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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예수로 가득 찬 생애, 하늘의 전보를 받다 최봉석(권능) 목사 이야기
오세아니아 크리스천 저널의 독자 여러분, 한국 교회사에는 수많은 신앙의 거장들이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원초적이고 강력한 복음의 열정을 보여준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최봉석 목사를 들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최권능 목사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그는 한국 초기 기독교 역사와 일제강점기의 암흑기 속에서 타협 없는 신앙의 절개를 지킨 순교자입니다.

1869년 평양에서 태어난 그는 본래 기독교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습니다. 한학을 공부하고 평양 감영에서 관리로 일하던 그는 국고금을 횡령한 사건으로 인해 평안북도 삭주로 유배를 떠나게 됩니다. 세상의 관점에서는 실패하고 버림받은 인생이었지만, 하나님은 그 유배지를 은혜의 자리로 바꾸셨습니다. 1902년 삭주에서 기독교인 백유계의 전도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된 그는, 1903년 감리교 선교사 노블에게 세례를 받으며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났습니다.
세속적인 관리에서 복음의 전도자로 변화된 그의 회심은 한 개인의 변화를 넘어 훗날 한국 교회 전체를 일깨우는 거대한 영적 파도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1913년 평양 장로회 신학교를 졸업한 후, 그는 안락한 삶을 거부하고 척박한 지역을 누비며 일생을 복음 전파에 헌신했습니다.
최봉석 목사의 삶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오직 예수로 충만한 생애였습니다. 그의 전도 방식은 단순하지만 강력했습니다. 만나는 모든 사람을 향해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쳤던 그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의 메시지에는 놀라운 기적과 성령의 능력이 동반되었기에 사람들은 그를 최권능이라는 별명으로 불렀습니다. 그는 만주 벌판의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며 70여 개의 교회를 세우는 등 성경이 말하는 십자가의 길을 몸소 실천했습니다.
그의 신앙적 행적 중 가장 빛나는 순간은 일제의 모진 핍박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았던 신사참배 반대 투쟁입니다. 1938년 장로교 총회가 신사참배를 가결하는 치욕적인 역사의 현장에서, 그는 태양신은 하나님의 원수요 신사참배를 결의한 총회는 사탄의 총회라고 외치며 맞섰습니다. 이로 인해 평양형무소에 수감된 그는 70세가 넘은 노구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고문을 견뎌야 했습니다. 일본 순사가 고문하며 매를 때릴 때마다 그의 입에서는 예수 천당이라는 외침이 터져 나왔습니다. 왜 맞으면서도 그 소리만 하느냐는 일본 경찰의 조롱에 그는 내 속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예수로 가득 차 있어서 건드리기만 하면 예수가 튀어나온다고 대답했습니다. 1944년 순교를 예감한 그는 40일 금식 기도를 단행했고, 장기려 박사의 진료를 받던 중 하늘나라에서 전보가 왔구나 나를 오라고라는 승리의 고백을 남기고 찬송을 부르며 주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최봉석 목사는 당대의 탁월한 학자는 아니었지만, 그의 삶이 미친 실제적인 영향력은 실로 거대했습니다.
첫째, 그는 만주와 북한 지역의 복음화에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그가 만주 벌판의 암흑 땅에 세운 70여 개의 교회와 복음을 들은 영혼들은 민족의 든든한 영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둘째, 그의 타협 없는 순교 신앙은 주기철 목사, 손양원 목사 등 당대와 후대의 신앙 지도자들에게 강력한 도전을 주었습니다. 일제의 강압 앞에 한국 교회가 제도적으로 무너져 내릴 때, 최봉석 목사와 같이 감옥에서 끝까지 믿음의 절개를 지킨 출옥 성도들과 순교자들의 피는 해방 이후 한국 교회가 영적으로 재건될 수 있는 정결한 씨앗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누리는 영적 부흥의 열매는 바로 그가 뿌린 순교의 피와 눈물의 기도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그의 단순하고도 명확한 복음 선포는 오늘날까지도 복음의 본질이 무엇인지 가르쳐주는 살아있는 교과서로 남아 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오세아니아와 전 세계의 한인 성도들에게 최봉석 목사의 생애는 매우 날카롭고도 실제적인 교훈을 던져줍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내 안에는 무엇이 가득 차 있는가? 고난과 위기가 우리를 짓누르고 흔들 때, 우리 속에서 튀어나오는 것은 원망과 두려움입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입니까? 최봉석 목사처럼 내면이 복음으로 완전히 장악된 성도만이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또한, 현대 사회의 우상숭배에 대한 경각심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눈에 보이는 신사참배의 강요는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물질만능주의, 세속화, 타협주의라는 현대판 우상들이 끊임없이 신앙의 변질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압박 속에서도 진리를 위해 기꺼이 좁은 길을 걷는 영적 결단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영원의 관점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늘의 전보를 기쁨으로 맞이했던 그의 죽음은, 우리의 진짜 본향이 하늘에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이 땅의 안락함에 안주하지 않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는 순례자의 영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최봉석 목사는 체구는 작았을지 모르나, 그가 품은 예수 그리스도의 크기는 온 세상을 덮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로 살고 예수로 죽었던 그의 생애는 십자가의 복음이 얼마나 위대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증명하는 역사적 증거입니다. 오세아니아 크리스천 저널의 독자 여러분, 오늘 하루 우리의 입술과 삶을 통해 예수가 튀어나오는 기적을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타협의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영원한 하늘의 전보를 기대하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거룩한 성도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행전 20장 2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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