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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평화를 향한 위태로운 창(窓),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간구
[OCJ 논설] 주요 이슈: 2026년 8월 23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향후 G20 정상회의부터 2027년 여름까지를 종전을 위한 '평화 협상의 적극적 기회의 창'으로 공식 규정하며 외교적 타결 가능성을 시사한 지정학적 최신 뉴스

2026년 8월 23일, 기나긴 소모전으로 치달아온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중대한 외교적 변곡점이 제시되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다가오는 G20 정상회의부터 2027년 여름까지의 기간을 종전을 위한 '적극적인 평화 협상의 창(window of opportunity)'으로 규정했다. 수많은 희생을 치른 끝에 비로소 총구를 내리고 대화의 테이블을 준비하려는 이 조심스러운 행보는, 전 세계에 짙게 드리워진 전쟁의 피로감 속에서 한 줄기 희망의 빛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우리가 목도하는 국제사회의 현실은 냉혹하다. 한쪽에서는 평화의 창을 열려 애쓰지만, 같은 날 중동 등지에서는 여전히 군사적 교리를 공격적으로 전환하며 지정학적 긴장의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이것이 2026년 오늘날 인류가 처한 적나라한 현주소다.
우크라이나가 제시한 '평화의 창' 역시 온전한 화해라기보다는, 거시적인 정치적 일정과 강대국들 간의 이해타산이 맞물린 철저한 지정학적 계산의 결과물에 가깝다. 세상이 말하는 평화란 흔히 힘의 균형이 만들어낸 '일시적인 전투의 중단'에 불과하다. 이권이 충돌하면 언제든 다시 깨어질 수 있는 위태로운 유리창과 같다.
이 지점에서 교회는 세상의 평화와 그리스도의 평화(Shalom)가 어떻게 다른지 깊이 성찰해야 한다. 성경이 말하는 샬롬은 단순히 총성이 멎은 상태를 넘어, 무너진 관계가 회복되고 정의가 온전히 서는 상태를 의미한다. 진정한 평화는 무기를 내려놓는 것을 넘어 마음속의 적의마저 불태울 때 비로소 완성된다.
그리스도인은 이 위태로운 평화의 창이 닫히기 전에, 얄팍한 정치적 타협을 넘어선 진정한 회복이 일어날 수 있도록 깨어 기도해야 한다.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는 참극이 하루빨리 멈추기를 간구하는 동시에, 각국의 지도자들이 이기적인 권력욕을 내려놓고 생명의 존엄을 최우선으로 삼도록 중보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우리의 기도는 국경을 넘어야 한다. 전쟁의 상흔으로 고통받는 모든 이들이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한 영혼들이다. 세상은 언제나 이익을 따라 평화와 전쟁을 저울질하지만, 교회는 십자가의 피로 이룬 화목의 복음을 들고 묵묵히 평화의 중재자로 서야 한다. 다가오는 시간, 인류가 조심스럽게 열어젖히려는 저 불안한 평화의 창문 너머로, 하나님의 크고 완전한 샬롬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가 땅 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시는도다 - 시편 46:9
#평화협상 #우크라이나 #지정학적위기 #기독교평화주의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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