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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거리의 성자, 거지의 친구 방애인: 사랑과 희생으로 피어난 조선의 백합화
한국교회의 척박했던 초기 역사를 돌아보면, 짙은 어둠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찬란하게 발했던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있습니다. 성경환 목사가 정리한 '한국교회 자랑스런 신앙의 인물 발자취 30인'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방애인 선생은 그중에서도 유독 눈물겹고 아름다운 향기를 품은 인물입니다.

1909년 황해도 황주의 독실한 기독교 가문에서 태어난 그녀는 일제강점기라는 민족의 고난 속에서 짧지만 누구보다 강렬하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남부럽지 않은 환경에서 자라며 개성 호수돈여고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엘리트 신여성이었지만, 그녀가 택한 길은 화려한 성공이나 안락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전주 기전여학교의 교사로 부임하여 학생들을 가르치던 그녀는 어느 날 깊은 영적 갈급함 끝에 1930년 1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강력한 종교적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후 방애인은 세상의 기준을 모두 내려놓고 가장 낮고 소외된 자들을 향해 걸어 들어갔습니다. 오늘날 오세아니아와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크리스천들에게, 거지의 친구이자 거리의 성자로 불린 방애인의 삶은 진정한 복음의 능력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묻게 합니다.
방애인의 삶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예수님의 성육신적 사랑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었습니다. 영적 각성을 경험한 그녀는 철저하게 변화되었습니다. 전주로 돌아간 그녀는 학생들과 함께 기전신성회를 조직하여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했고, 방과 후에는 전도대를 꾸려 전주 시내 곳곳을 누볐습니다.
그녀의 시선이 머문 곳은 화려한 거리가 아니라 차가운 다리 밑과 냄새나는 빈민가였습니다. 방애인은 거리에 버려진 고아들을 자신의 등에 업고 숙소로 데려와 직접 씻기고 입혔습니다. 특히 당시 사람들이 전염을 두려워하며 철저히 기피했던 한센병 환자들을 찾아가, 고름이 흐르는 그들의 상처 난 손을 맨손으로 부여잡고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하루 한 끼를 금식하며 모은 돈으로 가난한 자들을 구제했고, 자신은 단벌옷으로 겨울을 나며 헐벗은 이웃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었습니다. 그녀는 진정 불한당을 만난 자들의 선한 사마리아인이었으며, 사람들은 그 헌신적인 모습을 보며 그녀를 가리켜 조선의 성자, 눈물의 성자라고 불렀습니다.
방애인의 헌신은 단순한 개인의 구제 활동에 머물지 않고 사회와 교회를 변화시키는 강력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거리에 방치된 아이들을 체계적으로 돕기 위해, 그녀는 1931년 전주 서문교회 배은희 목사와 성도들, 뜻을 함께하는 청년들과 동역하여 전주 지역 최초의 고아원인 전주고아원을 설립했습니다. 집집마다 방문하며 모금 운동을 펼쳤고, 윤락가 인근의 집을 매입해 고아들의 따뜻한 보금자리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이러한 그녀의 희생적인 사회사업은 일제강점기 억눌린 조선 민중들에게 기독교가 전하는 참된 위로와 희망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고아와 병자들을 돌보다 과로와 쇠약함 속에 장질부사에 걸려 1933년, 24세라는 꽃다운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전주 시민들은 도시 역사상 초유의 여성장으로 그녀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며 오열했습니다. 이듬해 출간된 배은희 목사의 '방애인 소전'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읽히며 한국교회 안에 회개와 나눔의 운동을 촉발하는 엄청난 영적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최근 전주시는 그녀가 세운 고아원 터를 미래유산으로 지정하며 그녀가 남긴 숭고한 사회적 가치를 기리고 있습니다.
방애인 선생의 삶은 현대 교회를 향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야고보서의 진리를 뼈저리게 일깨워 줍니다.
첫째, 진정한 신앙은 머리가 아닌 손과 발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말로만 사랑을 외치고 주님의 영광만을 구하기 쉬운 오늘날, 그녀는 자신의 안위를 버리고 냄새나는 환자와 걸인들을 직접 품에 안았습니다.
둘째, 그리스도인의 특권은 십자가를 지는 데 있습니다.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은 엘리트 여성으로서 누릴 수 있었던 모든 세속적 기득권을 기꺼이 포기하고 가장 낮은 자들의 친구가 된 그녀의 선택은 현대 성도들의 기복주의적 신앙을 깊이 반성하게 합니다.
오세아니아 크리스천 저널을 읽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머무는 지역 사회 곳곳에도 영적, 육적으로 굶주리고 소외된 현대판 걸인과 고아들이 존재합니다. 방애인이 보여준 눈물의 기도와 희생의 실천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요 향기가 되어야 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영적 나침반입니다.
24년이라는 매우 짧은 생애였지만, 방애인 선생이 남긴 사랑의 발자취는 1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한국교회와 세계 그리스도인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빛으로 남아 있습니다. 거지의 친구이자 거리의 성자였던 그녀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만난 영혼이 얼마나 위대하고 아름다운 헌신의 꽃을 피울 수 있는지를 확증합니다.
세상은 그녀를 일찍 시든 꽃이라 불렀을지 모르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영원히 시들지 않는 생명의 백합화로 기억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방애인의 그 눈물과 헌신을 본받아 각자가 서 있는 삶의 자리에서 작은 성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태복음 25장 4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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