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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신학의 주춧돌이자 일사각오의 순교자 신학자 남궁혁 목사 이야기

OCJ 2026. 10. 10. 03:03

현대 기독교인들은 종종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신앙의 자유와 풍성한 신학적 유산이 누구의 눈물과 피 위에 세워졌는지 잊고 살아갑니다. 오세아니아와 한국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에게,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가장 어둡고 격동적인 시대 속에서 복음의 진리를 사수했던 한 인물의 삶은 깊은 울림을 줍니다. 그는 바로 한국인 최초의 신학박사이자 평양장로회신학교의 첫 한국인 교수였던 남궁혁 목사입니다.

 

 

1882년 서울의 명문 양반가에서 태어난 그는 평양감사를 지낸 외조부 밑에서 남부러울 것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배재학당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목포 세관 등에서 고위직으로 일하며 세상적인 성공 가도를 달리던 유망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복음을 만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을 때, 그의 삶은 완전히 다른 방향을 향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를 내려놓고 십자가의 길을 선택한 남궁혁 목사는 훗날 한국 신학의 초석을 다지고 순교의 제물로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게 됩니다.

남궁혁 목사의 신앙 여정은 마치 세관에 앉아 있다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모든 것을 버려둔 채 따랐던 세리 마태의 삶을 연상케 합니다.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유진 벨에게 세례를 받은 그는 안정적인 세관원 자리를 내려놓고 광주로 이주하여 숭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며 신앙 훈련을 받았습니다. 광주 양림교회에서 장로로 헌신하던 중, 하나님의 강권적인 부르심을 깨닫고 평양장로회신학교에 입학하여 목회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졸업 후 양림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하던 그는 선교사들의 권면에 따라 미국 유학길에 올라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리치먼드 유니온 신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귀국 후 그는 평양신학교의 성서학 교수로 취임하여 성경 번역과 주석 집필에 매진했습니다. 그의 삶은 철저히 성경적 가치관에 뿌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특히 바울 신학에 깊이 천착했던 그는 로마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가르치며, 신학이 단지 학문적 유희에 머물지 않고 성도들의 실제적인 삶의 변화로 이어져야 함을 역설했습니다.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가 극에 달했을 때, 그는 타협을 거부하고 온몸으로 맞섰습니다. 1938년 신사참배 반대로 신학교가 폐교되자 그는 기득권을 버리고 상하이로 망명하여 거류민단장으로서 디아스포라 동포들을 돌보는 험난한 삶을 살았습니다. 해방 후 조국으로 돌아와 수고하던 그는 1950년 6.25 전쟁 당시 북한군에게 납북되었습니다,. 공산당은 그에게 공산주의 선전에 협조할 것을 강요했지만, 그는 이를 끝까지 거부하며 모진 고초를 겪고 장엄한 순교의 길을 걸었습니다,.

남궁혁 목사가 남긴 족적은 한국 교회와 사회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첫째로, 그는 한국 신학의 뼈대를 세운 학자였습니다. 종교 잡지 신학지남의 편집장으로 활동하며 서구의 신학을 한국적 상황에 맞게 번역하고 소개했을 뿐만 아니라, 최초의 로마서 강해를 비롯한 바울 서신 주석을 집필하여 초기 한국 교회가 건강한 복음주의 신학 위에 서도록 이끌었습니다,. 둘째로, 그는 교파와 이념을 초월하여 후학을 양성한 영적 아버지였습니다.

 

그는 명문가 출신의 넉넉한 인품으로 자신의 사재를 털어 박형룡, 김재준 등 훗날 한국 신학계를 이끌어갈 젊은 학자들의 유학과 생계를 지원했습니다,. 셋째로, 그는 교회의 연합과 민족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은 실천적 지도자였습니다. 1932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제21회 총회장으로 선출되어 교회를 든든히 세웠으며, 일제 치하에서 쫓기던 독립운동가 이승만을 자신의 집에 숨겨주고 해외로 망명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해방 후에는 미군정하에서 적산관리처장 및 재무부 세관국장 등을 역임하며 국가 재건에 힘썼고, 한국교회협의회 총무로 섬기며 무너진 교회의 기틀을 다시 세우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남궁혁 목사의 삶은 오늘날 오세아니아와 전 세계에서 살아가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세 가지 중요한 영적 교훈을 던져줍니다.

 

첫째, 어떠한 상황에서도 타협하지 않는 절대적인 신앙입니다. 그는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와 공산당의 회유 앞에서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주님이심을 고백하며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물질주의와 세속적 가치관이 범람하는 오늘날, 우리는 세상의 우상 앞에 무릎 꿇지 않는 거룩한 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둘째, 지성과 영성의 완벽한 조화입니다. 그는 최고의 학문을 수료한 지식인이었지만, 교만하지 않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자신의 지식을 온전히 사용했습니다,. 우리의 배움과 은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을 때 진정한 가치가 있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셋째, 자신을 비워 남을 세우는 십자가의 사랑과 섬김입니다. 기득권을 고집하지 않고 후배들을 위해 기꺼이 디딤돌이 되어준 그의 희생정신은, 분열과 이기주의에 빠져 있는 현대 사회 속에서 진정한 크리스천 리더십이 무엇인지 명확히 보여줍니다.

세관의 높은 자리에 머물며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었던 한 청년이, 십자가의 복음을 만나 한국 교회의 가장 든든한 신학적 기초가 되었고 마침내 순교의 피를 흘렸습니다. 남궁혁 목사의 이야기는 과거의 낡은 역사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믿음의 경주를 완주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살아있는 나침반입니다,. 그의 일사각오 신앙과 교회를 향한 불타는 사랑이,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오세아니아와 한국의 크리스천들의 가슴 속에 거룩한 불꽃으로 다시 타오르기를 소망합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마태복음 5장 10절에서 1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