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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으로 얻은 참된 자유, 가장 낮은 곳으로 향한 성자: 오방 최흥종 목사의 생애와 영성

OCJ 2026. 10. 6. 02:52

"사망통지서. 1935년 3월 17일 이후, 나 오방 최흥종은 죽은 사람임을 알리는 바입니다. 인간 최흥종은 이미 죽은 사람이므로 차후에 거리에서 나를 만나거든 아는 체를 말아 주시기 바라오."

 


스스로 자신의 사망통지서를 돌리고 세상의 모든 욕망과 지위로부터 죽음을 선언한 이가 있습니다.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민주와 인권, 연대의 가치를 몸소 실천하며 '한센인과 걸인들의 아버지'라 불렸던 오방 최흥종 목사(1880~1966)입니다. 광주 출신 최초의 장로이자 목사였던 그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민족의 가장 어두운 격변기 속에서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독립운동과 빈민 구제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오늘날 호주와 오세아니아를 비롯해 전 세계에 흩어져 살아가는 한인 디아스포라 성도들과 현대 교회가 세속주의와 진영 논리로 길을 잃어가고 있는 이때, 철저한 자기 비움과 이웃 사랑을 실천한 최흥종 목사의 삶은 우리가 회복해야 할 진정한 십자가의 복음이 무엇인지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최흥종의 청년 시절 별명은 '최망치'였습니다. 광주 저잣거리에서 주먹을 휘두르며 거칠게 살았던 그는 1904년 유진 벨 선교사 등 서양 선교사들을 만나면서 삶의 극적인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특히 포사이트 의료 선교사가 길가에 쓰러져 죽어가는 여성 한센병 환자를 자신의 말에 태우고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모습은 청년 최흥종에게 커다란 영적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회심한 그는 사도 바울처럼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광주 지역 최초의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신앙적 행적 중 가장 경이로운 사건은 1935년에 스스로 선포한 '오방(五放)'의 삶입니다. 오방이란 집안의 일, 사회적 체면, 경제적 이익, 정치적 활동, 종파적 활동 등 다섯 가지 세속적 얽힘을 모두 놓아버린다는 뜻입니다.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일제의 억압에 항거하여 정관수술을 단행하며 육체적, 세속적 욕망의 단절을 선언한 그는 무등산 증심사 계곡과 빈민촌으로 들어가 한센인, 걸인, 결핵 환자들과 전적으로 동고동락하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의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신 성육신의 신앙을 자신의 삶에 그대로 재현해 낸 것입니다.

최흥종 목사의 신앙은 단지 개인적인 영성이나 종교적 테두리 안에 머물지 않고 척박한 사회를 변화시키는 거대한 실천적 영향력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는 자신의 땅 1천 평을 기증하여 윌슨 선교사와 함께 광주 봉선리에 나병원을 설립하였고, 이는 훗날 애양원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또한 1955년에는 부랑하던 음성 한센인들을 위한 정착촌 '호혜원'을, 1958년과 1962년에는 무의탁 결핵 환자들을 위한 '송등원'과 '무등원'을 잇달아 세우며 평생을 질병과 가난으로 소외된 자들의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사회와 교육, 민족운동의 영역에서도 그의 발자취는 뚜렷합니다. 1919년 3.1 만세운동을 주도하여 1년 4개월간 투옥되었고, 1920년 광주YMCA 창립을 주도하였으며, 신간회 전남지회장을 역임하며 민족 독립에 앞장섰습니다. 해방 후에는 한국화의 거장 의재 허백련과 함께 무등산에 '삼애(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나라 사랑)학원'을 설립해 농촌 지도자를 양성했습니다. 1966년 그가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장례식은 전라남도 최초의 사회장으로 치러졌으며 수만 명의 걸인과 한센인들이 몰려와 "아버지, 어찌하여 우리만 남겨두고 가십니까"라며 통곡했던 일화는 그가 사회에 남긴 사랑의 깊이가 어떠했는지를 여실히 증명합니다.

오방 최흥종 목사의 생애는 오늘날 오세아니아와 전 세계의 한인 성도들에게 세 가지 깊은 영적 교훈을 남깁니다.


첫째, 참된 자유는 '비움'에서 시작된다는 역설입니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더 높은 곳에 오르려 애쓰지만, 최흥종 목사는 쥐고 있던 다섯 가지 권리를 자발적으로 포기함으로써 비로소 하나님 안에서 완전한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나의 욕망을 버릴 때 생명으로 채워진다는 진리를 보여줍니다.


둘째,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가장 낮은 곳을 향한 연대'입니다. 그는 말로만 이웃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망통지서를 돌린 후 다리 밑 빈민촌으로 들어가 그들과 살을 부대끼며 살았습니다.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신뢰를 잃어가는 오늘날, 성도들이 향해야 할 자리는 화려한 단상이 아니라 소외되고 상처받은 이웃의 곁임을 일깨워줍니다.


셋째, 절대적인 기도와 실천의 일치입니다. 최흥종 목사는 1922년 발표한 글에서 기도는 하나님과 맺는 가장 끈끈한 부자 관계이며, 어떠한 차별도 없는 공평무사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의 헌신적인 사회적 실천은 모두 이 깊은 기도의 자리에서 흘러나온 열매였습니다.

"진영이라는 담장 속에 서로를 가두고 갈등과 분열, 독선의 그늘이 짙은 사랑을 잃어가는 시대"라는 한 지식인의 탄식처럼, 오늘날 우리는 많은 것을 누리면서도 영적인 기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세상의 영광을 초개처럼 버리고, 가장 소외된 이웃의 아버지가 되어 영원한 자유를 누렸던 오방 최흥종 목사의 이야기는 메마른 대지를 적시는 생수와도 같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세상을 품었던 그의 숭고한 '오방' 정신이 오세아니아를 넘어 전 세계 성도들의 가슴 속에 다시 한번 뜨겁게 타오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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