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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의 환상을 넘어, 은혜와 헌신의 정상으로 향하는 순례의 길

OCJ 2026. 8. 19. 05:51

두 번째 산 (The Second Mountain)

 


데이비드 브룩스의 《두 번째 산》은 현대 사회의 초개인주의가 낳은 공허함을 진단하고, 자아를 비우고 타인에게 헌신할 때 비로소 진정한 삶의 의미가 시작됨을 역설하는 인문학적 성찰서입니다. 세속적 성취 너머에 있는 관계와 소명의 가치를 탐구하며, 고독에 갇힌 현대인들에게 묵직한 영적 이정표를 제시합니다.

현대 사회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첫 번째 산'을 오르라고 강요합니다. 이 산은 세속적인 성공, 명성, 그리고 자아의 독립성을 쟁취하는 능력주의의 정점입니다. 그러나 브룩스는 이 산의 정상에 서거나 혹은 그 등반에서 추락할 때 피할 수 없는 '고통의 계곡'을 맞이하게 된다고 진단합니다. 이 계곡은 영혼의 어두운 밤이자, 동시에 자아의 껍질을 깨고 나오는 거룩한 전환점입니다. 계곡을 통과한 이들은 마침내 '두 번째 산'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 번째 산이 내가 쟁취하는 것이라면, 두 번째 산은 소명이 나를 사로잡는 곳입니다. 저자는 이 두 번째 산을 등반하기 위해 직업, 결혼, 철학과 신앙, 그리고 공동체라는 네 가지 차원에서의 완전한 헌신과 내어줌이 필요함을 설파하며, 자아 중심주의에서 이타주의로 나아가는 영적이고 실존적인 여정을 섬세하게 묘사합니다.

[초개인주의 사회에 던지는 예언자적 경고와 '고통의 계곡']


현대 서구 사회와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가장 강력한 우상은 바로 '자아'입니다. 데이비드 브룩스는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초개인주의와 능력주의가 어떻게 인간을 철저히 원자화하고 고립시켰는지를 매우 날카롭게 진단합니다. 모든 것을 개인의 능력과 성취로 평가받는 냉혹한 사회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첫 번째 산'을 오르기 위해 피 말리는 사투를 벌입니다. 그러나 그 고된 등반의 끝, 즉 세속적 성공의 정상에 서거나 혹은 실패하여 추락할 때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성취감이라는 찰나의 신기루와 견딜 수 없는 깊은 공허함뿐입니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절망의 죽음'으로 표현하며 시대적 위기감을 강렬하게 고취시킵니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이는 하나님이 배제된 채 인간의 힘만으로 바벨탑을 쌓아 올린 필연적인 말로와 다름없습니다. 흥미롭고도 은혜로운 지점은 브룩스가 이 처절한 실패와 좌절의 공간을 '고통의 계곡'이라 명명하며, 이를 단순한 인생의 비극이 아니라 영적 각성의 거룩한 통로로 보았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유한함과 내면의 깊은 죄성을 철저히 깨닫는 그 고난의 골짜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고개를 들어 초월자를 바라보게 됩니다. 십자가의 역설이 그러하듯, 자아가 산산조각 나는 그 부서짐의 자리에서 마침내 진정한 자아의 회복과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율법에서 은혜로: 두 번째 산이 보여주는 복음의 정수]


첫 번째 산과 두 번째 산의 가장 극명한 차이는 등반을 이끄는 '주체'에 있습니다. 첫 번째 산은 오로지 나의 뛰어난 능력과 굳은 의지로 정복해 내야만 하는 율법주의적이고 세속적인 성취의 영역입니다. 반면에 두 번째 산은 내가 산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산이 나를 온전히 사로잡고 정복하는 곳입니다. 브룩스는 이를 '항복과 소명'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는데, 이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 원리를 완벽하게 설명해주는 아름다운 메타포입니다. 

 

안타깝게도 현대 교회는 때때로 세상의 물질주의적 가치관을 비판하면서도, 무의식 중에는 '기독교적인 첫 번째 산'을 만들어 놓고 그 꼭대기에 오르는 것만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가르치는 오류를 범해왔습니다. 하지만 브룩스는 참된 평안과 진정한 삶의 의미란 무엇을 쟁취하는 것에 있지 않고, 무한한 사랑의 대상이신 하나님과 이웃에게 나를 온전히 내어주는 '헌신'에 있다고 역설합니다. 특히 아우구스티누스와 헨리 나우웬 등 기독교 영성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자신의 내면적 붕괴와 영적 회복을 고백하는 4부의 내용은 한 편의 장엄한 신앙 간증과도 같습니다. 

 

우리의 공로를 철저히 무화시키고 오직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으로 덮으시는 은혜의 역사가 두 번째 산의 핵심 동력입니다. 결국 두 번째 산을 오르는 여정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타인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현대 사회학의 언어로 유려하게 풀어낸 복음의 정수라 평가할 수 있습니다.

[네 가지 헌신: 고립된 시대를 치유하는 두터운 공동체의 회복]


두 번째 산을 성공적으로 오르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으로서 저자가 제시하는 '직업, 결혼, 철학과 신앙, 공동체'에 대한 네 가지 차원의 헌신은, 파편화되고 개인화된 현대인들이 어떻게 끊어진 관계의 끈을 다시 이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천적이며 영적인 가이드라인입니다. 직업을 단순한 밥벌이나 자아실현의 수단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소명(Vocation)'으로 받아들이는 것, 결혼을 나를 희생하고 상대방을 온전히 품어내는 완전한 이타주의의 학교로 삼는 것, 그리고 신앙 안에서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는 거룩한 진리에 겸손히 굴복하는 과정은 크리스천의 성화 과정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나아가 무엇보다 서로가 서로에게 깊이 결속되어 아픔을 나누는 '두터운 공동체(Thick Community)'를 세우는 것은, 성경이 증언하는 초대 교회의 원형이자 우리가 회복해야 할 교회의 참된 모습과 맞닿아 있습니다. 개인 차원의 큐티나 영성 훈련만으로는 결코 온전한 신앙이 완성될 수 없습니다. 참된 신앙은 반드시 타인과의 부대낌 속에서, 특히 소외되고 상처 입은 이웃을 향한 적극적인 연대와 아가페적 사랑의 실천으로 피어납니다. 

 

브룩스가 제시하는 헌신된 삶의 모습은 현대 교회가 나아가야 할 궁극적인 방향성을 묻는 준엄한 예언자적 질문이자, 각자도생의 고독한 시대를 치유할 유일한 복음적 해독제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느 산을 오르고 있습니까? 이 무거운 질문 앞에서 크리스천들은 다시금 신앙의 공동체를 든든히 세우고 은혜의 복음을 세상 끝까지 흘려보내는, 두 번째 산의 진정한 등반가로 부름받고 있습니다.

《두 번째 산》은 세속적 인문학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심연에는 철저히 기독교적 구원론과 성화의 과정이 숨 쉬고 있습니다. 첫 번째 산이 인간의 노력과 공로로 구원과 성공을 이루려는 '율법주의'와 '번영 신학'이라면, 고통의 계곡은 자기 부인과 십자가의 고난을 의미합니다. 그곳에서 인간은 철저한 무력감을 경험하며, 마침내 나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에 항복하게 됩니다. 이것이 곧 두 번째 산의 시작입니다. 두 번째 산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는 성화의 삶이며, 이웃을 향한 아가페적 사랑의 실천입니다.

 

현대 크리스천들은 종종 교회 안에서조차 첫 번째 산의 논리인 능력주의에 함몰되어, 더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만을 축복이라 착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데이비드 브룩스는 세속적 성공의 정점을 찍은 지식인의 진솔한 고백을 통해, 참된 평안과 기쁨은 나를 비워 타인과 하나님께 온전히 매일 때 비로소 주어짐을 강력하게 증언합니다. 자아 중심성에서 벗어나 이타성과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는 이 놀라운 여정은, 오늘날 십자가의 참된 의미를 잃어버린 채 첫 번째 산의 중턱에서 방황하는 수많은 크리스천들에게 묵직하고도 명확한 영적 통찰을 제공합니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마가복음 8: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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