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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혼의 미술관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시는 십자가

OCJ|2026. 3. 26. 02:53

'색채의 마술사'라 불리며 하늘을 나는 연인들의 몽환적인 사랑을 화폭에 담아냈던 화가, 마르크 샤갈. 그러나 그의 작품 세계 한가운데에는 우리가 알던 따뜻하고 동화 같은 풍경과는 사뭇 다른, 서늘하고도 가슴 시린 그림 한 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바로 1938년에 완성된 <하얀 십자가(White Crucifixion)>입니다.

 


그림 앞에 서서 가만히 화폭을 들여다봅니다. 캔버스 전체를 지배하는 차가운 흰색의 여백 위로, 홀로코스트의 끔찍한 참상이 붉은 화염과 함께 혼란스럽게 소용돌이치고 있습니다. 불타오르는 유대교 회당, 공포에 질려 작은 나룻배에 몸을 싣고 도망치는 난민들, 화염 속에서 성경(토라)을 부둥켜안고 울부짖는 사람들, 그리고 모든 것을 잃고 내쫓긴 자들의 행렬이 그림의 가장자리를 위태롭게 맴돕니다.

 

러시아 태생의 유대인으로서 나치의 박해와 2차 세계대전의 비극을 온몸으로 통과해야 했던 샤갈은, 동족들이 학살당하고 있다는 절망적인 소식 앞에서 붓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끔찍한 학살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전혀 예상치 못한 존재가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바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놀랍게도 그림 속 예수는 전통적인 가시면류관과 수의 대신, 유대인들이 기도할 때 두르는 숄인 '탈리트(Tallit)'를 허리에 두르고 있습니다. 평생을 유대교의 영성에 뿌리내리고 살았던 샤갈이, 왜 자신의 캔버스 중앙에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를 그토록 거대하게 세워두었던 것일까요? 

참상의 한가운데, 유대인의 기도보를 두르신 예수

샤갈에게 십자가는 단순히 타 종교의 상징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억울하게 핍박받고 죽어가는 인류의 가장 깊은 고통을 대변하는 궁극적인 표상이었습니다. 유대인의 기도보를 두르고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는, 저 멀리 안전한 하늘에서 인간의 비극을 관망하는 신이 아닙니다. 오히려 불타는 마을과 도망치는 난민들 한가운데로 직접 내려와, 그들과 함께 피 흘리고 숨을 거두는 '동반자'로서의 신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한 줄기 하얀 빛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몸을 비춥니다. 이 빛은 절망뿐인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남은 희망의 상징이자, 폭력과 증오 속에서도 결코 소멸하지 않는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줍니다. 샤갈 특유의 비극적이면서도 몽환적인 색채는 차가운 흰색 배경과 강렬한 대비를 이루며 폭력의 잔혹함을 고발하는 동시에, 그리스도가 고통받는 이들의 가장 가까운 곳에 함께하고 계심을 시각적으로 웅변합니다.

박제된 과거가 아닌, 지금 여기의 십자가

<하얀 십자가>의 독특한 구도는 십자가의 수난을 2천 년 전 골고다 언덕에 박제된 과거의 사건으로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그림 속 십자가 주변의 인물들은 1세기 로마 시대의 사람들이 아니라, 20세기 유럽에서 박해받던 유대인들입니다. 이는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 오늘날 우리가 겪는 고난 속에서 계속해서 재현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샤갈의 통찰은 현대 크리스천들에게 매우 날카롭고도 중요한 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가 믿는 십자가는 과연 어디에 세워져 있는가?' 우리는 종종 십자가를 나의 죄를 용서받고 개인적인 복을 누리기 위한 은혜의 통로로만 축소하곤 합니다. 하지만 샤갈이 그려낸 십자가는 나의 안위만을 구하는 이기적인 기복의 제단이 아닙니다. 그것은 타자의 참혹한 고통 한가운데 우뚝 서서,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피 흘림에 동참하는 '연대의 십자가'입니다.

나만의 십자가에서 '우리의 십자가'로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풍경도 그림 속 참상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구촌 곳곳에서 끊이지 않는 전쟁과 테러, 일상에 만연한 폭력과 혐오, 철저히 소외되어 울부짖는 이웃들의 모습은 21세기 버전의 <하얀 십자가> 배경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그리스도는 지금도 여전히 전쟁의 포화 속에 남겨진 아이들 곁에서, 사회적 차별과 혐오로 밀려난 이들 곁에서 우리와 함께 십자가를 지고 계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가장 참혹한 고통 한가운데로 들어오셔서 함께 울고 계신다는 사실은, 깊은 절망 속에 있는 우리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커다란 위로가 됩니다. 

위로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우리를 실천적인 삶으로 초대합니다. 십자가의 참된 의미를 깨달은 사람이라면, 나만의 평안을 구하는 기도를 넘어 이웃의 아픔에 공명해야 합니다. 누군가를 향해 내밀어 주는 따뜻한 손길, 차별받는 이를 위해 내는 용기 있는 목소리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걷는 가장 아름다운 방식일 것입니다. 

오늘 하루, <하얀 십자가> 앞에 마음으로 머물며 내 주변에 고통받는 이웃은 없는지 조용히 돌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우리의 작은 연대와 사랑이, 누군가의 어두운 십자가 위로 쏟아지는 한 줄기 따스한 하얀 빛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