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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시드니 이민의 광야에서 내 부끄러움을 씻으시는 하나님
[OCJ 매일 묵상]

찬송 :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429장(통489)
본문 : 창세기 30장 22~24절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니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낯선 호주 땅, 시드니에 정착해 이민자의 삶을 살아가다 보면 문득 한없이 작아지고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언어의 장벽 앞에서 쩔쩔맬 때, 영주권이나 비자 문제로 앞길이 막막할 때, 혹은 남들보다 정착이 늦어지는 것 같아 조급해질 때 우리는 남몰래 창피함과 수치심을 경험하곤 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라헬의 이야기를 통해, 이민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부끄러움을 씻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야곱의 두 아내 레아와 라헬은 자매지간이었습니다. 외모가 아리따웠던 라헬은 남편 야곱의 사랑을 듬뿍 받았지만 자식이 없었고, 반대로 언니 레아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대신 하나님께서 그의 태를 열어 여러 자녀를 주셨습니다. 두 자매는 각자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바라보며, 마치 낯선 땅에서 생존 경쟁을 하듯 치열하고 처절한 자식 낳기 경쟁을 벌입니다.
오랜 기다림과 갈등 끝에, 마침내 하나님께서 라헬을 생각하시고 그의 태를 열어 아들 요셉을 허락하십니다. 이때 라헬은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라헬이 겪었던 부끄러움, 그리고 오늘날 시드니를 살아가는 우리가 겪는 부끄러움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첫째, 남과 비교하며 만족하지 못했던 부끄러움입니다. 라헬은 남편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음에도, 언니가 가진 자식들을 보며 갈등하고 분노했습니다. 시드니 한인 사회에서도 이런 모습은 자주 나타납니다. 호주라는 아름답고 안전한 환경 속에서 가족이 함께 건강하게 지내는 은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번듯한 집, 더 빠르고 안정적인 비자 취득, 성공한 비즈니스를 바라보며 끊임없이 자신과 비교합니다. 내게 주신 수많은 은혜는 잊은 채, 내게 부족한 단 한 가지에 초점을 맞추어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부끄러운 모습이 우리 안에도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보다 사람의 방법을 의지했던 부끄러움입니다. 자식 낳기 경쟁 속에서 두 자매는 하나님께 무릎 꿇고 기도하기보다, 자신의 여종들을 남편에게 들여보내는 인간적인 잔꾀와 방법을 동원합니다. 그 결과 가정 안에는 깊은 상처와 갈등만 남았습니다. 이민 생활은 참으로 치열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기도하기보다 나의 인맥, 나의 경험, 혹은 세상의 얄팍한 방법으로 당면한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려 들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닫힌 문을 여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결국 모든 문제의 해결은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창 30:22)"라는 말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람의 방법이 끝난 곳에서 하나님이 일하셨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의 수고와 눈물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시드니에 심겨진 우리 가정과 일터를 기억하고 계십니다. 없는 것, 부족한 것에 집중하여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를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람의 잔꾀를 내려놓고 우리 삶의 부끄러움을 씻으시며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만을 온전히 의지하는 믿음의 식구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낯선 호주 땅에서 남과 비교하며 스스로 작아졌던 우리의 부끄러움과, 기도보다 내 힘을 앞세웠던 교만함을 회개합니다. 광야 같은 이민 생활 속에서도 늘 우리를 생각하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며, 이미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복된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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