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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두 집 사이에서: 레바논 내 이주 노동자들, 전쟁의 사회·경제적 여파 속 생존 위기
[OCJ] 최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레바논 간의 10일간의 임시 휴전이 성사된 가운데, 분쟁의 참화 속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인 레바논 내 이주 노동자들의 생존 위기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들은 전쟁이 초래한 경제적 타격과 열악한 노동 환경에 갇혀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베이루트 남부의 헤즈볼라 주요 거점인 다히에(Dahieh) 지역에서 23년째 가사도우미로 일하고 있는 필리핀 출신 이주 노동자 낸시(Nancy)의 사연은 이들의 현실을 대변합니다. 2006년 이스라엘-헤즈볼라 전쟁부터 2020년 베이루트 항구 폭발 참사, 그리고 최근 2024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남부 침공에 이르기까지 모든 위기를 겪어온 그녀는 결국 고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낸시는 쉴 새 없이 지나가는 드론과 폭음탄에 대한 끔찍한 공포를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낸시처럼 떠날 수 있는 이들은 오히려 소수에 불과합니다. 상당수의 필리핀 노동자들은 본국의 가족을 부양하고 자녀들의 학비를 벌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에,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귀국을 포기하고 레바논에 남는 길을 택하고 있습니다. 마를로우 미란다(Marlowe Miranda) 주레바논 필리핀 대사는 자국 가사 노동자 1만 5,000여 명의 생명이 위험에 처해 있다고 경고하며 강제 대피(Alert Level 4)를 촉구했으나, 제한된 항공편 등으로 인해 대규모 송환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주 노동자들이 처한 근본적인 문제로 레바논 특유의 노동 착취 구조인 '카팔라(Kafala) 제도'를 지목합니다. 웨스턴 시드니 대학교(Western Sydney University) 문화사회연구소 겸임교수이자 전 레바논 아메리칸 대학교 이주연구소장인 폴 타바르(Paul Tabar) 박사는 "카팔라 제도는 고용주가 이주 노동자의 여권과 체류 자격을 전적으로 통제하는 비인도적인 시스템"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노동자들이 월 150달러에서 400달러 수준의 저임금에 시달리며, 의료보험이나 퇴직금과 같은 기본적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전쟁으로 촉발된 인도주의적 위기는 이들의 삶을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베이루트 남부에서 피난한 가족들을 직접 방문한 바르함 살리(Barham Salih) 유엔난민기구(UNHCR) 최고대표는 "레바논이 겪는 반복되는 분쟁과 전쟁의 악순환은 끝나야 하며, 이제는 평화와 안정을 도모할 때"라고 호소했습니다.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현재 레바논 내 집단 대피소에 머무는 인원은 12만 8,000명에 달하며, 식별된 이주 노동자 인구의 약 30%인 4만 8,000명가량이 피난길에 오르거나 고위험 지역에 방치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국경없는의사회(MSF) 역시 이주민 사회가 전쟁의 피해는 물론 인도주의적 구호에서도 배제되어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이스라엘과 조제프 아운(Joseph Aoun) 레바논 대통령 간에 10일간의 휴전이 합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레바논과 그곳에 터전을 잡은 이주 노동자들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합니다. 끊어질 듯 위태로운 휴전 상황 속에서, 두 집 사이에서 갈 곳을 잃은 이주 노동자들을 향한 국제 사회의 관심과 체계적인 보호 대책 마련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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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노트]
전쟁과 분쟁의 가장 어두운 그늘은 사회의 가장 연약한 이들을 덮치기 마련입니다. 레바논의 이주 노동자들은 경제적 빈곤을 벗어나고자 낯선 땅을 찾았지만, 불합리한 노동 제도와 포연 속에 갇혀 최소한의 인도주의적 보호조차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10일간의 짧은 휴전이 항구적인 평화로 이어지길 기도하며, 우리 크리스천 공동체 역시 국적과 인종을 넘어 고통받는 이방인들을 향한 긍휼과 연대의 마음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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