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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군중의 함성 앞에서의 진실
[영혼의 미술관] 햇살이 눈부시게 내리쬐는 예루살렘의 어느 웅장한 발코니, 우리는 지금 그곳의 기둥 뒤에 숨어 숨죽인 채 한 장면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발아래 광장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인파가 운집해 있고, 그들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분노의 함성이 귓가를 때리는 듯합니다. 19세기 스위스 태생의 이탈리아 화가 안토니오 치세리(Antonio Ciseri)의 명화, <이 사람을 보라 (Ecce Homo)>는 이처럼 관찰자가 빌라도의 뒤편에 서 있는 듯한 파격적이고 독특한 후면 구도로 우리를 그날의 역사적 현장 한가운데로 초대합니다.

라파엘로의 우아한 고전주의와 당대의 치열한 사실주의를 결합한 치세리는 독실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는 단지 과거의 한 장면을 그리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성경 속 역사적 순간이 마치 오늘 우리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실처럼 생생하게 다가오기를 바랐습니다. 붉은 망토를 휘날리며 광장의 성난 군중을 향해 가시관을 쓴 예수를 가리키는 로마 총독 빌라도, 그리고 광기에 휩싸인 군중의 요동침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예수 그리스도의 창백하고 상처 입은 등. 치세리는 이 그림을 그리며 빌라도의 복잡한 심리적 갈등과 군중의 맹목적인 분노를 깊이 묵상했고, 진리가 세상으로부터 처절하게 외면당하는 비극의 순간을 캔버스 위에 정교하게 빚어냈습니다.
그림 속 디테일을 하나하나 찬찬히 뜯어보다 보면, 화가가 숨겨둔 깊은 영적 질문들이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기 시작합니다.
다수의 함성, 그리고 고립된 진리
화면 너머로 굽이치는 군중의 바다를 바라봅니다. 그들은 무엇을 향해 저토록 분노하고 있는 것일까요? 빌라도가 "이 사람을 보라"며 예수를 내세웠을 때, 다수의 군중은 "십자가에 못 박으라"며 소리쳤습니다. 군중심리라는 거대한 파도는 개인의 이성과 양심을 쉽게 삼켜버립니다. 거짓이 다수의 목소리를 입을 때, 그것은 순식간에 진리처럼 둔갑하고 맙니다.
치세리가 그려낸 예수의 핏기 없는 뒷모습은 이 거대한 다수의 폭력 앞에서 겪어야 했던 처절한 고립감을 보여줍니다. 화려한 옷을 입은 권력자들과 흥분한 군중 사이에서, 벗겨진 채 채찍질 당한 예수의 몸은 한없이 초라해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앙상하고 상처 입은 등은 세상의 그 어떤 권력보다도 단단하게 진리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다수의 함성이 곧 정답이 되는 시대 속에서, 이 그림은 우리에게 '다수의 목소리'가 아닌 '진리의 침묵'을 분별할 수 있는 영적 안목이 있는지를 묻습니다.
타협하는 권력과 고개 돌린 양심
그림의 구도에서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또 다른 인물들이 있습니다. 화면 오른쪽 구석, 화려한 옷차림을 한 여인이 수심에 잠긴 채 얼굴을 돌리고 있습니다. 바로 빌라도의 아내입니다. 그녀는 꿈을 통해 예수에게 죄가 없음을 알았고 남편에게 경고했지만, 결국 무고한 피가 흘려지는 것을 막지 못한 채 영적 가책을 느끼며 고개를 떨구고 있습니다.
그녀의 앞에는 진실을 알고도 자신의 정치적 안위를 위해 군중과 타협해 버린 빌라도가 서 있습니다. 예수를 등진 채 세상을 향해, 군중을 향해 서 있는 빌라도의 넓은 등은 오늘날 우리의 자화상일지도 모릅니다. 진실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세상의 평판이 두려워, 혹은 나의 작은 이익을 잃을까 두려워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 말입니다. 고개를 돌려버린 빌라도의 아내와 손을 씻으며 군중에게 예수를 내어준 빌라도의 모습은 양심과 타협 사이에서 갈등하는 현대인들의 연약함을 날카롭게 꼬집습니다.
묵묵히 십자가를 향해 선 뒷모습
다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그분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조롱과 저주 앞에서도 변명하거나 자신을 방어하지 않으십니다. 세상을 향해 얼굴을 돌려 항변하는 대신, 묵묵히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있는 곳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서 계십니다. 가시관을 쓴 머리와 채찍에 맞은 등은 참혹한 고난의 흔적이지만, 그 뒷모습에서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숭고한 평안이 흘러나옵니다.
참된 제자도란 바로 이 뒷모습을 따르는 것입니다. 군중의 함성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을 바라보며 묵묵히 고난의 십자가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의 발자취를 좇는 것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등질지라도, 혹은 우리가 진리를 지키기 위해 세상 속에서 철저히 고립되는 한이 있더라도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날 우리는 손끝 하나로 수만 명의 여론이 형성되고 사라지는 '소음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좋아요'의 숫자가 진리의 척도가 되어버린 세상 속에서, 크리스천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때로는 예수님처럼 광장 앞에 벌거벗겨진 채 서 있는 것 같은 두려움을 동반합니다.
그러나 이 그림 속 예수님의 묵묵한 뒷모습이 오늘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건넵니다. 군중의 함성에 휩쓸려 진실을 외면하는 빌라도의 자리에 서기보다, 비록 고난받고 상처 입을지라도 예수님과 함께 서는 그 좁은 길을 선택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다수의 목소리가 아닌, 고요하고 세미하게 들려오는 십자가의 진리에 귀 기울이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의 거센 함성 앞에서도 진리를 품고 의연하게 걸어가는 당신의 뒷모습을 통해, 세상은 다시 한번 진짜 그리스도를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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