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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치유자들의 공동체를 향하여: 트라우마에 민감한 교회를 그리는 심리·신학적 성찰

OCJ 2026. 8. 23. 06:12

우리는 왜 교회에서 상처받는가/스캇 맥나이트, 에이드 리엔 깁슨 지음, 정성묵 옮김/두란노 

 


이 책은 현대 교회 안에서 발생하는 상처와 갈등을 '종교적 트라우마'의 관점으로 재해석한 역작이다. 사도 바울의 연약함을 새롭게 조명하며, 트라우마를 인지하고 보듬어안는 진정한 치유 공동체로 나아가는 길을 제시한다.

이 책은 신경생물학적 트라우마 반응(투쟁, 도피, 얼어붙음, 영합)을 기반으로 교회 안팎에서 일어나는 상처의 실체를 파헤친다. 특별히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비난과 오해 속에서 심각한 정서적 고통을 겪었던 사도 바울의 사례를 중심에 둔다. 저자들은 고린도후서에 나타난 바울의 파편화된 문장과 방어적 태도를 '영웅적 사도'의 위풍당당함이 아닌, 깊은 상처를 입은 한 인간의 '트라우마 반응'으로 짚어낸다. 이를 통해 오늘날 교회 내에서 발생하는 권위 남용과 배제, 정서적 폭력이 신앙의 이름으로 어떻게 정당화되고 있는지 폭로하며, 상실과 상처를 직면함으로써 신뢰와 안전을 회복하는 '트라우마에 민감한 교회(Trauma-Informed Church)'를 세워가는 실천적 과정을 그려낸다.

[종교적 트라우마: 영적 포장지 아래 숨겨진 폭력을 직면하다]


현대 교회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갈등과 상처들은 종종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거나 은폐된다. 스캇 맥나이트와 에이드리엔 깁슨은 이 책을 통해 교회가 흔히 사용하는 권위적 언어와 배제의 문화가 어떻게 성도들의 신경계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는 '종교적 트라우마'로 작용하는지 면밀히 분석한다. 영적 돌봄을 표방하는 공간에서 역설적으로 발생하는 정서적 학대와 조종은 피해자들의 신앙 자체를 뿌리째 해체시킬 만큼 파괴적이다. 

 

저자들은 트라우마가 단순히 시간이 지나면 잊을 수 있는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생존 반응(투쟁, 도피, 얼어붙음, 영합)으로 각인되어 현재의 삶을 옭아맨다는 점을 심리학적으로 명확히 규명한다. 나아가 이러한 상처의 발현을 '마귀의 틈탐'이나 '기도 부족'으로 치부해 온 교회의 폭력적이고 환원주의적인 해석 틀을 강력히 비판한다. 특히, 가정 학대 생존자에게 '아버지 하나님'이라는 호칭이 얼마나 큰 고통의 방아쇠(트리거)를 당길 수 있는지에 대한 섬세한 지적은, 교회의 언어와 문화가 얼마나 세밀하게 트라우마 피해자들의 맥락을 살피고 배려해야 하는지를 뼈아프게 짚어낸다. 이러한 심층적 분석은 교회가 복음의 본질적인 환대를 잃어버리고 자기 방어적인 조직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처절한 회개와 자기 성찰의 지점을 명확히 제시한다.

[사도 바울의 재발견: 완벽한 영웅에서 상처받은 인간으로]


기존의 기독교 역사와 신학적 강단에서 사도 바울은 어떤 핍박과 환난에도 흔들리지 않는 초인적인 신앙의 거장, 곧 완벽한 영웅으로 주로 묘사되어 왔다. 그러나 저자들은 고린도후서의 텍스트 이면에 감춰진 바울의 신경생물학적 상태, 즉 그의 짙은 트라우마 반응에 주목하는 파격적이고도 신선한 해석을 시도한다. 바울이 보여주는 불완전한 문장 구조, 급격한 화제 전환, 그리고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쏟아내는 다소 방어적이고 감정적인 대응들은 그가 고린도 교인들의 끊임없는 오해와 비난 속에서 극심한 정서적 '과각성(Hyperarousal)' 상태에 빠져 있었음을 생생하게 시사한다. 

 

이는 목회자나 영적 지도자 역시 상처받고 무너질 수 있는 지극히 연약한 한 명의 인간임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러한 신학적 패러다임 전환은 오늘날 목회 현장에서 심각한 번아웃과 성도들의 날 선 비난에 시달리며 남몰래 눈물 흘리는 수많은 사역자들에게 깊은 위안과 해방감을 안겨준다. 우리는 영적 지도자에게 초인적인 완벽함을 요구하는 우상숭배적 기대를 철저히 내려놓아야만 한다. 바울이 자신의 약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십자가의 고난과 함께 자랑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 고백했듯, 이 책은 지도자의 연약함을 온전히 인정하고 포용하는 새로운 형태의 목회적 리더십을 요청한다. 이는 곧 '플랫폼 중심'이나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맹신하는 현대 교회의 사역 방식이 얼마나 복음의 십자가 정신과 동떨어져 있는지를 깊이 반성하게 만든다.

[트라우마에 민감한 교회(Trauma-Informed Church)를 향한 여정]


공동체 내의 상처를 인지하고 직면하는 것만으로는 온전한 회복에 이를 수 없다. 이 책은 파괴된 신뢰를 회복하고 안전한 치유의 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방법론으로서 '트라우마에 민감한 교회(Trauma-Informed Church)'를 세우는 6가지 기둥을 비중 있게 제안한다. 첫째로, 목회자를 비롯한 지도자 자신이 내면에 감춰진 미해결된 상처와 트라우마를 겸허히 돌아보고 치유하는 과정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내면이 건강하지 못한 리더십은 필연적으로 공동체를 병들게 하며, 자신의 불안과 상처를 투사하여 성도들에게 무의식적인 영적 폭력을 가할 위험이 대단히 높기 때문이다. 둘째로, 교회의 문화가 수직적인 통제나 정죄가 아닌, 자율권과 수평적 협력에 확고한 기반을 두어야 함을 강조한다. 갈등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건강한 정서적 경계선을 설정하며, 물리적·영적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문화의 조성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이 책이 현대 크리스천들에게 던지는 묵직한 도전은, 교회가 영적인 성취나 외형적 성장에 몰두하기 이전에 '우리가 현재 과연 서로에게 안전하고 무해한 공동체인가'를 먼저 뼈저리게 자문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약자와 상처받은 자가 안심하고 숨 쉴 수 없는 공간에는 성령의 임재와 참된 치유를 기대할 수 없다. 결국 트라우마에 민감한 교회란, 십자가 위에서 온갖 멸시와 상처를 묵휼히 감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서로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며 연대하는 진정한 샬롬의 생명 공동체를 의미한다.

교회는 오랫동안 갈등과 아픔을 '영적 전쟁'이나 '믿음 부족'이라는 손쉬운 언어로 환원해왔다. 이 책은 그러한 영적 환원주의가 성도와 목회자를 어떻게 '재트라우마' 상태로 몰아넣는지 경고한다. 십자가의 복음은 우리의 상처를 숨기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약함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하는 데 있다. 바울의 연약함을 치부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무는 자리로 해석하는 저자들의 통찰은 현대 크리스천들에게 깊은 위로를 준다. 진정한 영적 성장은 카리스마적인 리더십이나 완벽함의 추구가 아닌, 서로의 상처를 안전하게 내어놓고 안아주는 연약함의 연대에서 비롯된다. 이는 교회 공동체가 십자가의 고난을 함께 짊어지는 ‘상처 입은 치유자’들의 모임으로 거듭나야 함을 강력히 촉구한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12장 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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