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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성공이 아닌 섬김(Not Success, But Service), 십자가의 사랑, 성육신의 삶"
서서평, 천천히 평온하게 (홍주연, 홍현정)

2017년 봄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서서평, 천천히 평온하게"는 약 100여 년 전 가난하고 억압받던 조선 땅에 찾아와 '작은 예수'로 불렸던 엘리자베스 요한나 셰핑(한국명 서서평) 선교사의 삶을 묵직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1912년 조선에 파견된 그녀는 일제의 수탈이 극심했던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나환자와 걸인, 고아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며 간호 활동을 시작했다. 영화는 그녀가 이일학교(한일장신대학교 전신), 조선간호부회(대한간호협회 전신) 등을 창설하며 여성운동과 간호 분야에 힘쓴 굵직한 업적을 조명하면서도, 고아 14명을 자녀로 삼고 오갈 곳 없는 과부 38명과 한집에 머물렀던 희생적인 사랑의 행보를 놓치지 않는다. 하정우 배우의 진중한 내레이션과 함께 스크린에 펼쳐지는 서서평의 생애는 이방인이 아닌 진정한 조선인으로서 척박한 땅의 상처를 보듬고자 했던 한 그리스도인의 뜨거운 족적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주목할 점은 이 영화가 단순히 훌륭한 위인의 전기적 사실이나 사역의 나열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출을 맡은 홍주연, 홍현정 감독은 제작 노트를 통해 "서서평이라는 사람의 일대기를 나열하거나 그녀의 사역을 구구절절 알려주는 영화가 아니다"라며 "버림받은 아픔과 고통을 지닌 한 인간이 예수를 만나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얼마나 아름다운 선교 활동을 했는지 보여주고자 한다"라고 명확한 기획 의도를 밝혔다. 실제 서 선교사는 미혼모의 딸로 태어나 외할머니 손에 자라다가 어머니에게마저 외면당했던 뼈아픈 상처를 지닌 인물이었다. 감독은 이러한 개인적 아픔을 깊이 있게 다루며, 부모에게 버림받았던 상처투성이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 안에서 치유되고, 나아가 자신처럼 버림받은 조선의 나환자와 고아들을 향한 헌신으로 승화될 수 있었는지를 신학적으로 조명한다. 그녀의 삶은 십자가의 사랑이 한 영혼을 회복시킬 때 맺히는 가장 완전한 구원의 열매가 무엇인지를 생생하게 증명하는 시청각적 간증이다.
이러한 서서평의 궤적을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분석해 볼 때, 그녀의 삶을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신학적 가치는 바로 "성공이 아니라 섬김(Not Success, But Service)"이라는 좌우명으로 요약된다. 그녀는 세속적인 성공과 성취를 좇는 시대정신에 철저히 역행하며,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자기 비움의 길을 온몸으로 실천했다. 분단의 아픔을 가진 한국에 깊이 공감하며 서서평 선교사 역을 진정성 있게 연기해 낸 독일 출신 배우 윤안나의 모습은 당시 그녀가 짊어졌던 사랑의 무게를 실감 나게 전해준다. 만성 흡수불량증세인 스푸르와 폐렴을 앓으면서도 자신의 건강보다 굶주리는 조선인들을 먼저 걱정했던 그녀는 1934년 54세의 나이로 고통 가운데 숨을 거두기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었다. 이는 오늘날 크고 화려한 건물을 짓고 양적인 성장에 몰두하며 안락함을 추구하는 현대 교회의 모습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그녀의 사역은 단지 사회복지적 구제를 넘어,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신 성육신의 신학을 삶이라는 무대 위에서 완벽하게 구현해 낸 신앙의 절정이다.

결론적으로 "서서평, 천천히 평온하게"는 단순한 기독교 다큐멘터리를 넘어 현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신앙인들의 영혼을 울리는 날카로운 예언자적 외침이다. 차별과 혐오가 난무하던 시절, 혐오의 대상이었던 한센병자와 억압받던 여성들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회복하게 한 그녀의 행보는 한국 교회가 마땅히 걸어가야 할 본질적인 사랑의 원형을 제시한다. 영화가 끝난 후 관객의 가슴 속에는 "과연 나는 오늘 십자가를 지며 누구를 위해 살아가는가?"라는 묵직한 신앙적 결단의 질문이 남는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조선의 상한 영혼들을 치유하기 위해 스스로 썩어지는 한 알의 밀알이 되었던 서서평 선교사. 철저히 자기를 부인하고 천천히, 그러나 평온하게 예수의 향기를 남기며 걸어갔던 그녀의 푸른 헌신은, 세속화의 파도 속에서 길을 잃은 현대 그리스도인들을 진정한 섬김과 헌신의 자리로 초청하는 거룩한 부름이자 최고의 평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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