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S WORD

이사야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오늘
Admin

뉴스

더보기 →
오피니언/OCJ시선

시혜(施惠)에서 권리(權利)로: 진정한 포용 사회는 ‘문턱’을 허무는 데서 시작된다

OCJ 2026. 7. 11. 03:57

[OCJ 논설] 주요 이슈: 최근 국회를 통과한 '장애인권리보장법'의 실질적 이행을 둘러싼 권리 예산 확보 갈등과, 단순한 주거 제공을 넘어선 포용적 사회 안전망(물리적·제도적 문턱 제거) 구축에 대한 거시적 논의

 


어제와 오늘, 우리 사회의 가장 민감한 신경을 건드린 뉴스는 바로 '장애인권리보장법'의 실질적 이행과 맞물린 거시적 정책의 공백, 그리고 예산을 둘러싼 치열한 갈등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장애인을 '복지의 수혜자'가 아닌 '권리의 주체'로 선언한 법안이 제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실현할 실질적 예산과 인프라 확보는 여전히 험난한 실정이다. 이에 권리 예산을 보장하라는 절박한 외침이 도심 한복판과 정부 기관에서 잇따르고 있으며, 10일 여러 매체를 통해 보도된 바와 같이 "집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실질적 삶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거권 및 사회적 안전망 확립에 대한 논의가 뜨거운 쟁점으로 부상했다.

오랜 시간 우리 사회는 장애인과 취약계층을 향한 정책을 '시혜(charity)'의 관점에서 접근해 왔다. 거처를 마련해 주고 일정 금액의 지원금을 쥐여주는 것으로 국가와 사회는 할 일을 다 했다고 자위했다. 그러나 최근 장애계가 꼬집는 현실은 서늘하다. 번듯한 집이 주어져도 현관의 턱을 넘지 못해 외출을 포기해야 하고, 대중교통의 작은 단차 하나가 사회로 나가는 길을 가로막는다면 그곳은 거주지일 뿐 온전한 '삶의 터전'이 될 수 없다. 진정한 사회적 안전망은 단순히 지붕을 덮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지역사회 안에서 밥을 먹고, 일하고, 교제할 수 있도록 물리적·제도적 '문턱'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진통 앞에서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신앙적 태도를 깊이 반성해야 한다.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변두리로 밀려난 이들에게 단순히 동전 몇 닢을 던져주는 적선(積善)이 아니었다. 주님은 안식일의 엄격한 규례를 깨면서까지 손 마른 자를 고치셨고, 사회적으로 격리된 나병환자의 몸에 직접 손을 대셨다. 이는 질병의 치유를 넘어, 그들을 옭아매던 사회적·종교적 장벽을 박살 내고 공동체의 중심으로 '복귀'시키신 거시적이고도 완벽한 포용의 선언이었다. 성경은 취약한 이들을 불쌍히 여기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 앞에 놓인 '장애물'을 직접 치우는 것이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방식이라고 엄중히 가르친다.

이제 우리는 값싼 동정심을 거두고, 공의로운 분노와 실천을 회복해야 한다. 정부는 선언적 의미의 법 제정을 넘어, 장애인이 시민으로서의 보편적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구체적인 권리 예산 편성과 거시적 안전망 구축에 총력을 다해야 한다. 교회 역시 우리 안의 보이지 않는 심리적, 물리적 문턱을 낮추고, 벼랑 끝에 선 이들의 정당한 권리가 실현되도록 가장 앞장서서 사회적 목소리를 내야 할 때다. 시혜적 복지의 낡은 잔재를 털어내고 '동등한 권리'가 숨 쉬는 포용 사회를 건설하는 일, 그것이 바로 이 땅에 임할 하나님 나라의 가장 선명한 청사진이다.

너는 귀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며 맹인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 레위기 19:14

#포용적사회 #장애인권리보장법 #사회적안전망 #문턱없애기 #동등한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