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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혼의 미술관

잔혹한 폭력 앞에 침묵하시는 어린 양, 마티아스 그뤼네발트의 '그리스도의 조롱'

OCJ|2026. 6. 2. 04:41

어둡고 억압적인 공기가 흐르는 방, 차마 두 눈을 뜨고 바라보기 힘든 참혹한 폭력의 현장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화면의 중심에는 거친 천으로 두 눈이 가려진 채 결박당한 한 남자가 무기력하게 주저앉아 있습니다.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얼굴은 악의로 일그러져 있고, 그들의 과장되고 역동적인 몸짓은 인간 내면 밑바닥에 도사린 잔혹성을 적나라하게 뿜어냅니다. 르네상스 시대 독일의 화가, 마티아스 그뤼네발트(Matthias Grünewald)가 남긴 명화 <그리스도의 조롱>입니다.

 


동시대에 활동했던 알브레히트 뒤러가 완벽한 비례와 르네상스의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추구했다면, 그뤼네발트의 시선은 전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종교개혁이라는 거대한 폭풍우가 몰아치기 직전의 혼란스러운 시대상 속에서, 그는 인간의 추악한 죄악과 그로 인해 찢겨나가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피할 길 없이 직시하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붓끝은 매끄럽고 아름답기보다 거칠고 탁했으며, 극적이고도 표현주의적인 묘사를 통해 관람자를 단숨에 고통의 한복판으로 끌어당깁니다. 이 그림 앞에 선 우리는 단순한 감상자를 넘어, 2천 년 전 골고다 언덕을 향하던 끔찍한 폭력의 목격자로 초대받게 됩니다.

요란한 폭력의 한복판, 침묵으로 빚어낸 존엄

그림의 디테일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화면을 가득 채운 '시각적 소음'에 귀가 먹먹해지는 듯합니다. 몽둥이를 치켜든 자, 주먹을 쥐고 조롱하는 자, 머리채를 잡아끄는 자들의 모습은 맹목적인 폭력이 얼마나 인간을 이성 잃은 괴물로 전락시키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시끄럽고 광기 어린 요동 속에서 유일하게 고요한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온갖 구타와 수치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계신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부는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창백하고, 묶인 두 손과 가려진 눈은 완벽한 무기력함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하지만 그뤼네발트는 이 짙은 어둠과 폭력의 배경 속에서, 오직 그리스도의 형상 위에만 창백하고도 신비로운 빛을 스며들게 하였습니다.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이 잠잠했던 것처럼(이사야 53:7),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않으신 그리스도의 침묵은 결코 패배자의 나약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모든 죄악과 폭력성을 자신의 몸으로 흡수하고 끊어내려는, 십자가 구속사를 향한 거룩한 의지이자 고난 속에서도 결코 훼손되지 않는 신적 존엄의 발현입니다. 

차가운 방관자, 그리고 우리 안의 숨겨진 폭력성

화면 우측으로 시선을 옮기면, 직접 매를 들고 있지는 않지만 지팡이를 쥐고 이 끔찍한 상황을 지시하거나 관망하는 듯한 한 인물이 눈에 띕니다. 그의 차가운 시선과 냉소적인 태도는 몽둥이를 든 자들보다 더욱 섬뜩하게 다가옵니다. 그는 구조적인 악에 기꺼이 동조하며 타인의 고통을 철저히 대상화하는 '방관자'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그뤼네발트는 이 인물을 통해 당시 부패한 종교와 사회 지도층을 고발하는 동시에,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날 이 그림을 보는 우리의 양심을 매섭게 찔러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는 어떠합니까? 십자가의 시대처럼 육체적인 채찍질은 없을지 몰라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타인을 향한 조롱, 날 선 혐오, 그리고 무자비한 '말의 폭력'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통쾌해하거나, 혹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며 차갑게 방관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그림 속 눈 가려진 그리스도를 조롱하던 자들의 일그러진 얼굴이, 어쩌면 타인을 쉽게 정죄하고 비웃는 내 안의 숨겨진 폭력성과 겹쳐 보이는 듯해 가슴이 서늘해집니다.

찢긴 상처 위로 흐르는 역설적인 은혜와 위로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그뤼네발트가 이토록 처절한 그림을 통해 우리에게 남기고자 했던 진짜 메시지는 절망이 아닙니다. 타인의 고통 앞에서 침묵하거나 오히려 조롱을 보태는 이 차가운 시대적 어둠 속에서, 그리스도는 우리의 그 모든 악독함과 수치를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그분이 눈이 가려진 채 매를 맞으신 이유는, 영적으로 눈먼 우리의 눈을 뜨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지금 혹시 세상의 까닭 없는 조롱이나 오해, 관계 속의 폭력으로 인해 상처받고 외로운 시간을 통과하고 계시는 분이 있다면, 이 그림 속 침묵하시는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가장 큰 고통과 수치의 한복판을 친히 걸어가신 주님께서, 여러분의 찢긴 마음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시며 곁에서 함께 울고 계십니다. 

나아가 이 그림은 우리에게 실천적인 도전을 던집니다. 혐오가 오락이 되고 조롱이 일상이 된 세상 속에서, 크리스천인 우리는 기꺼이 '폭력의 사슬을 끊어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누군가를 향한 비난의 돌멩이를 내려놓고, 상처받은 이들의 곁에 서서 따뜻한 방패가 되어주는 것. 그것이 바로 맹목적인 폭력을 온몸으로 감내하신 십자가의 역설적 은혜를 오늘날 우리의 삶에 피어오르게 하는 진정한 신앙의 길이 아닐까요. 영혼의 미술관을 나서는 우리의 발걸음 위에, 그분의 고요하고도 깊은 평안이 함께하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