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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 별을 향해 걸어간 자
책을 열며
타임머신이 있다면, 당신은 어느 시대로 가보고 싶은가?
공룡이 포효하던 백악기?
로마제국의 검투사들이 칼을 맞부딪치던 콜로세움?
수많은 선택지가 있겠지만,
우리는 주저 없이 인류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한 남자를 만나러 갈 것이다.
그의 이름은 아브람이다.
그는 왕도, 장군도 아니었다.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지도, 불멸의 예술 작품을 남기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메소포타미아의 번성하는 도시에서 살던 평범한 가장이었고,
때로는 두려움에 떨던 겁쟁이였으며,
약속이 더디 이루어지는 현실에 초조해하며
인간적인 계산을 앞세우던 연약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평범하고 연약한 남자에게서 위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전 생애를 걸었고,
그분의 약속 하나를 붙들고 미지의 땅으로 떠났으며,
마침내 '믿음의 조상'이 된 사람.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고대의 기록이 아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 불안의 한가운데서 길을 찾고,
의심과 싸우며,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은 당신을 위한 타임머신이다.
굳건한 신앙의 영웅으로 박제된 아브라함이 아니라,
갈등하고 실수하며 성장해가는 '인간 아브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흙먼지 날리는 고대의 길을 그와 함께 걷고,
낯선 땅의 밤하늘 아래 그의 고뇌를 엿보고,
승리의 환희와 실패의 쓴잔을 함께 맛보게 되기를 바란다.
자, 이제 시간의 강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역사의 거대한 무대 뒤편,
갈대아 우르의 번화한 거리에서
한 남자가 하늘의 음성을 듣는 그 운명적인 순간으로.
목차
프롤로그: 시간의 장막을 걷고
제1부: 세상의 끝에서 시작된 부름
제1장: 달의 도시, 태양의 부름
제2장: 낯선 땅에 세운 제단
제3장: 이집트의 그림자
제2부: 관계의 시험
제4장: 갈등의 해결사
제5장: 전사 아브람
제6장: 두 왕, 두 가지 축복
제3부: 언약과 기다림
제7장: 별 헤는 밤의 대화
제8장: 연기 나는 화로와 타는 횃불
제9장: 위험한 계산, 조급한 영성
에필로그: 여전히 길 위에 서 있는 당신에게
프롤로그: 시간의 장막을 걷고
카메라의 렌즈가 칠흑 같은 우주를 부유한다.
이윽고 푸른 보석처럼 빛나는 행성, 지구가 나타난다.
렌즈는 대기권을 뚫고 빠르게 하강하며 시간의 층을 꿰뚫는다.
문명의 여명기, 거대한 두 강이 비옥한 땅을 적시는 메소포타미아.
그 중심에 달의 신 '난나'의 위용을 자랑하는 도시,
갈대아 우르의 심장부로 우리는 들어간다.
이 이야기는 신과 인간, 약속과 의심,
믿음과 두려움에 관한 가장 원초적인 드라마다.
우리는 신화 속에 박제된 영웅이 아닌,
우리와 똑같이 흔들리고 고뇌하는 '인간 아브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의 숨결을 바로 곁에서 느끼며,
메소포타미아의 흙먼지를 함께 마시고,
이집트 궁전의 위압감에 숨죽이고,
약속의 땅 밤하늘의 별을 함께 헤아리는 경이로운 여정에 당신을 초대한다.
한 평범한 남자가 어떻게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믿음의 강'이 되었는지,
그 위대한 드라마가 이제 막을 올린다.
제1부: 세상의 끝에서 시작된 부름
제1장: 달의 도시, 태양의 부름
갈대아 우르의 공기는 짙고 축축했다.
유프라테스 강이 실어 온 비옥한 진흙 냄새와,
도시의 수호신 '난나'에게 바치는 향불,
그리고 수많은 가축과 사람들이 내뿜는 열기가 뒤섞여 있었다.
해가 기울자 그 열기는 한풀 꺾였지만,
도시의 활기는 쉬이 잠들지 않았다.
아브람은 아버지 데라의 작업실에서 무릎을 꿇은 채 삼나무 조각을 매끄럽게 다듬고 있었다.
그의 손놀림은 수십 년간 반복해 온 장인의 그것처럼 정교하고 익숙했다.
그의 손끝에서 또 하나의 작은 달의 신상이 형체를 갖추어갔다.
도시의 모든 집안에 평안과 다산을 가져다준다는, 바로 그 신이었다.
그러나 아브람은 자신이 만드는 신에게서 어떤 평안도,
어떤 생명의 기운도 느낄 수 없었다.
그의 손은 기계적으로 움직였지만, 그의 영혼은 메마른 사막 같았다.
작업실 밖,
저녁을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골목 너머로
아내 사래가 이웃 여인과 나누는 대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아이들의 재롱을 자랑하는 이웃의 목소리와,
애써 밝은 척 대꾸하지만 그늘이 묻어나는 사래의 목소리.
아브람은 잠시 눈을 감았다.
사래의 텅 빈 자궁처럼, 그의 영혼도 마른 우물 같았다.
그는 손에 든 나무 조각을 힘주어 쥐었다.
이 작은 나무 조각이,
저 거대한 지구라트 신전이, 과연 생명을 줄 수 있는가?
그의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거대한 질문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밤이 깊어지자 그는 옥상에 올랐다.
도시의 등불이 별처럼 반짝였고,
거대한 지구라트는 침묵 속에 밤하늘을 이고 있었다.
그는 이 도시의 질서와 풍요를 사랑했다.
그러나 동시에 숨이 막혔다. 그는 하늘을 향해 나직이 읊조렸다.
"이것이… 전부입니까?“
바로 그때였다. 세상의 모든 소음이 멎는 듯한 정적과 함께,
그의 존재를 관통하는 울림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귀로 들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의 심장에서, 그의 뼛속에서 직접 울려 퍼지는,
거부할 수 없는 위엄과 이상한 따스함이 담긴 현존(presence)이었다.
"아브람.“
그는 자신도 모르게 바닥에 엎드렸다.
온몸이 제어할 수 없이 떨려왔다. 두려웠지만, 이상하게도 평온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어디로 가는지조차 알려주지 않은 채. 아브람은 깊은 혼란에 빠졌다.
그러나 그 음성에는 그가 평생토록 갈망해온 생명의 힘이 있었다.
그분은 약속하셨다.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너는 복 자체가 될 것이라고.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해 복을 얻을 것이라고.
며칠 밤낮을 고뇌했다. 그는 병든 사람처럼 수척해졌다.
마침내 그는 결심하고, 등잔불 아래서 바느질하는 사래의 앞에 앉았다.
"사래, 우리가… 이곳을 떠나야 할 것 같소.“
사래의 손이 멈칫했다. 그녀는 남편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그의 눈은 퀭했지만, 그 안에는 광기가 아닌, 흔들림 없는 확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브람은 지난 며칠간 자신에게 일어났던 모든 일을 떨리는 목소리로 털어놓았다.
그녀의 마음속에서도 무언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복의 통로가 될 것'이라는 말.
평생 '저주받은 여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온 그녀에게
그 약속은 너무나 아득하고 비현실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의 눈에서 거짓을 읽을 수 없었다.
그녀는 조용히 바느질감을 내려놓고, 남편의 떨리는 손을 마주 잡았다.
"당신이 섬기는 하나님이라면, 저의 하나님입니다.
어디든… 함께 가겠습니다.“
그 한마디는 아브람에게 천군만마와 같았다.
그들이 도시의 성문을 나서는 날 아침,
소식을 들은 친척과 이웃들이 몰려나와 수군댔다.
"망령이 들었군."
75세의 노인이 아내와 조카 롯을 이끌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전 재산을 정리해 떠나는 모습은 조롱거리 그 자체였다.
늙은 아버지 데라도 여정에 동참했지만,
그의 눈에는 아들의 무모함에 대한 꾸짖음과 눈물이 어려 있었다.
아브람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등 뒤로는 익숙한 도시의 불빛이 멀어지고,
눈앞에는 가본 적 없는 어둡고 막막한 광야가 펼쳐져 있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순종의 여정이,
그렇게 세상의 끝처럼 보이는 곳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제2장: 낯선 땅에 세운 제단
기약 없는 여정은 고됐다.
흙먼지 날리는 길, 타는 듯한 햇볕, 밤의 한기.
비옥한 초승달 지대를 따라 북서쪽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시간은 무심하게 흘렀다.
하란에 이르렀을 때,
아버지 데라가 마침내 숨을 거두었다.
아브람은 아버지의 시신을 땅에 묻으며 마지막 인사를 고했다.
아버지의 죽음은 그의 마음에 또 하나의 슬픔을 새겼지만,
그의 가슴속에 울리는 그 음성은 여전히 그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마침내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섰다.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 아래에 이르렀을 때,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풍경이 아니었다.
그 땅에는 이미 가나안 사람들이 견고한 성읍을 쌓고 살고 있었다.
그들의 눈초리는 날카로웠고,
자신들의 신을 섬기는 이교의 문화는 낯설고 위협적이었다.
아브람과 그의 일행은 그저 낯선 문화를 가진 이방인이자 이주자일 뿐이었다.
'하나님, 약속하신 땅이 이런 모습입니까?‘
마음속에서 의심의 속삭임이 들려왔지만,
아브람은 불평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그 이교의 땅 한가운데서 모두를 놀라게 할 행동을 시작했다.
그는 묵묵히 돌을 모아 제단을 쌓았다.
그리고 자신을 부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그것은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선전포고였다.
이 땅의 주인은 저들이 섬기는 신들이 아니라,
하늘과 땅을 만드신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낯설고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용감한 믿음의 고백이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비옥하고 쓸만한 땅은 이미 가나안 사람들이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아브람의 무리는 점점 남쪽으로 밀려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벧엘과 아이를 거쳐,
그의 발걸음은 마침내 척박한 사막 지역인 네게브에 닿았다.
설상가상으로, 그 땅에 극심한 기근이 찾아왔다.
뜨거운 태양은 메마른 땅을 거북 등처럼 갈라놓았고,
가축들은 힘없이 쓰러져갔다.
식솔들의 굶주린 눈빛이 그의 심장을 찔렀다.
가장으로서의 압박감이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하나님의 음성은 더 이상 들리지 않는 듯했고,
흔들리는 믿음의 틈새로 인간적인 계산이 파고들었다.
그의 눈에 나일강의 풍요로운 땅, 애굽이 들어왔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았다.
그는 식솔들을 이끌고 애굽으로 내려가기로 결심했다.
위대한 믿음의 영웅도 현실의 문제 앞에서는
속절없이 흔들리는 연약한 인간일 뿐이었다.
두려움을 피하기 위한 그의 선택이
그를 얼마나 더 깊고 위험한 수렁으로 빠뜨리게 될지,
그는 아직 알지 못했다.
제3장: 이집트의 그림자
애굽으로 향하는 길,
아브람의 마음은 불안으로 가득 찼다.
기근을 피했다는 안도감도 잠시,
새로운 두려움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옆에서 걷고 있는 아내 사래를 훔쳐보았다.
세월의 흔적도 비켜간 듯한 그녀의 아름다움은
이 낯선 땅에서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될 수 있었다.
그는 마른 입술을 열었다.
"여보, 내 말 좀 들어보시오.
당신은 누가 봐도 아리따운 여인이오.
애굽 사람들이 당신을 보고 아내라고 하면 나를 죽이고 당신을 빼앗아갈 것이오.
그러니 제발, 당신은 내 누이라고 말해주시오.
그러면 내가 당신 덕분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것이오.“
믿음의 조상 아브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기 힘든 비겁한 제안이었다.
자기 목숨을 구하기 위해 아내에게 거짓말을 하라고 종용하고 있었다.
하나님을 향한 신뢰는 사라지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그를 완전히 지배했다.
사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편의 눈에 서린 공포를 보며, 그녀는 그저 작게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아브람의 걱정대로,
그들이 애굽에 들어서자 사람들의 시선이 온통 사래에게로 쏠렸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대한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마침내 바로 왕의 신하들 귀에까지 들어갔다.
신하들은 자신들의 왕에게 바칠 최고의 선물로 그녀를 추천했다.
결국 사래는 바로의 궁으로 끌려갔다.
아브람은 아내의 손목이 군인들에게 붙들려 멀어져 가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일이 이렇게까지 꼬일 줄은 몰랐다.
그는 그저 적당히 위기를 모면하려 했을 뿐인데,
상대는 이집트 제국의 절대 권력자 바로였다.
바로 왕은 미래의 처남이 될지도 모르는 아브람을 극진히 대접했다.
양과 소, 노비와 낙타 등 엄청난 재물이 그의 앞으로 쏟아졌다.
그는 순식간에 부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인가?
화려한 천막 안에서,
그는 아내를 팔아 얻은 재산에 둘러싸여 있는 자신의 처량한 신세를 절감했다.
'축복의 통로'가 되리라는 비전은 어디로 갔는가?
그는 자신의 소명을 완전히 잊어버린 듯 보였다.
바로 그때,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셨다.
궁 안에 원인 모를 질병이 돌고 흉사가 잇따랐다.
절대 권력자 바로는 두려움에 떨었다.
마침내 그는 이 모든 재앙이
자신이 데려온 히브리 여인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찌하여 나에게 이런 일을 행하였느냐!
어찌하여 그가 네 아내라고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바로의 서슬 퍼런 호통 앞에 아브람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하나님을 믿는다던 그가 이방인 왕에게 도덕 교육을 받는 순간이었다.
그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 깊은 수치와 고통 속에서,
아브람은 자신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거친 사랑의 손길을 느꼈을 것이다.
"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리고 가라!“
아브람은 바로가 준 재물을 모두 챙겨,
아내 사래와 함께 애굽에서 쫓겨나듯 나왔다.
그의 손에는 불어난 재산이 들려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평생 지울 수 없는 실패의 상처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버리지 않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깊은 깨달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실패를 통해 배웠다.
그는 다시 약속의 땅을 향해, 예배의 자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제2부: 관계의 시험
제4장: 갈등의 해결사
애굽에서 돌아온 아브람의 일행은 예전과는 사뭇 달랐다.
바로에게서 받은 가축과 은금이 풍부하여 그 규모가 엄청나게 커져 있었다.
하지만 그 늘어난 재산은 아브람에게 부유함의 상징이기보다,
아내를 팔아 얻은 부끄러운 실패의 증표였다.
그는 양과 염소가 울 때마다 애굽에서의 치욕스러운 기억이 떠올라 괴로웠을 것이다.
아브람은 실패의 자리에서 다시 일어섰다.
그는 처음 가나안 땅에 들어와 제단을 쌓았던 곳,
벧엘과 아이 사이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했다.
그것은 실패로부터 돌아서서 하나님과의 첫사랑을 회복하려는,
초심으로 돌아가려는 그의 간절한 몸부림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갑자기 불어난 두 사람의 재산은 곧 갈등의 불씨가 되었다.
아브람의 조카 롯도 애굽에서 상당한 부를 축적했던 것이다.
한정된 땅과 목초지는 그들의 엄청난 가축 떼를 감당할 수 없었다.
결국 아브람의 목자들과 롯의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벌어졌다.
물과 풀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은 날이 갈수록 격해졌고,
그들의 다툼은 그 땅의 원주민인 가나안 사람들 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아브람은 마음이 아팠다.
애굽에서의 실패를 통해 그는 뼈저리게 배운 것이 있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인간적인 계산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
재산보다 관계가, 소유보다 평화가 더 소중했다.
아브람이 먼저 롯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우리는 한 골육이 아니냐.
너와 나 사이에 다툼이 없게 하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왼쪽을 택하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고,
네가 오른쪽을 택하면 나는 왼쪽으로 가겠다.“
실로 놀라운 제안이었다.
그 땅에 대한 우선권은 연장자이자 가장인 아브람에게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권리를 기꺼이 내려놓았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니,
당장 눈앞의 좋은 땅 몇 뙈기에 연연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롯은 삼촌의 관대한 제안에 눈을 들어 요단 들판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들어온 요단 지역은 물이 넉넉하여 마치 에덴동산 같았고,
그가 막 떠나온 풍요로운 애굽 땅과도 같았다.
그는 삼촌의 배려도, 하나님의 뜻도 고려하지 않았다.
오직 눈에 보이는 풍요로움에 따라 자신의 길을 선택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쪽으로 옮겨갔다.
그의 장막은 점점 더 동쪽으로 향하더니,
마침내 죄악이 관영한 도시 소돔 근처에까지 이르렀다.
롯이 떠난 뒤, 홀로 남은 아브람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너는 눈을 들어 네가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하나님은 믿음으로 손해 보기를 선택한 아브람의 편을 들어주셨다.
롯은 스스로 '눈을 들어' 좋은 땅을 '선택했지만',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눈을 들라' 명하시며 보이는 모든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갈등의 진정한 승자는 눈앞의 이익을 챙긴 롯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꺼이 자신을 비운 아브람이었다.
아브람은 헤브론으로 거처를 옮겨,
그곳에서 또다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다.
제5장: 전사 아브람
아브람은 헤브론의 원주민들과 동맹을 맺으며 평화롭게 지내려 애썼다.
그러나 그가 피하고 싶었던 전쟁의 소용돌이가 그와는 상관없이 시작되어,
마침내 그의 삶을 덮쳐왔다.
당시 근동의 패권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네 왕,
특히 엘람 왕 그돌라오멜이 쥐고 있었다.
요단 평지의 다섯 왕이 그에게 반기를 들자,
분노한 그돌라오멜은 막강한 연합군을 이끌고 원정에 나섰다.
싯딤 골짜기에서 벌어진 전투는 메소포타미아 연합군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다.
그들은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갔다.
그리고 그 포로들 중에는…
죄악의 도시 소돔에 깊숙이 자리 잡고 살던 아브람의 조카 롯도 포함되어 있었다.
전쟁터에서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한 사람이 아브람에게 달려와 이 비보를 전했다.
아브람은 깊은 고뇌에 빠졌다.
상대는 다섯 나라를 멸망시킨 무적의 연합군이다.
섣불리 덤볐다가는 자신과 온 식솔이 몰살당할 수도 있었다.
사실 그가 롯을 외면한다 해도 그를 비난할 사람은 없었다.
롯은 자신의 욕심 때문에 스스로 삼촌을 떠난 사람이 아닌가?
그러나 아브람은 마음이 큰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을 '축복의 통로'로 부르신 하나님의 소명을 기억했다.
이기심 때문에 자신을 떠났던 조카지만,
그가 위험에 처한 지금이야말로
자신이 그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그는 두려웠지만,
전능하신 만군의 여호와를 의지하고 용기를 냈다.
아브람은 즉시 자신의 집에서 기르고 훈련시킨 사병(私兵) 318명을 소집했다.
그는 평소에도 적대적인 환경에 대비해 스스로를 지킬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브람의 군대는 밤을 틈타 북쪽 단까지 적을 추격했다.
그는 병력을 여러 패로 나누어,
순식간에 혼란과 공포에 빠뜨렸다.
결과는 놀라웠다.
아브람은 빼앗겼던 모든 재물과 사람들,
그리고 조카 롯과 그의 가족을 모두 되찾아왔다.
일개 족장의 사병 318명이 거대한 연합군을 이긴 이 사건은,
아브람의 치밀한 전략과 용기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의 군대가 함께했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이 전쟁을 통해, 아브람은 전쟁의 승패는 군사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온몸으로 증명해 보였다.
제6장: 두 왕, 두 가지 축복
극적인 승리를 거두고 돌아오는 길,
아브람은 왕의 계곡에서 두 명의 왕을 만났다.
이 만남은 그의 인생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먼저 그를 맞으러 나온 사람은 소돔 왕 베라였다.
그는 패전의 잿더미 속에서 자신의 백성과 재물을 되찾아준 아브람을
영웅으로 맞이했다.
아브람의 위상은 하루아침에 달라졌다.
바로 그때,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거부하기 힘든,
아주 매력적인 제안을 해왔다.
"사람들은 내게 돌려보내고, 물품은 그대가 다 가지시오.“
엄청난 부를 약속하는 제안이었다.
목숨을 걸고 싸운 아브람으로서는 충
분히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 제안은 달콤한 독이었다.
만약 그가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그는 악한 도시 소돔의 왕에게 빚을 지게 되고,
사람들은 '아브람이 소돔 왕 덕분에 부자가 되었다'고 말할 것이었다.
이는 하나님의 명성에 흠집을 내는 일이었다.
아브람이 갈등하고 있을 바로 그 순간,
또 다른 한 왕이 나타났다.
그의 이름은 멜기세덱,
살렘의 왕이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
그는 족보도 배경 설명도 없이 역사 속에 갑자기 등장한 신비로운 인물이었다.
그는 전쟁에 지친 아브람을 위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그를 축복했다.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그대의 대적을 그대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멜기세덱의 축복은 이 전쟁의 승리가 아브람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 덕분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또한 참된 축복은 세상의 왕이 주는 물질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온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아브람은 겸손히 그 축복을 받고,
자신이 얻은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바쳤다.
이제 아브람은 세상이 주는 가짜 축복을 단호히 거절할 준비가 되었다.
그는 소돔 왕을 향해 돌아섰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을 부자로 만들었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신발 끈 하나라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얼마나 통쾌한 선언인가!
아브람은 세상이 주는 썩어 없어질 부보다,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선택했다.
그는 멜기세덱을 만났기에 소돔 왕을 이길 수 있었다.
제3부: 언약과 기다림
제7장: 별 헤는 밤의 대화
전쟁은 끝났고, 승리의 흥분도 가라앉았다.
아브람의 장막에는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그러나 그 정적 속에서,
아브람의 마음에는 더 근원적인 불안이 독초처럼 자라나고 있었다.
'큰 민족'을 이루게 해주시겠다는 약속은 10년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바로 그 불안의 한가운데로, 하나님께서 다시 찾아오셨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이전과 달리 아브람은 이제 잠잠히 듣고만 있지 않았다.
그는 친구에게 하듯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주 여호와여, 무엇을 제게 주시려나이까?
저는 자식이 없사오니, 저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 될 것입니다.
주께서 제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제 집에서 길린 자가 제 후사가 될 것입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원망과 탄식, 그리고 깊은 체념이 섞여 있었다.
하나님은 그의 불평 섞인 기도를 꾸짖지 않으셨다.
오히려 자상하게 그의 의심을 풀어주셨다.
"그 사람은 네 상속자가 아니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그리고는 그를 장막 밖으로 이끌어내셨다.
그날 밤하늘은 유난히 맑았다.
마치 검은 벨벳 위에 무수한 다이아몬드를 쏟아부은 듯,
별들이 총총히 빛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그 하늘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나님은 아브람이 눈에 보이는 별들을 통해
보이지 않는 당신의 신실하심과 능력을 깨닫기를 원하셨다.
그 순간, 아브람의 마음을 짓누르던 불안과 의심의 구름이 걷히기 시작했다.
그는 변한 것 없는 자신의 늙은 몸과 아내의 현실 대신,
약속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로 선택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이 구절은 인류 구원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위대한 선언이다.
그는 그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진실되다고 받아들였을 뿐인데,
하나님은 그 믿음 하나를 보시고 그를 '옳다'고 인정해주셨다.
제8장: 연기 나는 화로와 타는 횃불
자손에 대한 약속은 이제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아브람의 마음속에는 또 다른 의심이 고개를 들었다.
바로 '땅'에 대한 문제였다.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그는 지금 나그네 신세였고, 자신 소유의 땅은 한 뼘도 없었다.
하나님은 그의 연약한 믿음을 꾸짖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의 눈높이로 내려와,
당시 사람들이 가장 엄숙하게 여기던 방식으로 언약을 맺어주시기로 하셨다.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아브람은 짐승들을 가져와
그 몸을 반으로 쪼개어 마주 보게 놓았다.
이것은 목숨을 건 언약 방식이었다.
언약을 맺는 두 당사자가 쪼갠 고기 사이를 함께 지나가며, 약
속을 어길 시에는 이 짐승처럼 죽임을 당할 것을 서약하는 의식이었다.
해가 질 무렵, 아브람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고,
칠흑 같은 어둠과 함께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이 그를 덮쳤다.
마침내 해가 져서 완전히 어두워졌을 때,
경이로운 광경이 펼쳐졌다.
연기 나는 화로와 타는 횃불,
즉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불꽃이,
아브람은 그대로 둔 채, 홀로 그 죽음의 길을 지나가셨다.
이것은 이 언약이 쌍방 계약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홀로 책임지시는 일방적인 은혜의 언약이라는 의미였다.
만약 이 약속이 깨어진다면,
그 저주를 받아 쪼개지는 것은 아브람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될 것이라는,
자기 목숨을 건 하나님의 보증이었다.
제9장: 위험한 계산, 조급한 영성
하나님의 약속은 확고했다.
그러나 현실의 시간은 더디게만 흘러갔다.
기다림에 지친 것은 아브람만이 아니었다.
아내 사래의 고통은 더욱 깊었다.
그녀의 마음은 타들어 갔다.
그녀는 더 이상 하나님만 바라보고 앉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궁리 끝에 사래는 기막힌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녀에게는 하갈이라는 이름의 이집트인 여종이 있었다.
"여호와께서 나의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소서.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나이다.“
사래의 제안은 당시 사회적 관습으로는 용인되는 방법이었다.
이것이 바로 '위험한 계산'이었다.
그녀는 인간적인 계산을 하느라 하나님을 빼놓았다.
아브람은 아내의 말을 들었다.
그 역시 초조했을 것이고,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 아내의 고통을 외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영적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아내의 경건하지 못한 제안을 수용하고 말았다.
계획대로 하갈은 임신했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린 것은 축복이 아니라 거대한 역풍뿐이었다.
하갈은 자신이 임신한 것을 알자,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주인 사래를 멸시하기 시작했다.
질투와 분노에 휩싸인 사래는 남편 아브람에게 책임을 돌렸고,
가정은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했다.
아브람은 두 여자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결국
"당신 여종이니 당신 마음대로 하시오"라며 책임을 포기해버렸다.
남편의 허락을 받은 사래는 하갈을 혹독하게 학대했고,
견디다 못한 하갈은 결국 광야로 도망치고 말았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한 조급한 영성,
하나님의 방법을 신뢰하지 않은 위험한 계산은 결국 모든 관계를 파괴하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태어난 이스마엘의 후손과 이삭의 후손은
오늘날까지도 끊임없는 갈등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아브람과 사래의 조급한 선택이 남긴 상처는 이토록 깊고 길었다.
에필로그: 여전히 길 위에 서 있는 당신에게
아브람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또다시 넘어지고 실수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일어설 것이고,
마침내 하나님의 약속이 그의 삶 속에서 경
이롭게 이루어지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의 여정을 통해 흠 없는 믿음의 영웅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이 연약하고 실수투성이인 한 인간을 보았다.
그러나 동시에, 그 모든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의 실패마저도 선으로 바꾸어
당신의 위대한 계획을 이루어 가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만났다.
아브람의 이야기는 결국 하나님의 이야기다.
지금 당신은 어떤 길 위에 서 있는가?
어쩌면 낯선 부르심 앞에 망설이거나,
인생의 기근 앞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을지도 모른다.
기다림에 지쳐 위험한 계산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괜찮다. 믿음의 조상 아브람도 바로 그 길을 걸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의 시선을 당신의 연약함이 아니라,
약속을 주신 하나님께 고정하는 것이다.
그분의 약속은 십자가의 피로 보증된, 결코 변하지 않는 진리다.
자, 이제 다시 당신의 길을 걸으라.
아브람처럼, 믿음으로. 약속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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