 한다. 이는 개체 교회 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이민 사회 전체를 섬기는 공공성 회복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Christ-Centered Preaching)의 회복

정동섭 목사의 우려대로 율법과 복음을 분리하지 않으려면, 모든 설교가 그리스도 중심적이어야 한다.   

  • 율법의 완성자: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음을 강조해야 한다(마 5:17). 신약의 윤리는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받은 언약 백성의 마땅한 반응이자 특권임을 가르쳐야 한다.
  • 구원파적 오류 극복: "구원받았으니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생각은 그리스도의 주권(Lordship)을 부인하는 것이다. 참된 믿음은 반드시 순종을 낳는다는(Fiducia) 종교개혁의 신앙을 회복해야 한다.   

결론: 역사의 주관자에게로 시선을 돌리다

정동섭 목사는 우리에게 뼈아픈 질문을 던졌다. "우리의 신학은 정말 성경적인가, 아니면 특정 시대의 유행이나 두려움에 기인한 것인가?"

이민교회 현장에서 사역하는 목회자로서 내리는 결론은 분명하다. 초기 선교사들이 전해준 세대주의 신학은 한국 교회의 성장기에 뜨거운 열정과 위로를 제공했지만, 이제 성숙기로 접어든 이민교회에는 맞지 않는 옷이 되었다. 그것은 자칫하면 우리를 게토화(Ghettoization)하고, 다음 세대를 떠나보내며, 윤리적으로 타락하게 만들 수 있다.

 

우리는 이제 역사를 토막 내는 '세대(Dispensation)'의 신학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통일하시는 하나님의 거대한 '경륜(Oikonomia)'을 바라보는 통합적 언약 신학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때 비로소 KM과 EM이, 1세와 2세가, 그리고 이스라엘과 열방이 분리된 장벽을 허물고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연합을 이루는 날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오늘, 이민교회가 붙잡아야 할 참된 종말의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