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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혼의 미술관

절망의 연못에 찾아온 자비

OCJ|2026. 4. 30. 05:32

어둡고 차가운 돌기둥의 주랑 아래, 무거운 침묵과 짙은 그늘이 내려앉아 있습니다. 그 서늘한 바닥에 38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병마에 시달린 한 사내가 체념한 듯 누워 있습니다. 뼈만 남은 앙상한 몸짓과 빛을 잃어버린 눈동자는 그가 견뎌온 절망의 무게를 고스란히 전해줍니다. 그러나 이 잿빛 풍경 속에서 우리의 시선을 강렬하게 사로잡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병자의 몸을 덮고 있는 붉은 천입니다. 주변의 어둠과 대비되는 이 붉은색은 마치 살고 싶다고 소리치는 그의 고통스러운 비명 같기도 하고, 메말라버린 생명력에 대한 간절한 갈급함 같기도 합니다. 

이토록 깊은 슬픔과 연민을 캔버스에 담아낸 이는 덴마크의 화가 칼 블로흐(Carl Bloch)입니다. 예수의 생애를 다룬 23점의 성화 연작으로 유명한 그는, 누구보다 깊은 신앙심과 인간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가진 예술가였습니다. 특히 그는 생애 후반부에 사랑하는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는 찢어지는 상실과 슬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블로흐는 절망이라는 늪에 침몰하는 대신, 그 슬픔을 끌어안고 더욱 깊은 영성의 세계로 나아갔습니다. 자신이 철저한 고통을 겪어보았기에, 그의 붓끝은 가장 소외되고 상처 입은 이들의 영혼을 섬세하게 어루만질 수 있었습니다.

 


그의 이런 마음이 투영된 명화 <베데스다 연못에서 병자를 고치시다>의 백미는 단연 화면 중앙에 자리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예수는 높은 곳에서 병자를 내려다보지 않습니다. 허리를 깊이 굽혀, 38년 동안 땅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 살아온 사내와 정확히 눈을 맞춥니다. 그리고 다정한 손길로 그의 몸을 덮고 있던 붉은 천을 살며시 들추어냅니다. 이는 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그 심연의 상처를 직접 치유하시겠다는 굳건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병자의 그늘진 얼굴 위로, 예수의 옷자락에서 뿜어져 나오는 부드럽고 따뜻한 빛이 스며듭니다. 화가는 이 극적인 명암의 대조를 통해, 칠흑 같은 절망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개입하는지를 한 편의 시처럼 아름답게 시각화해 냈습니다.

1등만 기억하는 연못, 그 차가운 룰의 바깥에서

베데스다(Bethesda)는 '자비의 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은 철저한 적자생존의 법칙이 지배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천사가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할 때, 가장 먼저 뛰어드는 단 한 사람만이 낫는다는 잔인한 규칙 때문입니다. 38년 된 병자는 스스로 움직일 힘조차 없었기에, 남들보다 먼저 연못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이들이 물을 향해 다투어 뛰어드는 모습을 보며 수천 번의 좌절을 겪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경쟁이라는 트랙 위에서 무기력과 절망에 빠진 채 누군가의 도움만을 막연히 기다리는 우리의 모습은 이 베데스다 연못가의 병자와 너무도 닮아 있습니다.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뒤처졌다는 자괴감,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는 짙은 고독감이 우리를 짓누릅니다. 남들보다 먼저 물에 뛰어들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세상의 룰 앞에서, 우리는 종종 깊은 체념의 돗자리를 깔고 주저앉아 버리곤 합니다. 

허리를 굽혀 찾아오시는 은혜

하지만 칼 블로흐의 그림은 우리에게 놀라운 복음의 진리를 시각적으로 증명합니다. 세상은 "네 힘으로 일어나 물가로 먼저 오라"고 말하지만, 은혜는 정반대로 일합니다. 예수는 스스로 다가갈 수 없는 병자를 향해 친히 걸어오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눈높이로 허리를 굽히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세상의 룰을 따르지 않습니다. 자격 있는 자, 발 빠른 자, 능력이 있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무력함을 뼈저리게 느끼며 누워있는 자의 그늘진 자리 한가운데로 직접 찾아오시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자비입니다. 그림 속 예수의 손이 병자의 붉은 천을 들추듯, 주님은 남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우리의 상처와 고통의 무게를 조심스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거두어 내십니다. 

물결이 아닌, 자비의 시선으로의 회복

38년 동안 병자의 시선은 오직 '연못의 물결'을 향해 있었을 것입니다. 물이 언제 움직이나, 누가 먼저 들어가나, 그것만을 노심초사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치유는 연못의 물이 아니라, 예수의 눈동자를 마주하는 순간 시작되었습니다. 

칼 블로흐가 묘사한 두 사람의 시선 교차는 '시선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하시는 첫 번째 일은, 경쟁의 연못을 향해 있던 우리의 시선을 거두어 사랑과 자비의 주님과 눈을 맞추게 하시는 것입니다. 절망에 빠진 이에게 필요한 것은 한 번의 요행이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요령이 아니라,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시며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시는 인격적인 사랑의 만남입니다.

오늘 하루, 치열한 삶에 지쳐 무기력의 돗자리에 누워 계시지는 않은지요. 세상의 규칙에 밀려나 나침반을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면, 이 그림 속 허리를 굽히신 예수님의 모습을 조용히 묵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주님은 지금도 가장 낮고 어두운 우리의 절망 한가운데로 찾아와, 따뜻한 빛으로 우리를 감싸 안으십니다. 

경쟁의 물결만 바라보던 시선을 들어 나를 바라보시는 주님의 눈동자를 마주합시다. 슬픔을 넘어 깊은 자비를 그려낸 화가의 붓터치처럼, 주님의 다정한 손길이 오늘 여러분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다시 일어설 힘을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